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82년생 김지영과 함께하는 공감토크’
“출산 뒤 ‘차별’ 느꼈다” “결혼 말자, 마음 굳혀”
“왜 육아가 여성만의 일인가, 배려 받아야하나”
“체감할 만한 변화 늘어야 인식개선도 가능하다”
“출산 뒤 ‘차별’ 느꼈다” “결혼 말자, 마음 굳혀”
“왜 육아가 여성만의 일인가, 배려 받아야하나”
“체감할 만한 변화 늘어야 인식개선도 가능하다”
22일 오전 서울 종로 한 카페에서 열린 ‘82년생 김지영과 함께하는 공감토크’ 자리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처음으로 ‘차별’ 느꼈다여러 김지영이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건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었다. 2000명 규모의 기업 경영지원팀에서 인사관리 일을 했다는 ㄱ씨는 “6년 간 전업주부로 지내고나니 아예 다른 일을 알아봐야 했다.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말했다. “다시 그쪽(경영지원) 일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야근이 많은데 아이 봐줄 사람도 없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여성새로일하기센터’(경력단절 여성 취업지원 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려 했는데, 교육 받는 동안 아이를 맡아주는 것도 개월수 제한이 있더라구요. 포기하고 그대로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사이버(온라인 교육)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는데 일할 데가 없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 하기엔) 업무 시간이 너무 많거나 거리가 멀었어요. 그래서 다시 실습까지 해가며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는데 어린이집조차도 면접에서 ‘혹시 본인의 아이가 아플 탦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구요. 할 말이 없었어요.” 연년생 아이의 엄마로 육아휴직 중이라는 ㄴ씨는 “아이를 낳고 난 뒤 처음으로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 전에는 회사에서 여자라서 차별받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육아휴직하는 동안 제 일을 팀원들이 나눠서 하게 됐어요. 죄 지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집에선 어머니 도움을 받아야하니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그 전엔 항상 당당했는데 애 둘 낳고 보니 주변에 다 미안한 채로 지내게 됐어요. 집 근처 어린이집은 종일반이라 오후 7시반까지 맡길 수 있는데도 할머니들이 다 4시에 데려가더라구요. 저도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에 데리고 오고 있지만, 회사 다니게 되면 4시에 퇴근할 수 없잖아요. 정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고비를 넘길 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결혼하지 말자, 마음 굳혔죠입사 뒤 아이를 낳고 2년 동안 경력이 단절됐다가 다시 취직에 성공했다는 ㄷ씨도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애를 보는 동안 친정엄마가 보기에는 그게(경력단절) 안타까웠던 모양이예요. 4~5년 정도 애를 봐주셨는데 친정엄마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극복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한데 엄마 몸이 많이 안 좋아지시더라구요. 그러고서도 겨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갔는데 어린이집보다 더 일찍 끝나요. 애를 봐줄 데가 없어서 돌봄교실 맡기고, 어쩔 수 없이 학원 보내고 도우미 불러요. 고학년이 되니 돌봄교실도 보낼 수 없고 방학 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도우미도 일찍 부르고 비용도 더 많이 나가죠.” 육아 부담을 오롯이 홀로 떠안은 김지영은 자연스레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한다. 미혼이지만 ‘딩크족’(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을 희망한다는 34살 ㄹ씨는 “여동생이 아이를 낳은 뒤 경력이 단절되는 걸 보고 더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친동생이 결혼해서 애가 있는데, 공공기관에 다녔는데도 육아휴직 뒤 눈치가 보여 퇴사했어요. 이후엔 취직이 안 되더라구요. 동생 상황을 보면서 더 생각이 굳어졌어요.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중심으로 삶이 돌아간다’고. 제가 아이 안 낳는다고하면 들은 척도 안했던 엄마도 동생이 그러고나니 ‘애 안 낳고 오순도순 사는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른들 생각마저 변하고 있어요.” 미혼의 5년차 직장인이라는 ㅁ씨도 “올해 서른인데 또래에 결혼 포기자들이 많다”고 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워요. 미래가 암담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평소에 이런 얘기까지 해요. ‘우리 이상형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책임질 수 있는 파트너다’, ‘돈 잘 버는 거 필요 없고 내가 하는 일 존중해주고 가사와 육아를 합리적으로 분담해줄 수 있는 파트너가 최고의 이상형이다’라고.” 이 사회의 수많은 김지영한테 절실한 건 남성의 실질적인 육아참여같은 사회문화적 변화다. 직장어린이집 등 육아 인프라 확충은 필수다. 남편이 (회사 노조가) 파업 중이라 덕분에 애를 같이 보게 됐다는 ㅂ씨는 “육아가 남성들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 애가 10살인데 아이한테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은 둘이 해도 부족하더라구요. 회사가 파업하면서 남편이 아이를 처음 돌보게 됐는데, 남편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고 있어요. 육아를 경험하는 게 남성에게도 좋아요.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해야 해요.”
왜 미안해 해야 하나요?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직장어린이집을 대거 확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다. ‘2살, 4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소개한 ㅅ씨는 “조직 내에서 양성평등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서라도 직장어린이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육아휴직 뒤 복직하고 보니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했어요. 양쪽 어머니들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됐죠. 다행히 신랑의 마인드가 깨어 있는 편이라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게 가능했던 건 직장보육시설 덕이예요. 맞벌이 부부에게 가장 좋은 복지의 꽃은 직장보육시설입니다. 한 직장에 단독으로 어린이집을 짓기 어려우면 (주변 회사들이) 공동으로라도 확충해야해요.” 체감할 만한 실질적 변화가 필요하단 주문도 있었다. ㅇ씨는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미안해했다’, ‘배려 받고 있다’, ‘다행이다’라는 것이다. 왜 육아가 여성만의 일이고, 배려 받고 미안해 해야하는 일이 됐나. 직장이 있든 없든,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든 없든, 각자의 사정에 관계없이 아이를 낳고 싶으면 얼마든지 낳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지 않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ㅇ씨는 또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데, 각자 주변에서 실제로 변하는 걸 접해야 인식의 변화도 가능하다. 주변에 남자가 육아휴직하는 사례가 실제로 많아야 한다. 그래야 생각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체감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늘어야 인식개선도 같이 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2018년에도 김지영은 태어난다. ‘82년생 김지영’은 2018년생 김지영한테 ‘나와 다를 것’이라는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이날 대화 자리를 만든 정현백 장관은 “여성가족부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여러분들이 여론 형성을 해야 한다. 이렇게 얘기해주는게 중요하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