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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모자보건법, 여성의 몸은 언제쯤 ‘출산 도구’에서 벗어날까

등록 2018-11-15 17:58수정 2018-11-15 21:59

여연 “‘모자보건법’에서 ‘재생산권 보장법’으로” 토론회
모자보건법,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여성의 몸을 도구화
“현행 모자보건법, 미혼·장애여성 차별”
“인권과 건강이란 보편적인 관점에서 접근, 개정해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집회를 열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형법 제269조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 중구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집회를 열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을 맞아 형법 제269조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의 몸은 국가의 정책방향에 따라 취급받는 ‘도구’와 같았다. 그 중심엔 “임신·분만·수유 및 생식과 관련하여 자신의 건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그 건강관리에 노력해야 한다”며 ‘모성’의 의무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이 있다.

1960년대 산아제한이 목표였던 국가가 인공임신중절을 합법화하고자 제정한 이 법은 시간이 흐르며 저출산 정책 아래 적극적으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바뀌지 않은 건 여성 개인의 건강이나 선택권을 출산보다 등한시하는 국가의 인식이다.

모자보건법의 개정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15일 오후 서울 서교동 창비 건물에서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선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을 주체적으로 보장하는 법제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장임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모자보건법에 대해 “건강은 기본적인 권리로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관점에서 구성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출산과 인구에 대한 정책적 방향의 변화에 따라 법률이 변경되고 있다. 최근에 법을 개정하면서 ‘가족계획’이란 문구를 제거했음에도 전반적인 목적과 정의의 변경 없이 여전히 여성의 몸을 출산과 양육을 위한 도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모자보건 관련 정책은 저출산에 대응한다는 인구 정책 아래 난임을 지원하거나 인공임신중절을 예방하는 정책 위주로 집행되고 있다. 난임지원 사업 예산을 보면 여성의 건강과 출산에 대한 국가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정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005년 약 70억원 규모였던 모자보건사업예산이 2006년 326억원 규모로 4.6배 증가한 것은 ‘난임부부지원사업’ 예산 때문이다. 올해 국민건강보험이 (난임수술인) ‘보조생식술’을 포함하자 모자보건사업 전체 예산이 전년 대비 40%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6년 이후 모자보건사업 예산 가운데 난임부부지원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39.1%), 2009년(35.6%), 2013년(32.0%)을 제외하곤 대부분 50%를 상회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의 또다른 문제는 미혼, 장애 여성이나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차별을 공식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림 성과재생산포럼 기획위원은 “난임여성에 대한 지원은 법적인 혼인 관계에 따라 지원 대상이 제한되고 있다”고 밝혔다. 동일한 난임 진단을 받더라도 미혼 여성, 선천적인 장애나 질병으로 인해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은 국가의 난임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가가 ‘생식 건강’에 대한 보편성을 고민하며 모자보건법을 보완해야한다”고 했다.

모자보건법이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허용 한계’ 조항도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를 명시함으로써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용인한다.

이유림 위원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실제로 낙태 허용사유를 묻는 설문지에서 태아의 이상이나 기형 사례로 ‘다운증후군, 뇌 기형, 복잡심장기형’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장애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모자보건법을 보편적인 건강인 재생산 권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장임다혜 부연구위원은 “재생산 권리의 관점에서 성과 임신, 출산, 양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면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며 모자보건법을 ‘재생산건강법’으로 전면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 때 재생산권리는 “임신여부와 시기, 자녀의 수를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 성관계·피임 관련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성과 재생산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재생산에 대한 차별·강요·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라고 정의했다. ‘인공임신중절 예방 등의 사업’을 폐지하고 ‘출산 결정의 자유보장을 지원하는 사업’과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을 지원하는 사업’을 신설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모자보건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공임신중절 허용한계’ 조항도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안전성을 기준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낙태 금지’에서 ‘안전한 임신중단 지원’으로 국가가 정책적 틀을 바꿔야 한다. 지역이나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한 제약 없이 임신중단과 관련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권을 보장하고 약물에 의한 임신중단을 포함할 것, 배우자를 포함한 제3자의 동의 규정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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