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을 잡아먹는 냄비
[매거진 Esc] 요리의 친구들
요리가 일방적 헌신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냄비를 통해 배웠다.
군복무를 하던 1999년 여름, 일병 4호봉 때 주계병(취사병)에 뽑혔다. 내가 소속된 중대본부는 30명 남짓한 소규모여서 정식 취사병 없이 전투병 가운데서 주계병을 뽑았다. 내가 주부습진에 시달릴 위험에도 자원한 것은, 첫째 여러 고참보다 한명의 고참에게 갈굼당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기대였고, 둘째 아침식사가 끝나고 점심밥을 준비할 때까지 약 세 시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나보다 두살 어렸던 주계 선임병은 내가 나이 많고, 가방끈도 긴데다, 1년만 현역 근무를 하고 나머지 1년은 고향 군부대에서 출퇴근을 하는 ‘상근’이라는 사실이 싫었는지, 지옥의 사자처럼 굴었다. 자유시간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 자유시간을 가장 많이 빼앗아간 것은 육수용 냄비였다. 냉면도 ‘짬밥’으로 보급되는 걸 아시는지? 강화도 옆 석모도의 후텁지근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양동이보다 조금 더 큰 냄비에 쇠고기 육수를 우렸다. 귀중한 자유시간은 냄비를 지켜보는 일에 바쳐졌다.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고 육수가 끓어 넘치는지도 지켜봐야 했다. 그동안 선임병은 잠을 잤다.
냉면은 인기가 많았다. ‘짬밥’에 손도 안 대던 병장들도 한 ‘츄라이’(트레이) 가득 냉면을 퍼먹었다. 이병들은 고봉으로 쌓아올린 냉면을 세 츄라이씩 먹었다. 그러나 평소보다 세배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 음식이 단 20분 만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보다 허무함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요컨대 냉면은 단순히 노동력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요리였다. 게다가 기름이 잔뜩 묻은 육수용 냄비가 설거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함께 장을 보고 준비하지 않은 요리는 만드는 사람이 먹는 사람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헌신임을 몸으로 배웠다.
냄비는 내 어머니에게도 헌신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 봄 신혼의 어머니는 햇감자를 삶다 80원짜리 양은냄비를 홀라당 태웠다. 당시 아버지 월급이 1만2천원이었므로 비싼 냄비는 아니었지만, 전세금 빚에 허덕이던 어머니 가슴은 냄비바닥처럼 까맣게 탔다. 통계청이 지난달 10일 발표한 ‘2007년 대한민국 행복 테크’를 보면, 맞벌이 주부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28분인데 남편은 32분밖에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사이좋게 냄비를 맞잡으면 두 사람의 관계가 더 후끈 달아오르지 않을까?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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