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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박원순’이라는 렌즈를 빼면 보이는 것

등록 2021-01-06 17:08수정 2021-01-08 09:35

현장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피소사실을 유출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오후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의 일부다. 검찰이 12월30일 박 전 시장이 피소될 상황이라는 정보가 서울시로 흘러들어 가게 된 통로 중 하나로 남 의원을 지목한 뒤, 6일 만에 낸 입장이었다.

남 의원은 “피소사실”을 서울시에 유출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임순영 당시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피소사실을 알지 못했고, 젠더특보에게 단지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라는 해명이었다. 남 의원은 “나는 피소사실을 몰랐다”고 한 지난해 7월 민주당 최고위원회 발언이 여전히 사실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사과보다는 본인의 결백을 강조하는데 방점이 찍힌 입장문이었다.

기술적으로는 사실에 부합하는 해명이었을지 모른다. 남 의원이 젠더특보와 통화한 시점(지난해 7월8일 오전 10시33분)은 피해자 쪽이 박 전 시장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하기 6시간 전이었다. 피소를 ‘준비’ 중이었던 상황이니 피소가 ‘성립’되기 이전에 이뤄진 통화다. 또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여성단체 쪽에 전한 정보가 “박 전 시장에 대한 미투사건 고소 예정” 정도였으니 구체적인 혐의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부분적 사실은 포괄적 진실을 가리기 위해 부각되곤 한다. 남 의원과의 통화 6분 뒤 젠더특보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공교롭게도 피해자 쪽 법적 대응을 돕던 단체였다. 남 의원이 물었다는 “불미스러운 얘기”는 불과 4시간30분만에 박 전 시장의 귀에까지 흘러들어 갔다. 이때 젠더특보는 ‘4월 성폭행 사건 이후 피해자와 연락한 사실이 있냐’며 피해자까지 특정해 박 전 시장에게 상황을 물었다. 여전히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하기 1시간30분 전이었다. 다음날 정보의 출처를 묻는 당시 비서실장의 질문에 임 특보는 “남 의원이 여성단체 쪽에서 듣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피소사실 유출과 그 뒤 이어진 여당의 대응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라는 본질에 비하면 곁가지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운동과 정치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박 전 시장의 결백을 은근히 암시하며 2차 가해를 넘나들던 민주당 남성 의원들은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여성의원들에게 떠넘겼다. 성명서 문구를 짜던 일부 여성의원들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했고, 관철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고집한 의원 중에는 남인순 의원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진선미 의원,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를 지낸 김상희 의원도 있었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20년 넘는 여성운동으로 ‘절대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훈련된 활동가였던 자신 역시 한동안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눈에다 렌즈처럼 쓰고 보고 있었다”고도 고백했다. 박 전 시장의 죽음 뒤 5개월이 흐른 지금, 일부 지지자들은 피해자의 손편지를 실어나르며 2차 가해를 벌인다. 낙태죄 폐지, 디지털 성범죄로 고군분투하던 젊은 여성활동가들은 피소 유출에 한 집단으로 묶여 매도당하고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는 ‘박원순이라는 렌즈’를 뺄 때도 되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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