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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희를 불치병으로 몰지 마세요

등록 2007-11-14 17:37수정 2007-11-21 19:57

너 그거 봤어?
너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전과자와 외국인 신부 따뜻하게 품은 마이너리티 프로그램의 선전에 박수를

7일 시작한 한국방송 수목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와 11일 개편과 함께 새롭게 선보인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는 장르도 주제도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비슷한 점이 있다. 전과자와 외국인 신부라는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를 따뜻한, 그러나 과장되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제 몫에 비해 시청률을 못 챙기는 마이너 프로그램에 각별한 애정을 가져온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시나리오 작가 조진국씨가 두 프로그램의 선전을 응원했다.

정석희 <일요일이 좋다>가 개편하면서 ‘인체탐험대’ ‘기적의 승부사’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이하 사돈)’를 신설했는데 ‘기적의 승부사’를 제외하면 둘 다 괜찮았다. 특히 ‘사돈’은 베트남 신부를 타자화시키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그리는 게 신선했다.

조진국 정말 베트남 신부가 그렇게 많은지는 몰랐다. 한 마을의 며느리 대부분이 베트남 출신이더라.

‘베트남’ 신부 아닌 그냥 우리의 신부더라


베트남 처녀 하면 떠오르는 게 아오자이나 오토바이 같은 건데 베트남 신부들이 오토바이 타고 우리나라 시골길을 누비는 게 진짜 글로벌한 느낌도 들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것 같다.

방송 중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나. 베트남 신부가 낳은 아이 울음소리가 그 마을에서 15년 만에 들린 아이 울음소리라고, 그래서 마을 아주머니들이 다 나서서 봐주겠다고 하는데 그걸 보면서 단일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제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신부’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신부, 며느리, 엄마가 될 수 있는 현실이 된 거다.

농촌 사회라면 도시보다 보수적이라 혈통을 더욱 중요시할 텐데 오죽했으면 그게 무너졌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

베트남 신부가 많아진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마을 이장님이 세계화를 농촌에서 먼저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대답했는데,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물론 처음에는 자발적이 아니었겠지만 도시가 시골 사람, 이주 노동자를 배척하는 동안 이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다.

방영은 안 됐지만 이런 내용도 있더라. 남희석이 지나가다가 베트남 신부가 낳은 애를 봤는데 눈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유전적 문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베트남 신부는 애 아버지의 장애를 알고도 결혼한 이였다. 그 아이를 서울로 데려와 자비로 눈 수술을 시켜준다는 기사를 봤는데 남희석이 <느낌표-산 넘고 물 건너>를 해봐서 그런지 시골 사람들의 그런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것 같다.

남희석의 <미녀들의 수다> 진행은 별로인데 여기서는 참 잘한다. 자기 색깔도 잘 드러내고. 그런 부분도 재미있었다. 베트남 신부들이 잔디를 키워서 골프장에 파는 일을 하는데 진행자가 “솔직히 일하기 싫죠? 힘들죠?” 물어보니까 “예” 대답하더라. 방송이 잘하는 억지 환상을 주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질문과 솔직한 답변이 오가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

그런데 다른 집 여자는 남편이 싫어해서 잔디 일 안 한다는 걸 앞부분과 비교하듯이 보여주니까 왠지 앞 여자는 남편이 시켜서 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져서 좀 그랬다. 그런 디테일한 배려가 아직은 미흡하다고 할까.

나는 감동적으로 보다가 김한석이 베트남에 가서 그 동네 처녀를 불러다놓고 한국으로 시집가고 싶으냐, 아들은 잘 낳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듣고 기분을 팍 잡쳤다. 무슨 소 품종 개량도 아니고 말이지, 결혼하고 싶은 한국 처녀한테 아들은 낳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다고 생각해봐라. 너무 차별적인 질문인 거다. 잘 만들어놓고 디테일 때문에 욕먹는 거다.

“아들 낳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엔 기분 잡쳐

사돈들끼리 만날 때 통역 문제도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이런 문제들을 개선해 나가면 좋은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특히나 <느낌표>도 끝나서 시골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으로 유일한데, 잘 다듬어서 오래갔으면 좋겠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 안의 차별이 없어지고 그들도 우리 안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베트남 신부가 낳는 아이들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되는 건데 <인순이는 예쁘다>의 ‘인순이’가 상징하는 것도 혼혈 가수 인순이로 대표되는 마이너리티 아닌가. 그래서 전혀 다른 두 프로그램이 연결되는 느낌이다.

보통 드라마에 출생의 비밀이 테마로 등장하면 그 비밀 캐느라 하세월인데 이 드라마는 2회에서 다 열어 보이며 빠르게 전개돼서 좋았다. 특히 엄마(나영희)가 인순이(김현주)를 “인순아” 부를 때 인순이가 내레이션으로 자기 이름이 불려지길 얼마나 원했는지 말하는 장면이 참 좋더라.

그 장면 최고였다! 인순아 부르고 와락 껴안았다면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들이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이 떠나고 텅 빈 놀이터에 혼자 남은 어린 인순이의 플래시백 연출이 멋졌다.

연기도 다들 괜찮지만 캐릭터 자체가 드라마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 같지 않아서 좋다. 김현주 옷 입는 것만 봐도 원래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 같잖나. 정말 자연스러워서 예뻐 보이는 거지.

상우(김민준)가 인순이 문자 받고 출장 간다고 거짓말 답장 쓰다가 망설이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나. 3회 예고편 보니까 엄마 캐릭터도 자식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엄마가 아닐 것 같아서 기대된다.

나도 엄마지만 고두심, 김해숙 같은 엄마가 실제 얼마나 있겠나. 자식도 밉고 싫을 때가 있는데 자식이니까 참는 거지. 그런 점에서 한국 드라마에 흔치 않은 엄마가 나올 것 같은 예감도 든다.

그런데 2회에 보면 나영희가 아파하는 모습이 나온다. 설마 나중에 불치병으로 판명돼서 어렵게 찾은 엄마와 눈물의 이별을 한다, 이렇게 전개되지는 않겠지? 제발 그렇게는 풀어가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데 그 장면에서 인순이가 엄마 업고 뛰는 건 오버 아닌가. 119를 부르거나 택시를 타야지 말야. 내가 너무 트집인 거지?(웃음)

한국 드라마에 흔치 않은 엄마 나올 듯

아니다. 그런 건 지적해줘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장면이 만들기 위해서 만든 장면이고, 드라마 전체 흐름에서 옥에 티를 만든다.

사소한 결점들은 있지만 근래 본 드라마 가운데 드물게 다음 회가 기대되는 작품이다.

맞다. 원래 표민수 감독 작품은 휴머니즘이 중요한 테마 아닌가. 이 드라마에서도 과장하지 않고 인간적인 깊이를 잘 보여줄 것 같다.

작가는 <현정아 사랑해>를 썼던 정유경인데 <현정아 …> 때도 대사나 스토리 다 좋았다. 그런데 <내 이름은 김삼순>이나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빼면 내가 많이 좋아해서 시청률이 잘 나왔던 드라마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번엔 그러면 안 될 텐데.(웃음)

전반적으로 내레이션이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편지 같다.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인순이처럼 풀 죽은 사람들, 눈칫밥 먹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어깨를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

정리 김은형 기자


최고의 제목

<인순이는 예쁘다>

“누가 예쁘다가 아니라 나는 예쁘다, 나는 잘할 수 있다는 주문 같은 제목이다. 누구나 마음에 새기고 싶은.”(정석희)

“인순이는 세상의 모든 못난이들에게 붙여주는 사랑스러운 이름, 근래 본 가장 멋진 작명이다.”(조진국)

최악의 제목

<일요일이 좋다>의 ‘기적의 승부사’

“아나운서들이여, 그냥 서 계시지만 말고 이제 기적을 보여주세요.”(조진국)

“기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안다면 여기다가 붙일 건 아니지.”(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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