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역구 선거에서 여성후보를 일정 비율 이상 추천한 정당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여성추천보조금’ 제도를 그동안 ‘여성 공천’에 소극적이었던 거대정당이 보조금을 받기 유리한 방식으로 개정해 논란을 낳고 있다.
17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국회는 지난 15일 본회의를 열어 정치자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195명의 찬성(4명 기권)으로 통과시켰다. 이날 가결된 개정안(정치개혁특별위원장 대안)은 정치자금법 제26조2항에 규정된 ‘공직후보자 여성추천보조금’(여성추천보조금)의 요건을 바꾼 것을 핵심으로 한다. 개정 전에는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후보로 추천한 정당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지급하고, 이를 충족하는 정당이 없으면 여성후보 추천 비율(15% 이상∼30% 미만, 5% 이상∼15% 미만)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했다. 개정안은 이러한 요건을 없애고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 이상”을 여성후보로 추천한 모든 정당에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도록 했다.
이번 개정은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가혁명배당금당(배당금당·현 국가혁명당)이 여성추천보조금 8억4200여만원을 수령하면서 노출된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뤄졌다. 허경영 당시 대표가 이끄는 배당금당은 전국 253개 지역구의 30%(76명) 이상인 77명의 여성후보를 추천해 유일하게 여성추천보조금을 타갔다. 지난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여성추천보조금 제도가 국회의원 선거로 확대된 뒤, 총선에서 ‘여성후보 추천 30% 기준’을 넘겨 특정정당만 보조금을 수령한 첫 사례였다.
당시 배당금당이 여성추천보조금을 ‘싹쓸이’할 수 있던 배경에는 여성후보 공천을 소홀히 했던 거대정당들의 ‘직무유기’가 있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후보 253명 가운데 32명(12.6%)만이 여성이었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237명 가운데 26명(11%)에 그쳤다. 공직선거법 제47조 4항은 지역구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규정이 아닌 탓에 실효성이 없었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여성후보 추천비율을 30%대로 높이는 강제력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닌, 10%대에 그치는 ‘현상유지’만 해도 보조금을 타낼 수 있는 구조로 짜였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여성후보를 30% 이상 추천한 정당’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10% 이상을 추천한 정당 모두에게 보조금을 배분하도록 했다. 지난 총선 당시 10%대에 그쳐 보조금을 받지 못했던 민주당과 통합당도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정치개혁특위는 법률 개정 이유로 “(30%의) 비율을 넘기지 못하는 정당은 여성과 장애인 후보자를 추천하고자 노력하고도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개정안은 30%를 넘길 ‘노력’ 없이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형태로 ‘개악’된 셈이다.
거대양당에 유리한 ‘보조금 배분방식’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여성추천보조금 총액의 40%를 정당의 국회 의석수에 따라, 또 다른 40%는 직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지급하도록 되어있다. 나머지 20%만 각 정당의 지역구 여성 후보자 수의 비율에 따라 배분·지급한다. 거대정당과 소수정당이 동일한 비율로 여성후보로 공천하더라도 거대정당이 소수·원외정당 보다 여성추천보조금을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다. 개정안은 이러한 배분방식을 개선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으로 ‘전국 지역구 총수’의 문턱이 ‘5%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높아져 오히려 소수정당에 불리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이번 개정안은 여성추천보조금 도입의 취지와 의의를 훼손시키는 것이며, 거대양당이 여성후보 공천 의지가 없으면서도 보조금은 챙겨가겠다는 심보를 드러낸 개악”이라며 “여성 대표성 확대에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는 제대로 된 개혁 법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