8월 들어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 이사진과 방송 심의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구성이 대거 교체되거나, 교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26일 <한겨레>가 이들 지상파 방송사 이사회와 방심위 위원의 성비를 분석한 결과, 여성은 17.2%(29명 중 5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영방송사인 <한국방송> 이사 11명 가운데 여성 이사는 1명에 불과했다. 수년째 지적되고 있는 방송계 의사결정 단위의 ‘남성 편향’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5일 전체회의를 열어 대통령에 추천하기로 한 한국방송 이사 11명 가운데 여성 이사는 조숙현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 한 사람뿐이다. 성비 균형 측면에서 미흡하다고 평가받았던 지난 이사회(여성 이사 2명)보다 퇴보한 구성이다. 준공영 방송사인 <문화방송>의 최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지난 11일 9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했다. 이 가운데 여성 이사는 2명뿐이다. 방송 내용을 사후에 심의·규제하는 방심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 출범한 5기 방심위원 9명 가운데 여성위원은 2명이었다. 이번 달 들어 새로 임명된 지상파 이사와 방송 규제기구 위원의 절대다수가 남성으로 채워진 것이다.
양성평등기본법 제21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위원회를 구성할 때 특정 성별이 위촉 위원의 10분 6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령은 <한국방송>과 같은 공영방송사나 방통위와 같은 기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규정은 행정기관의 소관 사무에 대해 자문하거나 심의·의결하는 합의제 기관에만 적용되는데, 심의·의결·업무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방통위와 방심위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지난 2019년 2월 ‘방송정책 및 심의기구의 성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권위는 권고문에서 “방통위와 방심위 위원 등의 남성 편향이 방송의 양성평등을 저해할 수 있다”며, 그 근거로 방심위가 방송심의에서 양성평등조항을 적용해 심의·의결한 사례가 여성위원 숫자와 연동되어 왔다는 점을 들었다. 방심의 위원 중 여성위원이 2명이었던 1기에서는 14건의 양성평등조항 적용 심의가 있었지만, 여성위원이 1명도 없었던 3기에서는 5건에 그쳤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방통위와 방심위에 해당 위원회 위원 구성과 공영방송사 이사 구성에서 특정 성이 60%를 넘지 않도록 법률의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인권위의 권고 이후에도 법 개정은 요원한 상태다. 여성가족부 역시 지난 2018년 마련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서 추진 계획 중 하나로 ‘방심위 내 성비균형 제고를 위한 노력’을 적시했지만, 지금껏 별다른 진전이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올 초 방통위로부터 관련 시행계획서를 받았지만, 간담회와 모니터링 요원 교육에 관한 계획 외에 방심위 위원 성비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젠더 이슈가 첨예한 사회적 의제가 된 상황에서 한국 공영방송사와 규제기구의 ‘남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까지 지상파 방송사의 이사를 지냈던 한 인사는 “<한국방송>만 해도 지난 이사회 당시 박옥희 이사 등 여성 이사들이 목소리를 내왔던 탓에 여성 보직자 비율과 성평등센터 운영 등이 이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될 수 있었다. 제작진만큼이나 의사 결정자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방송 서비스 결과물에도 다양한 시각이 반영될 수 있는데, 성비 균형이 퇴보한 것은 방송의 질적 측면에서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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