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빙간음죄’ 위헌 결정 의미
“여성을 사회약자로 비하” 남녀차별적 요소 수정
성·사랑 문제 일부 법인식 변화…간통죄만 남아
“여성을 사회약자로 비하” 남녀차별적 요소 수정
성·사랑 문제 일부 법인식 변화…간통죄만 남아
헌법재판소는 성인의 성행위와 같은 내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간섭·규제는 최소화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을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간통죄 심판 때 “법이 개입할 수 없는 순수한 윤리·도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합헌 결정을 한 것과 다른 판단이다.
■ ‘여성 비하’ 시정 헌재의 결정 배경에는 ‘남녀평등’의 관점이 녹아 있다. 헌재는 그동안 동성동본금혼(1997), 호주제(2005),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한 ‘부성주의’(2005)에 대해 줄곧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는 등 법으로 고착된 남녀 차별을 바로잡는 결정을 해왔다. 헌재는 이번에도 ‘여성의 혼전 성관계 결정이 착오(남성의 거짓말)에 의한 것이라며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달리 자신의 인생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는 열등한 존재라는 표현이며, 이는 남녀평등을 실현해야 할 헌법적 의무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주심인 김종대 재판관은 위헌 요지를 설명하며 “혼빙간죄가 성립하려면 한 번의 경솔한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는 정상적인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라는 사회적 인식이 전제돼야 하는데, 성개방 사고 등 결혼과 성에 대한 국민의 법의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또 여성의 사회·경제적 능력 향상, 혼인과 상관없는 여성의 혼전 성관계 분위기 확산, 여성의 자율적 판단 능력 등에 비춰볼 때 혼빙간죄는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비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부가 헌재에 “여성 비하”라는 의견을 낸 것도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다.
앞서 헌재는 2002년 같은 조항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성격이 유사한 간통죄에 대해 재판관 4(위헌) 대 1(헌법불합치) 대 4(합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남녀 차별, 형벌로서의 처단 기능 약화, 혼인 및 가족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에서 간통죄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간통죄 합헌 의견을 냈던 민형기·이공현 재판관이 위헌으로, 위헌 의견을 냈던 송두환 재판관이 합헌으로 각각 돌아섰다. 이번 결정에서 이강국(소장)·조대현·송두환 재판관은 “남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 재심·보상 어떻게 1988년 헌재 설립 뒤 형벌 조항에 대해 단순 위헌 결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법재판소법 제47조는 형벌에 관한 위헌 결정 때 ‘소급해서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법이 제정된 1953년 이후 이 조항으로 유죄가 확정된 사람은 해당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 무죄를 선고받게 된다. 또 형사보상법에 따라 보상을 청구하면, 구금일수나 벌금에 따라 법정 가산액을 더한 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헌재 쪽은 “혼빙간죄는 사기죄 등이 경합된 경우가 많아 재심과 보상을 청구하더라도 청구인 모두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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