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볼 레코드의 이봉수 사장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 흘러간 영미 대중문화를 제조하는 ‘20세기 소년’ 비트볼 레코드의 이봉수 사장
2년 전 음악담당 기자를 하던 시절, 하루에도 여러 장씩 책상 위에 쌓이는 음반들 중에 제목부터 표지 색상까지 남달라 항상 눈에 띄던 음반사가 있었다. ‘비트볼 레코드’(Beatball Records)다. 비트볼의 이름으로 음반을 낸 밴드는 ‘라이너스의 담요’ ‘피들 밤비’ ‘몽구스’ ‘머스탱스’ ‘스마일즈’ ‘피리과’ 등이 있고, 국내에서 발매하거나 본래 앨범을 보강해 재발매한(리-이슈) 외국 뮤지션으로는 ‘오니시 유카리’ ‘뮤추얼 언더스탠딩’ ‘린다 퍼핵스’ 등이 있다. 눈치 챈 사람은 이미 알 수도 있고, 도저히 모르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모를지도 모르지만 비트볼에서 내놓은 80여가지 음반에서는 일관되게 독특한 정서가 느껴진다. 흑백과 총천연색 칼라의 중간 쯤에 위치한 시대이자 팝과 록, 패션, 디자인 등 대중문화의 전성기였던 1960~1970년대의 에너지가 만들어 낸 친근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 정서를 만들어가는 비트볼 레코드의 한 가운데 이봉수(35) 사장이 있다.
물에 젖은 CD 4천여장을 버리고 난 뒤…
이 사장은 자신을 ‘1960~70년대에 경도된 사람’이라고 일컫는다. “어릴 때부터 60~70년대에 유독 끌렸어요. 저희는 공중파 티브이를 보면서 자란 세대잖아요. 어릴 때 응암동에 살았는데 그때 방영됐던 미국 시트콤 등을 보면서 동네문화를 이끌기도 했죠.(웃음) 그 시대에 대한 유사향수를 느끼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문화에 빠져 살고 있으니까요. 60~70년대는 대중문화의 시작이자 끝이었던 유일무이한 시대였죠. 그 당시 영미권 문화와 거기에 영향을 받은 일본 문화가 제게는 너무 매력적이에요. 그 시대 문화는 색채감과 시대의 공기가 달라요. 상상력이라는 게 가능했던 시대였으니까요.”
물론 그때도 유행은 있었고 유행을 선도하는 몇몇 선구자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대중문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유행을 따라가는 개개인의 반응이다. “요즘은 손수제작물(UCC) 같은 도구들이 많아서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상 획일화돼 간다고 봐요. 그런 도구를 통해 개개인의 취향이 개성있게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때는 달랐어요. 더 사적이고 더 적극적이었죠. 그 당시에는 유행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자기가 직접 만든 자주제작 음반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지역 레이블과 인디 레이블도 굉장히 많았죠. 그런 것들이 함께 문화를 만들어간 거에요. 지금 대중문화는 재미가 없어요.”
이봉수 사장이 처음 비트볼 레코드를 시작한 것은 2000년이었다. 간판을 달고 처음 일본 3인조 여성 밴드 ‘마마기타’의 음반을 발매했다. 그러나 반응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잠시 주춤하다가 2002년 김상만·김영준씨와 손을 잡고 다시 비트볼 레코드를 시작했다. 엘피(LP)를 찍어내고 국내에서 음반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면서 제법 괜찮았다. 회사도 스튜디오가 있는 일산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국내 밴드를 영입해 음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라이너스의 담요’ 음반이 그렇게 나왔다. 다른 밴드도 하나둘씩 들어와 회사가 제법 자리를 잡는가 했는데, 2005년 여름 어느날 물난리가 났다. 회사가 있던 건물의 펌프가 고장나서 물폭탄을 맞았고, 물에 젖은 시디 4천여장과 엘피를 버려야 했다. “지금도 생생해요. 눈앞이 캄캄했죠. 일산 사무실을 정리하고 홍대로 돌아왔어요. 홍대로 돌아오면서 마음도 조금 고쳐먹었어요. 예전에는 리-이슈 음반으로 번 돈을 모조리 밴드에 쏟아부었는데, 그 때부터는 경영 마인드를 조금이나마 가지려고 노력했죠. 지금은 흑자경영으로 가는 중이에요. 탄력을 받은 거죠.”
여기서 말하는 ‘탄력’은 경영에서 보이는 현상뿐 아니라 비트볼이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도 의미한다. 이 사장도 그렇고, 비트볼도 그렇고 음악적 성격과 취향이 뚜렷하다. 비트볼에서 음반을 내는 밴드들도 비슷한 취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60~70년대 음악에 관한 소스도 많이 제공하고 얘기도 많이 하면서 그 당시 음악을 재현하고 또 이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요. 최근에 저희의 이런 취향과 그 당시 음악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고 있어요. 비트볼의 소속 밴드 음악을 들으러 왔다가 이쪽 매력에 빠지면서 다른 리-이슈 음반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거꾸로 옛날 음악을 좋아했던 분들은 리-이슈 음반 때문에 비트볼을 찾았다가 그 당시 음악을 현재진행형으로 재현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밴드를 보면서 좋아하기도 해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이뤄지니까 신나요. 이게 바로 탄력이죠.”
30대 이상에겐 오니시 유카리를 추천함
마지막으로 21세기에서 20세기를 즐기고 싶다는 ‘20세기 소년’(!) 이봉수 사장의 머릿속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몇가지 문답을 소개한다.
문 : 비트볼 레코드 음반 중 꼭 들어봐야 하는 음반 석 장을 꼽자면?
답 : 30대 이상에게는 일본 오사카의 멋진 여가수 오니시 유카리의 앨범 <오니시 유카리와 신세계>를 추천한다. 60년대 대중문화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68년 제인 폰다 주연의 영화 <바바렐라>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재발매판도 있다. 오리지널 앨범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명반이다. 캐나다의 유명 편·작곡자들이 모인 ‘더 뮤추얼 언더스탠딩’의 <인 원더랜드>는 비트볼의 리-이슈 음반 중 가장 잘나가는 음반이다.
문 : 타임머신을 타고 60~70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나?
답 : 60년대 영국 런던의 피카델리에 가보고 싶다. 논다 하는 영국 젊은이들이 모였던 곳이다. 당시 활발하게 운영되던 공연장도 많았다. 그곳에 가보고 싶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물론 그때도 유행은 있었고 유행을 선도하는 몇몇 선구자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대중문화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유행을 따라가는 개개인의 반응이다. “요즘은 손수제작물(UCC) 같은 도구들이 많아서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상 획일화돼 간다고 봐요. 그런 도구를 통해 개개인의 취향이 개성있게 드러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때는 달랐어요. 더 사적이고 더 적극적이었죠. 그 당시에는 유행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자기가 직접 만든 자주제작 음반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지역 레이블과 인디 레이블도 굉장히 많았죠. 그런 것들이 함께 문화를 만들어간 거에요. 지금 대중문화는 재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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