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아무개씨의 딸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여성가족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가림막 뒤로 비공개 출석하고 있다. 맨앞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을 계기로 국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이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강서구 사건’ 피해자의 둘째딸 김아무개씨는 지난달 3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이번 사건은) 사회가 방관한 결과물이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없도록 실질적인 법을 제정해주시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2월 발의한 이 법은 여성폭력방지정책을 수립하고 피해자를 보호, 지원하는 걸 국가책무의 하나로 규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단순히 개인 간의 갈등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별적인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로 바라본다는 인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 법이 시행될 경우, 국가는 5년마다 여성폭력방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 여성가족부장관은 3년마다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해 관련 통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폭력’의 개념을 ‘성별에 기반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지속적인 괴롭힘 행위,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 등 새로운 유형의 폭력을 명시한 점도 기존 법안의 사각지대를 보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행법은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만을 여성폭력의 범위로 보고 있어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같은 새 유형의 폭력에 충분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성폭력처벌법 조항엔 없는 ‘2차 피해’를 명문화한 것도 특징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겪는 사후 피해, 집단 따돌림, 사용자로부터 부당한 인사조치 등을 ‘2차 피해’로 정의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법안명이다. 국회는 법안 이름에 ‘여성폭력’을 명시하는 걸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 의원은 3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다른 의원들이) 법명을 문제 삼는다. 여성만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닌데 ‘여성폭력’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용을 포괄할 수 있다면 법명은 어떻든 상관없다”면서도 “역차별이라는 건 그 일을 함으로써 누군가가 반대로 차별을 당하거나 기회를 박탈당해야 한다. 이 법은 ‘폭력을 방지하자’는 의미인데 왜 역차별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회 여가위에서 법안을 심사할 때도 ‘여성폭력’을 법명에 넣지말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폭력방지법’이나 ‘성차별에 의한 폭력방지법’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반면 정부는 기존안을 유지하자는 쪽이다. 이숙진 여가부 차관은 이 같은 의견에 “(법 조항에서) ‘여성폭력’을 ‘성별(gender)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밝혔다. (큰 틀에서) 소수의 피해자인 남성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부분을 정의 조항에서 담보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법안 통과의 열쇠는 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쥐고 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법명을) ‘여성폭력’보다 ‘젠더폭력’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현재 전문위원에게 명칭에 대해 연구를 맡긴 상황”이라며 “이번달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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