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가족
친정엄마의 간섭
친정엄마의 간섭
▶ 참 고마운 친정엄마입니다. 누가 그렇게 반찬을 꼬박꼬박 만들어 가져다주겠습니까? 문제는 그 일이 일방적으로 계속되다 보니 딸에게 스트레스가 됐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딸은 엄마를 인터뷰했습니다.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가는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를 지급하며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오늘 어머니랑 저녁 같이 먹을까?”
남편이 묻는다. 얼굴을 찡그리며 나는 대답한다.
“아니. 며칠 전에도 먹었잖아.”
누군가 상황을 모른 채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면, 나를 시어머니와 식사하러 가기 싫어하는 며느리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는 언제 오니?”라며 연락을 해오는 건 시어머니가 아닌 바로 친정엄마, 그러니까 우리 친엄마다. 결혼 뒤 다른 집은 흔히 고부갈등이 불거진다는데, 우리집은 엉뚱하게도 엄마와의 갈등이 문제다. 결혼한 뒤에도 엄마는 날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
엄마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날 감시하고 간섭한다. 분명 난 결혼까지 한 성인인데도,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내가 몇 시에 집에 들어갔는지 귀가시간을 물어본다. 내가 답이 없으면 남편에게 물어본다. 어쩌다 내가 회식이나 모임 등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들어간 걸 알게 되면 질문에 이어 잔소리가 시작된다.
엄마 술 좀 그만 먹어라.
나 부서 회식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엄마 그렇게 늦게 들어가면 니 남편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나 연석씨한텐 얘기했어. 남편도 암말 안 하는데 엄마가 왜 그래!
엄마 니 시어머니가 아시면 참 좋아하시겠다.
나 (악!)
엄마는 내 외모도 감시하고 간섭한다. 나의 머리, 옷, 피부 등에 대해 엄마는 늘 불만이 많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피부관리 좀 해라”, “옷 좀 사입어”, “이런 옷들은 다 갖다 버려.” 외모에 관한 잔소리는 특히 계절이 바뀔 때면 심해진다. 만날 때마다 옷을 사라고 닦달이다. 나에게는 이미 충분히 많은 옷이 있고, 나는 그것들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하지만 엄마는 그 옷들이 모두 철 지나고 낡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것들이라 말한다. 엄마는 또 결혼 직후부터 당연하다는 듯 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 반찬을 우리집으로 해 나른다.(참고로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그러고는 그걸 핑계로 일주일 내내 연락을 해온다.
엄마 지난번에 해준 가지무침은 다 먹었어? 무슨 반찬 먹고 싶어?
나 아직 많이 남았어. 이번주는 우리 둘 다 바빠서 집에서 밥을 거의 못 먹었어.
엄마 아니 왜 집에서 밥을 안 먹니. 뭐 하고 다니길래?
나 회사 일 때문에 우리도 정신없었다고. 있는 반찬 먹을 테니 새로 하지 마.
엄마 장조림 해놨으니까 시간 될 때 가져가.
나 정말 시간이 없다고. 왜 말도 없이 반찬을 해.
언젠가 우리 부부가 서로 너무 바빠서 한동안 엄마 집으로 반찬을 가지러 가지 못했다. 그러자 엄마는 우리 옆집에 반찬을 맡기고 가기도 했다! 친정집에서 우리집까지 오려면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엄마는 운전을 할 줄 모른다. 즉, 반찬 꾸러미를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는 것이다. 엄마가 반찬을 옆집에 맡겨놓고 찾아가라고 알려온 날은 말문이 막혔다.
엄마가 이러는 게 날 지극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란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난 엄마의 과도한 사랑이 나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진다. 우리집에도 가스레인지가 있고 전자레인지가 있고 냉장고가 있다. 우리집 근처에도 마트가 있다. 인터넷에 널린 게 조리법이다. 남편과 나는 30대 초반의 어른이다. 즉, 우리 둘이서도 충분히 일상의 먹을거리 정도는 해결하며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치 반찬이 떨어지면 우리에게 무언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안달복달하며 재촉하는 우리 엄마를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알고 있다. 엄마가 이렇게 수시로 연락을 해오고 잔소리를 하는 건 딸과 사위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는 걸. 잔소리는 “보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결혼 뒤에도 엄마의 잔소리
엄마는 매주 반찬 해나르고
여전히 귀가시간 확인한다
홀로된 엄마 생각 목메지만 쿨한 남편과 시어머니 부러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주면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될 텐데 엄마는 고아로 자랐다. 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다른 형제도 없다. 엄마는 나 하나를 데리고 평생을 살아오셨다. 엄마에게 혈연이라곤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일상은 내 결혼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둘이 지내오던 친정집엔 이제 엄마 홀로 남았다. 하루 종일 텅 빈 집에 앉아 노년으로 접어든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나도 착한 구석이 있는 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착하게 굴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오히려 남이었으면 그냥 참고 넘겼을지 모르는 일도, 우리 엄마니까 더 참기 힘들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를 가까이서 본 뒤엔 엄마의 대화 방식에 더 불만을 갖게 됐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어찌 보면 무심해 보일 정도로 서로 ‘쿨’하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걱정하고 챙긴다. 가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지만, 뒤끝이 있거나 오래가지 않는다. 그저 오랜 친구 같다. 물론 남편이 3남1녀의 형제자매 중 차남인데다, 막내딸인 시누이가 시어머니에게 열심이어서 그런 관계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엄마에 대한 불만을 더이상 쌓아둘 수 없었다. 엄마 이번주엔 무슨 반찬 해줄까? 언제 올 거니? 나 왜 자꾸 그놈의 반찬에 집착하는 거야! 엄마 응?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홍 서방이랑 싸웠니? 나 엄마, 그냥 솔직하게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안 돼? 엄마 응? 그게 무슨…. 나 엄마 지금 핑계 대는 거잖아. 딸이랑 사위가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다고 해. 자꾸 반찬 가져가라고 하지 말고. 집에서 잘 먹지도 않는데 괜히 반찬만 버리고 있잖아. 그냥 우리가 보고 싶으면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라고. 엄마 ……. 나 자꾸 다른 거 핑계로 간섭하려고만 들지 말고 엄마도 좀 솔직해져봐. 난 성인이라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고 ‘이번 주말엔 우리집에 와서 밥 먹는 거 어때?’라든가 ‘친구들하고 어디를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라, 갈이 갈래?’ 이런 식으로 물어볼 수 있잖아. 그럼 나도 우리 시간을 봐서 엄마랑 함께할 시간을 따로 잡을 수 있을 테고. 엄마는 친구들하고 약속 잡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아? 엄마 그래 알았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 언제 올 거니? 나 보고 싶으니까 오라고 하는 거야? 엄마 그래! 이 망할 것아. 언제 올 거야? 나 몰라. 우리 이번주에도 바빠! 엄마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끊은 거야? 언제 올 거니? 나 (악!) 나와 친엄마와의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엄마가 날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여전히 나를 자신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내 모든 걸 엄마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왜 날 자신과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반찬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새 옷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엄마는 그저 자기 이야기만 한다.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마와 나누는 대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은 그 전부터 이미 현저히 줄어든 지 오래다. 그사이 나는 숱한 남자를 만났고, 많은 인생의 고비를 겪었고, 작지만 큰 성공들도 이뤘다. 엄마가 아는 나의 모습은 오래전 철부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더 많아진 지 오래다. 나는 엄마 딸이지만, 동시에 엄마와 분리된 또다른 인격체다. 유전적인 영향과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겠지만, 엄마와는 사고방식도, 취향도, 추구하는 삶도 다르다. 엄마가 그걸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제는 결혼도 하고 독립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내가 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엄마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조금 더 잘해드리지 못한 걸 후회하며 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이 뻔히 보인다. 하지만 결혼 뒤 더 심해진 엄마의 잔소리와 관심은 지금의 내게는 스트레스일 뿐이다. 나도 엄마를 이해하려 더 노력해야겠지만, 엄마도 그런 나를 이해해줄 순 없을까?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미 다 커버린, 엄마의 하나뿐인 딸
엄마는 매주 반찬 해나르고
여전히 귀가시간 확인한다
홀로된 엄마 생각 목메지만 쿨한 남편과 시어머니 부러워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주면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될 텐데 엄마는 고아로 자랐다. 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다른 형제도 없다. 엄마는 나 하나를 데리고 평생을 살아오셨다. 엄마에게 혈연이라곤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일상은 내 결혼으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둘이 지내오던 친정집엔 이제 엄마 홀로 남았다. 하루 종일 텅 빈 집에 앉아 노년으로 접어든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나도 착한 구석이 있는 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 착하게 굴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많다. 오히려 남이었으면 그냥 참고 넘겼을지 모르는 일도, 우리 엄마니까 더 참기 힘들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를 가까이서 본 뒤엔 엄마의 대화 방식에 더 불만을 갖게 됐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어찌 보면 무심해 보일 정도로 서로 ‘쿨’하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걱정하고 챙긴다. 가끔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하기도 하지만, 뒤끝이 있거나 오래가지 않는다. 그저 오랜 친구 같다. 물론 남편이 3남1녀의 형제자매 중 차남인데다, 막내딸인 시누이가 시어머니에게 열심이어서 그런 관계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남편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엄마에 대한 불만을 더이상 쌓아둘 수 없었다. 엄마 이번주엔 무슨 반찬 해줄까? 언제 올 거니? 나 왜 자꾸 그놈의 반찬에 집착하는 거야! 엄마 응?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홍 서방이랑 싸웠니? 나 엄마, 그냥 솔직하게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안 돼? 엄마 응? 그게 무슨…. 나 엄마 지금 핑계 대는 거잖아. 딸이랑 사위가 보고 싶으면 그냥 보고 싶다고 해. 자꾸 반찬 가져가라고 하지 말고. 집에서 잘 먹지도 않는데 괜히 반찬만 버리고 있잖아. 그냥 우리가 보고 싶으면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라고. 엄마 ……. 나 자꾸 다른 거 핑계로 간섭하려고만 들지 말고 엄마도 좀 솔직해져봐. 난 성인이라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고 ‘이번 주말엔 우리집에 와서 밥 먹는 거 어때?’라든가 ‘친구들하고 어디를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라, 갈이 갈래?’ 이런 식으로 물어볼 수 있잖아. 그럼 나도 우리 시간을 봐서 엄마랑 함께할 시간을 따로 잡을 수 있을 테고. 엄마는 친구들하고 약속 잡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아? 엄마 그래 알았다. 그럼 다시 물어볼게. 언제 올 거니? 나 보고 싶으니까 오라고 하는 거야? 엄마 그래! 이 망할 것아. 언제 올 거야? 나 몰라. 우리 이번주에도 바빠! 엄마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끊은 거야? 언제 올 거니? 나 (악!) 나와 친엄마와의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엄마가 날 독립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여전히 나를 자신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내 모든 걸 엄마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왜 날 자신과 다른 존재라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반찬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새 옷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엄마는 그저 자기 이야기만 한다.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엄마와 나누는 대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은 그 전부터 이미 현저히 줄어든 지 오래다. 그사이 나는 숱한 남자를 만났고, 많은 인생의 고비를 겪었고, 작지만 큰 성공들도 이뤘다. 엄마가 아는 나의 모습은 오래전 철부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더 많아진 지 오래다. 나는 엄마 딸이지만, 동시에 엄마와 분리된 또다른 인격체다. 유전적인 영향과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겠지만, 엄마와는 사고방식도, 취향도, 추구하는 삶도 다르다. 엄마가 그걸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제는 결혼도 하고 독립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내가 철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엄마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조금 더 잘해드리지 못한 걸 후회하며 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이 뻔히 보인다. 하지만 결혼 뒤 더 심해진 엄마의 잔소리와 관심은 지금의 내게는 스트레스일 뿐이다. 나도 엄마를 이해하려 더 노력해야겠지만, 엄마도 그런 나를 이해해줄 순 없을까? 엄마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미 다 커버린, 엄마의 하나뿐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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