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식당에 쌓였던 불만을 주방장에게 털어놓다
[매거진 Esc] 식당 주방장과 손님의 편지대결1
그동안 식당에 쌓였던 불만을 주방장에게 털어놓다
그동안 식당에 쌓였던 불만을 주방장에게 털어놓다
음식은 혀로만 맛보는 게 아니다. 피터 바햄이라는 식품과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다. 여러 가지 맛의 감자칩을 준비한다. 피실험자의 눈을 가린다. 먼저 보통 감자칩을 입에 넣어주고 강한 향기를 풍기는 감자칩을 피실험자의 코앞에 댄다. 맛을 맞혀보라고 하자 피실험자는 실제로 먹은 감자칩이 아니라 냄새 맡은 감자칩을 말했다. 음식은 코·눈·귀 등 온몸으로 맛본다. 식당 분위기나 서비스도 중요한 이유다. 온몸으로 맛본 한국 식당들의 ‘맛’은 어떨까? 한국소비자원과 음식칼럼니스트 예종석씨 등으로부터 도움말을 받았다. 맛· 가격·서비스에 대해 손님이 가진 불만과 주방장이 손님에게 가진 아쉬움을 2회에 걸쳐 편지로 재구성했다. 손님들은 요리를 돈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입을 모았다.
박 선배. 오랜만입니다.
직접 편지를 쓰는 것은 선배가 호텔 주방에서 막내로 요리를 배우던 10년 전 이후 처음입니다. 그때 가끔 만나면 새벽 마장동에서 고기 고르던 얘기며 노량진에서 생선을 잘못 골라 주방장에게 치도곤을 당했던 얘기를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였죠. 기억나요? 그때 선배가 “음식은 가슴으로 먹는다”고 했던 말. 어쩌면 이 편지는 선배의 그 말 때문에 쓰는 건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편지를 요리 기자의 날선 비판이라고 생각지 말고, 그냥 밥 사먹기 좋아하는 미혼 후배의 푸념 정도로 받아들여줘요.
꼭 비싼 것만 추천해야 합니까?
‘요리는 사랑’이라는 선배의 지론대로라면, 음식에 이물질이 들어가 있는 건 손님에 대한‘증오’에 가깝지 않나요? 전 설마하니 식당에 대한 불만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올 8월 콩국수를 시켜먹고 돌을 씹는 바람에 이빨이 부서진 김아무개씨 사연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됩디다. 백번 양보해서 실수라고 칩시다. 소비자원이 내용증명을 보내기 전에 식당주인이 먼저 배상할 수는 없었을까요? 식당 주인은 김씨의 배상요구를 거절한 뒤 소비자원이 배상을 권고하고서야 치료비의 50%(20만원)를 줬더군요. 아마 김씨가 정말 아팠던 건 치아가 아니라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지난해 12월 5500원짜리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고 식중독에 걸린 이아무개씨도 아랫배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것 같네요. 주부 이아무개씨도 마찬가지입니다. 1만2천원을 주고 양념치킨 두 마리를 시켰는데 1만1천원에 해당하는 프라이드와 양념 치킨이 한 마리씩 배달됐습니다. 겨우 1천원을 환불해 달라는 이씨가 독한 걸까요? 퉁명스럽게 “이미 주문을 컴퓨터에 입력해 취소하기 어려우니 다음번 주문 때 1천원을 깎아주겠다”며 환불을 거절하는 주인이 독한 걸까요? 소비자원이 식당에서 불편을 겪은 손님과 상담한 사례가 지난해 1252건이고 올해는 지금까지만 1244건이랍니다. 이 가운데 소비자원이 손님보다 식당의 과실이 크다고 판단해 합의를 권고한 ‘피해구제’는 지난해 126건이고 올핸 96건이더군요. 이 중 절반 정도가 맛이나 서비스와 관련된 불만입니다. 소비자원은 손님과 식당 양쪽을 자체 조사한 뒤 식당 과실이 클 땐 합의를 권고합니다. 식당 주인이 합의를 거절할 땐 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분쟁조정위 결정 역시 법적 강제력이 없긴 마찬가지. 식당 주인이 배상을 거절하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송사를 당하는 일만큼 거는 일도 피곤한 일. 손님들이 항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구는 싸구려 식당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기본적인 배려’에서 1천원짜리 음식을 먹는 손님과 1만원짜리 음식을 주문한 손님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손님을, 지갑 든 사람이 아니라 지갑으로만 대하는 태도입니다. 같은 사무실 선배가 자주가던 샤브샤브집을 최근에 끊은 이유도 비슷했습니다. 종업원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선배가 계산해야 하는 회식 때마다 항상 가장 비싼 메뉴를 추천하더라는 겁니다. 그 선배라고 비싼 게 맛있다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문제는 종업원이 “이런 재료를 쓰고 저런 방식으로 요리해서 맛있다”는 설명 없이 그저 무덤덤한 말투로 추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비싼 걸 주문하도록 강요하는 거라고 생각할밖에요. 그 샤브샤브집은 맛 좋기로 꽤나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진짜 맛집은 테이블수를 늘리지 않는다 이른바 ‘맛집’에 대한 대한 불만도 많습디다. 무엇보다 맛의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하나같이 업소 규모를 늘리거나 분점을 낸다는 것이지요. 돈 많이 번다는 걸 누가 욕하겠습니까. 문제는 어느 순간 주방에서 맛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굳이 외국 사례를 들먹이고 싶지 않지만, 뉴욕이나 유럽의 맛집이 절대 일정 수 이상으로 테이블을 늘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합니다. 이름난 프랑스 요리사 조엘 로브숑은 절대 33석 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자주 찾는 명동의 한 곰탕집도 오후 네 시 이후엔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이 곰탕집같이 자기관리에 철저한 식당은 아직 한국에 많지 않은 듯합니다. 맛집으로 소문났던 강남 쇠고깃집들의 몰락은 생각만 해도 슬픕니다. 미식가 한분이 일본 출장을 갔다가 유명한 초밥집에 갔답니다. 몇 접시를 먹고 너무 맛이 좋아 추가로 주문하자, 주방장이 “더 줄 수 없다. 당신에게 팔면 단골손님에게 줄 게 없다”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요새 유행인 와인에 대해서도 안 짚을 수 없군요. 제 주변엔 와인바만 가면 ‘작아진다’는 불만들이 많습니다. 와인을 추천하면서 유독 비싼 걸 강조한 소믈리에를 만난 게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강요하다시피 추천할 때도 있고요. 이럴 때마다 손님들은 작아집니다. 특히 와인 테이스팅이나 디캔팅(오래 숙성된 와인의 침전물을 가라앉히기 위해 와인을 빈그릇에 담아두는 것)을 할 때의 그 숨죽인 긴장감이란. 꼭 그래야 하는 건가요? 따지고 보면 와인은 프랑스 같은 ‘종주국’에선 주세도 안 붙이는 음료에 불과한데 말이죠. 와인붐이 일어난 지 3, 4년이 지났는데도 보졸레누보도 아닌 레드와인을 아이스버킷에 담아 내온 일에 비하면 약과라고 자위라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음식을 돈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 한식·일식·양식 가리지 않고 성토한 거 같아서 미안하네요. “한식 요리사에게 말해서 어쩌란 말이냐”고 항의하시면 저도 더 할 말이 없네요. 요리 기자를 후배로 둔 탓이라고 자책하십시오. “지금 불만들은 주방장이 아닌 식당 주인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할리우드 2급 영화라도 결국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짧은 생각에서, 요리도 결국 주방장의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손님들의 바람은 단순했습니다. 음식을 돈으로만 보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럼으로써 결국 더 오래,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올해 넘기기 전에 술 한 잔 합시다, 선배. “음식은 사랑”이라던 선배의 목소리가 듣고 싶네요.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지난해 12월 5500원짜리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고 식중독에 걸린 이아무개씨도 아랫배보다 마음이 더 아팠을 것 같네요. 주부 이아무개씨도 마찬가지입니다. 1만2천원을 주고 양념치킨 두 마리를 시켰는데 1만1천원에 해당하는 프라이드와 양념 치킨이 한 마리씩 배달됐습니다. 겨우 1천원을 환불해 달라는 이씨가 독한 걸까요? 퉁명스럽게 “이미 주문을 컴퓨터에 입력해 취소하기 어려우니 다음번 주문 때 1천원을 깎아주겠다”며 환불을 거절하는 주인이 독한 걸까요? 소비자원이 식당에서 불편을 겪은 손님과 상담한 사례가 지난해 1252건이고 올해는 지금까지만 1244건이랍니다. 이 가운데 소비자원이 손님보다 식당의 과실이 크다고 판단해 합의를 권고한 ‘피해구제’는 지난해 126건이고 올핸 96건이더군요. 이 중 절반 정도가 맛이나 서비스와 관련된 불만입니다. 소비자원은 손님과 식당 양쪽을 자체 조사한 뒤 식당 과실이 클 땐 합의를 권고합니다. 식당 주인이 합의를 거절할 땐 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갑니다. 그러나 분쟁조정위 결정 역시 법적 강제력이 없긴 마찬가지. 식당 주인이 배상을 거절하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송사를 당하는 일만큼 거는 일도 피곤한 일. 손님들이 항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구는 싸구려 식당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기본적인 배려’에서 1천원짜리 음식을 먹는 손님과 1만원짜리 음식을 주문한 손님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손님을, 지갑 든 사람이 아니라 지갑으로만 대하는 태도입니다. 같은 사무실 선배가 자주가던 샤브샤브집을 최근에 끊은 이유도 비슷했습니다. 종업원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선배가 계산해야 하는 회식 때마다 항상 가장 비싼 메뉴를 추천하더라는 겁니다. 그 선배라고 비싼 게 맛있다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문제는 종업원이 “이런 재료를 쓰고 저런 방식으로 요리해서 맛있다”는 설명 없이 그저 무덤덤한 말투로 추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비싼 걸 주문하도록 강요하는 거라고 생각할밖에요. 그 샤브샤브집은 맛 좋기로 꽤나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진짜 맛집은 테이블수를 늘리지 않는다 이른바 ‘맛집’에 대한 대한 불만도 많습디다. 무엇보다 맛의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하나같이 업소 규모를 늘리거나 분점을 낸다는 것이지요. 돈 많이 번다는 걸 누가 욕하겠습니까. 문제는 어느 순간 주방에서 맛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굳이 외국 사례를 들먹이고 싶지 않지만, 뉴욕이나 유럽의 맛집이 절대 일정 수 이상으로 테이블을 늘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합니다. 이름난 프랑스 요리사 조엘 로브숑은 절대 33석 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자주 찾는 명동의 한 곰탕집도 오후 네 시 이후엔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이 곰탕집같이 자기관리에 철저한 식당은 아직 한국에 많지 않은 듯합니다. 맛집으로 소문났던 강남 쇠고깃집들의 몰락은 생각만 해도 슬픕니다. 미식가 한분이 일본 출장을 갔다가 유명한 초밥집에 갔답니다. 몇 접시를 먹고 너무 맛이 좋아 추가로 주문하자, 주방장이 “더 줄 수 없다. 당신에게 팔면 단골손님에게 줄 게 없다”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요새 유행인 와인에 대해서도 안 짚을 수 없군요. 제 주변엔 와인바만 가면 ‘작아진다’는 불만들이 많습니다. 와인을 추천하면서 유독 비싼 걸 강조한 소믈리에를 만난 게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겁니다. 강요하다시피 추천할 때도 있고요. 이럴 때마다 손님들은 작아집니다. 특히 와인 테이스팅이나 디캔팅(오래 숙성된 와인의 침전물을 가라앉히기 위해 와인을 빈그릇에 담아두는 것)을 할 때의 그 숨죽인 긴장감이란. 꼭 그래야 하는 건가요? 따지고 보면 와인은 프랑스 같은 ‘종주국’에선 주세도 안 붙이는 음료에 불과한데 말이죠. 와인붐이 일어난 지 3, 4년이 지났는데도 보졸레누보도 아닌 레드와인을 아이스버킷에 담아 내온 일에 비하면 약과라고 자위라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음식을 돈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 한식·일식·양식 가리지 않고 성토한 거 같아서 미안하네요. “한식 요리사에게 말해서 어쩌란 말이냐”고 항의하시면 저도 더 할 말이 없네요. 요리 기자를 후배로 둔 탓이라고 자책하십시오. “지금 불만들은 주방장이 아닌 식당 주인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할리우드 2급 영화라도 결국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짧은 생각에서, 요리도 결국 주방장의 작품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손님들의 바람은 단순했습니다. 음식을 돈으로만 보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럼으로써 결국 더 오래,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올해 넘기기 전에 술 한 잔 합시다, 선배. “음식은 사랑”이라던 선배의 목소리가 듣고 싶네요.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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