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각 언론사에 개별 기사 댓글 창 온·오프(ON·OFF) 기능을 제공하기로 했다.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 창이 ‘2차 피해’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네이버는 그동안 언론사에 섹션별 댓글 창 온·오프 기능만 제공해 특정 기사 댓글 창만 골라 닫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이제 댓글을 통한 2차 피해 예방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한겨레>는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를 선별해 댓글 창을 닫는 등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네이버는 지난 8월26일 뉴스서비스 공지사항으로 “네이버는 에이아이(AI) 클린봇 등 댓글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기사의 당사자로서 피해를 겪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사건·사고 일반인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섹션 단위뿐 아니라 개별기사 단위로도 댓글 제공여부를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 5월 방송인
정준영 불법촬영 피해자 ㄱ씨와 최초로 대면 인터뷰를 해 포털 성범죄 기사의 댓글창이 사실상 ‘2차 피해’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ㄱ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성범죄 기사 댓글 창은 불특정 다수 누리꾼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창구로 쓰이고 있다”며 “포털 사이트가 댓글 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거면 아예 없애야 한다. 포털이 댓글 창을 그대로 두는 건, 살인을 방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이런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5만9428명이 동의했다.
지적이 있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권익위원회는 지난 5월31일부터 6월13일까지 2주간 남성 5663명, 여성 8296명 등 1만3959명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자의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을 제한하자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남성은 68.9%(3903명), 여성은 86.4%(7168명)이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그 근거로는 △무분별한 악성 댓글로 인한 2차 피해 예방 △피해자 인적사항 유출 방지(신변보호) △익명성 뒤에 숨어 막말하는 사람들 때문 등이 거론됐다. 실제 현장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상담해 온 활동가 김영서씨는
“댓글 창에는 피해자 행실을 탓하는 2차 가해성 발언이 너무 많고, 불법촬영물 정보 공유의 창구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ㄱ씨는 5일 청와대 게시판에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갈무리
<한겨레는> 네이버의 공지 뒤 내부 논의를 거쳐 성범죄 기사 등으로 빚어지는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했다. <한겨레>는 △성범죄 사건 등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의 경우 △기사에 피해자가 부득이 등장해 해당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기사에 한해 개별기사 댓글 창 닫기 기능을 활용할 방침이다.
댓글 서비스 중단은 전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미국 공영라디오 <엔피아르>(NPR)는 지난 2016년 웹사이트의 댓글 서비스를 폐지했다. 전체 이용자의 0.06%에 불과한 소수가 댓글에 각종 혐오발언을 쏟아내 건강한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엔엔>(CNN), <비비시>(BBC) 등 언론사도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일본 최대 포털인 야후재팬도 지난달 19일 인공지능(AI)이 판정하는 위반 댓글의 수가 기준치를 넘어서면 자동으로 댓글 창이 사라지는 ‘댓글창 숨기기’ 기능을 도입했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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