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얼마 전 연애에 관한 책을 쓰고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말했더랬다. “그러나 세상엔 연애를 잘하는 법 따위는 없습니다.” 기자가 물었다. “그런데 왜 책을?” “연애를 잘하는 법을 쓴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라는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도대체 연애나 사랑을 어떻게 전략과 기술로 접근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다만 설명하기 위함이거나 한 권이라도 더 팔아먹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연애를 잘하려면 오로지 연애를 시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무의미하다.
연애를 잘하려고 연애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것은 시 잘 쓰려고 시작법을 백만 번쯤 읽었다는 사실과 다르지 않다. 미련한 짓이다. 시를 잘 쓰려면 시작법을 읽기보다 짠한 사랑을 하는 것이 역시 백만 배쯤 더 나은 일이다. 이제 말씀의 기술이나 대화 비법을 주제로 연재를 하려는 참에 구절구절 연애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대화의 방법을 다루는 글도 연애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 역시 하는 사람이 다르고 듣는 사람이 다르고 여러 상황이 각기 다른데, 어떤 ‘시추에이션’에서 어떤 말씀이 효과적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극복 못할 한계가 있다. 그러니 필자가 이 따위 부정적인 인식에서 출발하는데 모쪼록 독자가 지나치게 몰입하여 읽는 것은 경계하시길 바란다. 물론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근데 왜 굳이 연재를 하려는데?”
쏟아지는 연애서적이 사랑을 잃어가는 이 시대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듯, 온갖 제목의 대화 관련 서적이 쏟아지는 이유 역시 말문이 닫힌, 소통과 관계가 단절된 시대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다. 이 글이 닫힌 말문을 여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연애를 잘하려면 연애를 시작해야 하듯, 말을 잘하려면 일단 말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닫힌 말문을 열려면 그럴듯한 전략, 전술,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우문현독(愚文賢讀)을 기대한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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