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텔레콤 T ‘이동통신 완전정복’의 목소리로 확 떠버린 성우 양희문씨
[매거진 Esc]도대체 누구야?
SK텔레콤 T ‘이동통신 완전정복’의 목소리로 확 떠버린 성우 양희문씨
올해 티브이 광고 시장을 양분한 이동통신 광고의 한 축에 엉뚱발랄한 춤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생쇼걸’이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광고답지’ 않은 말투로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 목소리가 있다. 에스케이텔레콤 브랜드 티의 ‘이동통신 완전정복’ 캠페인의 내레이션이다.
이 내레이션은 갖은 애교와 튀는 재치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의 목소리들 속에서 깐깐한 조교처럼 단호하게 말하는 ‘역주행’을 하면서 오히려 신선함을 준다. 이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라디오 광고에서 징글(브랜드 로고처럼 활용되는 짧은 음악)음에 맞춰 “설명하겠다♬”,“오십프로 할인♬” 노래를 하면 그 정색한 농담에 웃음이 피식 터져나온다.
좌절, 그놈의 북핵 때문에…
통화하는 데도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중요해진 영상시대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목소리로 소비자를 자극하는 이 광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우 양희문(41)씨다. 양지운? 이라고 되묻는다면 실례다. 양씨는 93년 문화방송 공채로 입사해 활동해온 15년차 성우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낯설게 들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긴 하다. 방송사와의 전속 계약 3년이 끝난 뒤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오랫동안 부업을 전전했던 시절이 10년 넘었다. 결과적으로 이 악몽의 공백이 ‘신선한 목소리’를 찾던 광고대행사의 낙점을 받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여기서 티 광고 목소리로) 인생사, 새옹지마다.
“운이 좋았죠.” 광고 목소리보다 한 톤 낮은 바리톤의 음색으로 양희문씨는 말했다. 영상 광고로 드물게도 내레이션이 전면으로 나오고 또 장기간 다양한 버전으로 이어지는 대형 프로젝트를 잡게 된 건 어떤 성우에게라도 행운일 거다. 하지만 운을 따지면 그동안 운이 참 없기는 했다. “2005년도에 에스비에스 8시 뉴스에서 매일 하나씩 들어가는 탐사 보도의 타이틀을 낭독하는 고정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딱 한 번 하고 나니까 다음날 북핵 문제가 터져서 며칠 동안 다른 탐사보도가 들어갈 수가 없었죠. 그게 잦아들고 나니까 교황이 서거하시고, 그 며칠 지나니까 일본이 가고시마의 날을 제정해서 또 난리가 난 거예요. 그렇게 거의 한달 동안 제가 들어가는 꼭지가 날아가고 나더니 저를 섭외했던 기자가 특파원으로 나간 거예요. 한 번 하고 끝난 거죠.” 어렵게 오락 프로그램 코너 하나를 맡았는데 한달 만에 코너가 없어진 적도 있다. 그의 말대로 “운도 실력”이겠지만 그런 일을 자주 당하다 보니 이번 광고 출연이 확정된 뒤에도 “언제 잘릴까”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녹음하고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면서 집에 갈 때 너무 불안한 거예요. 차를 한강 방향으로 확 꺾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죠.” 티 광고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그가 가장 많은 주문을 받았던 건 ‘기름기 없는 고급스러움’이었다. 차분하고 정확하면서도 끝이 아주 살짝 올라간 마무리가 자칫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뉘앙스를 완화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극장)의 이금희 톤”이다. 아나운서처럼 중립적 느낌을 주면서도 너무 건조하지 않은 여운을 남기도록 연습한 결과다. 성우는 본래 정확한 발음이 생명이긴 하지만 이 광고처럼 음악보다 내레이션이 중심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 내레이션 분량도 다른 광고의 두세배는 된다. 한번 녹음을 시작하면 50번 정도 낭독하는 것은 기본, 그보다 더 갈 때도 있고, 계속 하다 보면 입안이 얼얼해질 지경이다.
양희문씨의 공채 동기로 종종 텔레비전에도 출연하며 굵직굵직한 프로그램들을 맡아온 안지환씨가 있다. 양씨는 “그 친구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 동기들 중에 처음부터 발군이었고 지금은 스타급 성우가 된 친구죠. 동료들이 방송 뛸 때 나는 노가다 뛰면서도 그 친구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미련이 남아서 힘들어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금테 안경에 각 잡힌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것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 시간 넘게 풀어놓는 이야기는 ‘인간극장’의 감동 스토리다.
프로그램 폐지될까 늘 노심초사
양씨는 스스로 현재의 상황을 “인생 역전”이라고 추어올린다. 한달에 한두 건 일거리를 잡기도 힘들다가 큰 광고를 맡은 뒤 최근에는 신설된 에스비에스 <일요일이 좋다-인체탐험대>까지 하게 됐으니 ‘너무 잘 풀리는 게 아닐까,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건 아닐까?’ 늘 노심초사라고. “기회를 잡은 게 아니라 잡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순식간에 놓칠 수도 있는 거죠.” 말하면서 ‘아나운서 비슷한 톤이면서도 흔하게 듣지 않았던 목소리’를 찾는 광고대행사에 자신을 추천해준 후배 김두희에게 꼭 감사의 말을 적어달라고 당부한다. “제가 존경하는 박기량 선배 이름도 적어주시면 좋겠구요,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박영화 선배, 그리고 …” (다시 티 광고 목소리로) 일생일대 기회 잡아 완전 좋구나. 얼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운이 좋았죠.” 광고 목소리보다 한 톤 낮은 바리톤의 음색으로 양희문씨는 말했다. 영상 광고로 드물게도 내레이션이 전면으로 나오고 또 장기간 다양한 버전으로 이어지는 대형 프로젝트를 잡게 된 건 어떤 성우에게라도 행운일 거다. 하지만 운을 따지면 그동안 운이 참 없기는 했다. “2005년도에 에스비에스 8시 뉴스에서 매일 하나씩 들어가는 탐사 보도의 타이틀을 낭독하는 고정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딱 한 번 하고 나니까 다음날 북핵 문제가 터져서 며칠 동안 다른 탐사보도가 들어갈 수가 없었죠. 그게 잦아들고 나니까 교황이 서거하시고, 그 며칠 지나니까 일본이 가고시마의 날을 제정해서 또 난리가 난 거예요. 그렇게 거의 한달 동안 제가 들어가는 꼭지가 날아가고 나더니 저를 섭외했던 기자가 특파원으로 나간 거예요. 한 번 하고 끝난 거죠.” 어렵게 오락 프로그램 코너 하나를 맡았는데 한달 만에 코너가 없어진 적도 있다. 그의 말대로 “운도 실력”이겠지만 그런 일을 자주 당하다 보니 이번 광고 출연이 확정된 뒤에도 “언제 잘릴까”라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녹음하고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면서 집에 갈 때 너무 불안한 거예요. 차를 한강 방향으로 확 꺾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죠.” 티 광고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그가 가장 많은 주문을 받았던 건 ‘기름기 없는 고급스러움’이었다. 차분하고 정확하면서도 끝이 아주 살짝 올라간 마무리가 자칫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 뉘앙스를 완화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극장)의 이금희 톤”이다. 아나운서처럼 중립적 느낌을 주면서도 너무 건조하지 않은 여운을 남기도록 연습한 결과다. 성우는 본래 정확한 발음이 생명이긴 하지만 이 광고처럼 음악보다 내레이션이 중심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 내레이션 분량도 다른 광고의 두세배는 된다. 한번 녹음을 시작하면 50번 정도 낭독하는 것은 기본, 그보다 더 갈 때도 있고, 계속 하다 보면 입안이 얼얼해질 지경이다.

에스케이 텔레콤의 티 광고는 건조한 말투의 독특한 내레이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에스케이 텔레콤 제공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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