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③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③
중노동과 상급자의 호통을 딛고 지금의 자리 오른 주방장들 정말 대단
중노동과 상급자의 호통을 딛고 지금의 자리 오른 주방장들 정말 대단
지난번에 W호텔을 찾는 브이아이피(VIP)를 저희끼리 ‘더블유아이피(WIP)’라고 부른다고 말했죠? 더블유아이피 중에서 기억나는 스타 몇명만 조금 더 소개할게요. 제가 축구의 고장 리버풀 출신인 만큼 박지성 선수를 빼놓 수 없죠. 박지성 선수가 무릎수술을 받고 지난 5월 귀국한 뒤 W호텔에서 재활훈련을 했어요. W호텔 수영장에서 일주일에 세 차례 몸을 움직이는 일종의 재활치료를 받은 거죠. 둘이 함께 점심을 하면서 고향 영국 얘기, 축구 얘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동료들 얘기 등 많은 대화를 나눴죠. 박지성의 성격은 정말 소탈하고 좋았어요. 그는 짬뽕을 먹었죠. 그가 했던 얘기들 중에 웨인 루니는 너무 힘이 좋아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너무너무 날쌔다는 게 떠오르네요.
재활훈련 받던 박지성과 점심을 먹다
아, 물론 박지성도 1급의 선수예요. 맨유 같은 세계적인 축구팀에서 선발 멤버로 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이미 어마어마한 스타죠. 아시아의 스타예요. 박지성은 과연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더군요. 우리 뒷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한국인 남녀 한쌍은 박지성을 더 잘 보려고 서로 돌아가면서 자리를 바꾸더라고요. 로비에 서 있던 우리 직원들도 “박지성, 박지성”이라고 소곤거렸죠.
당구선수 ‘흑거미’ 자넷 리도 정말 대단했어요. 그녀와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는데 솔직히 전 좀 긴장했어요. 그녀가 팔로 내 허리를 감싸서 사진을 잘 보면 제가 충격받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죠, 하하. 테니스 스타 비너스 윌리엄스와 서리나 윌리엄스는 호텔 스파가 아주 맘에 들었는지 스파 직원들과 기꺼이 기념사진을 찍었어요.
제가 공개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지난번에 ‘W호텔에서 벌어진 일은 그냥 W호텔에 머물게 한다’는 게 W호텔의 황금률이라고 말했죠? 박지성이나 자넷 리, 비너스 윌리엄스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색깔을 싫어하는지 개인적 선호를 공개하는 게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사소한 개인적 호불호가 모두 밖으로 공개하면 안 되는 사생활의 중요한 일부인 거예요. 다른 친구와 나눈 얘기나 비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사람은 아마 친구가 없을 거예요. 호텔리어도 마찬가지죠.
호텔리어가 하는 일이 뭔지, 그들이 누군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일단 끝난 거 같군요. 제가 처음 본격적으로 호텔일을 배우기 시작한 17년전으로 돌아가볼까요. 1990년 미국 하얏트 호텔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 얘기예요. 그때 하얏트 호텔에서 기술 책임자로 일하면서 동시에 호텔 경영 수업을 받고 있었어요. 전 요리사 지망은 아니었지만 교육의 일환으로 주방에서도 일주일 동안 실습을 했어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주방장이 어느 나라 출신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주방장이 아주 무서웠죠. 저는 매사에 늦어서 허구한날 그 주방장한테 혼이 났어요. 끔찍했죠.
“요리는 좋아해도 요리사는 못되겠구나”
주방은 호텔에서 가장 일하기 어려운 곳 가운데 하나예요. 전 요리사들을 엄청나게 존경해요. 그때 일주일 동안 주방에서 일한 뒤 전 깨달음을 얻었죠. ‘내가 요리를 좋아하지만 요리사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말이에요. 과거에는 주방에서 일한다는 건 곧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해야 한다는 걸 뜻했죠. 최소한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W호텔은 개방형 주방을 갖고 있고 전 우리 주방장들이 손님들을 만나면서 브런치(아침과 점심 중간 시간대에 먹는 식사) 식탁 사이를 돌도록 시켜요. 1천명분의 감자와 당근 껍질을 하루 종일 깎는 일은 단조롭기 짝이 없죠. 상상할 수 있나요? 후텁지근한 주방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나선 하루가 끝날때쯤이면 당신 몸에선 수프 냄새가 나요. 몇년씩 고된 중노동을 견디고 주방 상급자들로부터 호통을 들어가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른 주방장들을 전 정말이지 무한히 존경합니다.
닉 히스 W서울워커힐호텔 총지배인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당구선수 자넷 리(왼쪽)와 함께. 그녀가 팔로 허리를 감싸 조금 당황했다. W서울워커힐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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