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돌 맞은 ‘여성의전화’
‘가정폭력은 집안문제 아닌 범죄’
사회적 인식 전환 앞장서 큰반향
78만명 상담·39만명 쉼터 제공
“아직 진행형…특례법 개정 시급”
‘가정폭력은 집안문제 아닌 범죄’
사회적 인식 전환 앞장서 큰반향
78만명 상담·39만명 쉼터 제공
“아직 진행형…특례법 개정 시급”
가정폭력은 형용모순이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혈연집단’(가정)과 ‘신체적·정신적 공격행위’(폭력)는 말뜻으로 서로 엇갈린다. 세상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그래서 더더욱 쉽지 않았다.
흔히 ‘집안일’로 여겨지던 가정폭력을 ‘범죄’로 재조명하는 데 앞장서온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가 11일 창립 30돌을 맞았다. 1983년 6월 서울 중구청 근처 다방 윗층 작은 사무실에 마련한 유선전화 한 대는 매맞는 아내들의 유일한 신문고가 되었다. 2012년까지 30년간 연인원 78만6000여명이 전화·면접·전자우편 등으로 여성의전화 상담을 받았고, 39만여명이 긴급피난처인 쉼터를 다녀갔다. 유형별로는 가정폭력 39.1%, 성폭력이 16.4%였고 부부 갈등(9.5%), 성매매(3.9%) 등이 뒤를 이었다.
출발부터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창립 첫해 6개월 동안 1900여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왔다. 절반에 가까운 860여건이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들이었다. 여성의전화 쪽은 “가정 문제로 여기고 덮어오던 아내구타 문제를 처음으로 사회 문제화하고 상담을 시작했을 때, 아무 곳에도 호소하지 못하고 고통받던 아내들에게 얼마나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요새도 여전히 한 달 평균 3000여건의 상담전화가 서울 은평구에 자리잡은 본부 사무실 3개의 상담 전용 전화에 걸려온다.
도망쳐나온 폭력 피해 아내들을 위해 1987년 3월에는 사무실 한켠을 비워 쉼터를 만들었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최초의 피난처였다. 고시원 쪽방 만한 쉼터에 첫 해 322명이 다녀갔다. 현재는 전국에 65곳의 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1997년은 또다른 분기점이다.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시키기 위해 싸운 14년의 결실이었다. 기대와 달리 법 발효 뒤에도 가정폭력은 크게 줄지 않았다. 1998년 이후에도 연 평균 15만여건의 가정폭력 상담이 진행됐다. 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이후 신고율은 높아졌지만 ‘집안 일이니 알아서 하라’는 등 기존과 같은 대처로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를 참고해 집계한 자료를 보면, 남편·남자친구 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2009년 70명이었지만 2012년 120명으로 나타났다. 3일에 1명 꼴로 가까운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범죄 예방의 기초가 돼야 할 가정폭력 관련 공식 통계는 마련되지 않고 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대검찰청의 ‘2012년 범죄분석’에도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만 구분되어 있을 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범죄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정보는 미흡하다. 가정폭력범죄 특례법 개정, 스토킹방지법 제정, 가사소송법 등 이혼 관련 법률 개정, 사법 기관 관련자들에 대한 가정폭력 의식 교육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의전화는 이날 낮 서울 중구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창립 30주년 기념행사 ‘시작했으니, 두려움 없이’를 열고 30년 역사를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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