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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용산공원 조성이 성평등 사업? 황당하게 쓰이는 ‘성인지 예산’

등록 2018-11-11 19:09수정 2018-11-11 21:08

예산 도입 10년째 실효성 의문
관련없는 사업 상당수 끼워넣어
의무편성비율 없고 국회도 무관심
전문가 “공무원 평가에 반영하고
주무부처 기재부가 적극 나서야”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예방사업’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사업 예산도 정부의 성인지 예산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여성들의 집회 장면.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예방사업’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사업 예산도 정부의 성인지 예산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여성들의 집회 장면.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용산 미군기지 터에 공원을 조성하거나 초·중·고 보건교사에게 감염병 전문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이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까?

지난해 예산안만 보면 답은 ‘그렇다’이다. 두 사업은 모두 2017년 성인지 예산 항목에 속한다. 성인지 예산은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사업이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시행되는지 평가하는 제도다. 예산이 각 성별에 미치는 영향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분석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집행하는 예산을 가리킨다. 일·가정 양립 확산, 고용격차 해소, 여성폭력 근절을 명시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도 일부 포함된다. 해마다 기획재정부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상설협의체를 만들어 3·5·8월 각 부처로부터 제출받은 성인지 예산을 검토한 뒤 국회에 제출한다.

올해로 성인지 예산 도입 10년째를 맞지만, 제도의 실효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사업 목표나 평가지표가 성평등과 관련이 없어도 ‘끼워넣기’식으로 성인지 예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성평등과는 거리가 있는 시대착오적인 예산도 ‘성인지’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25조6천여억원 규모의 내년 성인지 예산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의 ‘수사경찰전문교육’ 사업은 △금융범죄 수사 △현장감식 기초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등 성평등과 무관한 직무교육 위주로 이뤄지는데도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됐다. 경찰청은 “경찰수사연수원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 경찰의 성평등 감수성이 증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수원을 수료한 경위 ㄱ씨는 “성평등 교육 효과를 측정하긴 어렵다. 10일 과정에서 관련 교육을 받은 건 3시간뿐”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예방사업’처럼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진 내용도 있다. 지난해 사업 내역을 보면 △대학생 생명사랑 서포터즈 운영 △포털사이트를 활용한 인공임신중절예방 관련 정보 제공 등으로 구성됐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외국에선 여성의 건강을 위해 임신중절을 합법화하거나 의료접근성을 높이면서 보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복지부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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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데도 예산 낭비 지적조차 나오지 않는다. 성인지 예산의 적절성을 심사해야 하는 국회의 관심이 해마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춘순 국회 예산정책처장이 쓴 단행본 <국가재정>은 “2010년 성인지 예산안과 관련해 발언한 의원은 8명이었으나 2018년 1명의 의원만이 대체토론 과정에서 발언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성인지 예산 성과목표 달성률은 70.9%(2015년)→69%(2016년)→67.3%(2017년)로 떨어졌다.

성인지 예산 의무편성 비율도 없고, 편성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도 없어서 생긴 일이다. 기재부의 예산안 편성 지침을 보면,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 추진 사업, 지난해 성인지 예산서 작성 사업, 기타 성별 영향 분석이 가능한 사업”을 대상으로 작성하라고만 명시하고 있다. 지침이 추상적이다 보니 각 부처가 제출하는 예산안도 형식적이고,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도 없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입법심의관은 “올해 여가위 소속 의원들이 여가부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주무 부서인 기재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 마나 한 상황”이라며 “공무원 실적을 평가할 때 성평등 관련 지표를 추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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