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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으랏차차…날 보호하는 건 나!

등록 2006-12-05 17:57수정 2006-12-05 21:25

으랏차차…날 보호하는 건 나!
으랏차차…날 보호하는 건 나!
성폭력상담소가 연 ‘자기방어 주말도장’
여성들 찌르고 치고…폭력 대응법 익혀
“내 몸에서 나오는 힘에 대해 명상해 보겠습니다.”

임미화 관장(경희튼튼태권도, 전 블루버드 여성경호팀 실장)이 말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상대의 힘에 제압되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이제부터 나는 할 수 있다, 강해질 수 있다는 외침을 현실화시켜 보겠습니다. 사회에 나가 약하고 두려운 여자가 아닌 사회 리더로 큰 역할을 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5분 명상 뒤, 여성들의 고함 소리가 도장을 꽝꽝 울렸다. 뛰고, 달리고, 치고, 주먹과 발을 쭉쭉 뻗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연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주말도장 6번째 시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누군가를 때려본 적 없는 여성들이 한데 모였다. 20명의 수강신청자들은 대개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성폭력 피해 경험자들이다. 김민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신청자 모두가 한번도 싸움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아무개(24)씨는 “공격을 무서워해서 고등학교 때 배구시간에도 공을 사정없이 때리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허공에서 마냥 허우적거리기만 하던 이씨의 팔은 시간이 갈수록 힘있는 직선을 그었다.

“주먹 길게 뻗으세요. 고개 들고, 땅 보면 안 돼요!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세게 때리는 수밖에 없어요. 세게 때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세요. 공격할 때는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스승’인 임 관장은 끊임없이 온 힘을 다해 상대를 공격하도록 주문했다. 그는 태권도 공인 5단, 격투기 공인 2단, 유도 공인 1단, 합기도 2단의 여성 관장. 전 여성경호원 출신으로 프로골퍼 김미현, 국회의원 추미애 등의 경호 안전지휘를 통제한 바 있다. 스토커 때문에 자살까지 결심한 여성을 경호하면서 삶의 의욕을 되찾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로서 남에게 제압당하는 여성들에게 자신감을 줄 때 가장 흐뭇하다”며 “이 프로그램을 하느라 남편(최선호·운동치료사)과 함께 밤새 여성의 자기방어법에 대해 연구하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으랏차차…날 보호하는 건 나!
으랏차차…날 보호하는 건 나!


“여성이라서 약하다기보다는 안 해봐서 겁내는 거예요. 여성도 스스로 힘을 낼 수 있다는 확고한 의식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날 수강생들은 얼굴보호대와 몸통보호대를 쓰고 첫 대련을 했다. 생전 처음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몸통을 가격하고, 주먹으로 쳐봤다. 의외로 약체인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체구의 크기는 별 상관이 없었다.

오랫동안 ‘공격하는 여자들’은 사회적 금기였다. 여자가 누군가를 위협하고 싸우기 어려웠던 것은 곧 ‘약한 여자가 여자답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이 개념을 정립한 이는 미국 여성학자 마사 매코이. 그는 자신의 책 〈리얼 녹아웃〉에서 ‘자기방어’의 개념을 설명한다. 그는 “여성이 공격받는 것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공격 상황에서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고 여성이 외부의 공격에 반격할 훈련이 되어야만 폭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그램 또한 바로 이러한 여성의 자기방어력에 주목했다. 성폭력 위협을 받을 때 여성이 거부의사 표시를 넘어 자신의 몸을 방어하고 상대를 공격해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수련이 끝난 뒤 김아무개(30)씨는 “요즘은 언제 배운 걸 실제로 써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혼자 다닐 때는 언제나 두려웠는데 지금은 내가 다니는 길이 그냥 편안하게 다가온다”고 웃었다. 이아무개(23)씨는 “성폭력 위험 상황에서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대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23일 마지막 종강 시간, 이들은 띠를 받고 ‘자기방어자’(self-defenser)로 거듭날 예정이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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