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가지는 MC의 새로운 계보창조 선언한 <치욕, 꽃미남 아롱사태>의 미쓰라진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망가지는 MC의 새로운 계보창조 선언한 <치욕, 꽃미남 아롱사태>의 미쓰라진
지금까지 가수 겸 엠시의 얄읏한 계보가 있었지. 오랜 옛날 임백천, 이수만, 이택림 형님들부터 최근 탁재훈 형님(사실 83년생인 나 미쓰라진에겐 아!저!씨!들이지)까지 말이야. 그렇지만 나 미쓰라진(최진·25)은 달라. 게스트와 알흠다운 말을 주고받던 가식적인 형님들과 난 다르다규! 게다가 이 형님들은 다 재수없게 자∼알 생기셨어. 이 계보를 끊고 새로운 족보를 만드신 게 바로 재용이 형님(디제이 디오시 정재용)이쥐. 슈퍼주니어 신동이 잠시 뒤를 이었어. 그!리!고! 한때의 관리 실패로 망가진 나 미쓰라진이 화룡점정이지. 뭐? 화룡점정이 뭐냐구? 이런 가방끈 저렴한 것들. 비주얼 천한 것도 모자라니?
취조실에서 협박, 편의점에서 가짜 강도짓
기자가 엠넷의 <치욕, 꽃미남 아롱사태> 극중에서 미쓰라진을 인터뷰했다면, 그는 이런 말투로 답했을 게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치욕…>은 기자를 테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말해놓고 보니 문득 불안하다. 재기발랄한 김태은 피디가 ‘무개념 기자’를 엿 먹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누가 알겠나) 더욱이 기자는 이름은 식물과지만 꽃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기자가 칠부 청바지에 뿔테, 바가지 머리를 한 ‘오타쿠’ 미쓰라진을 만나진 않았다.
기자에게 미쓰라진은 중저음의 묵직한 래핑으로 기억됐다. 그래서 그의 변신이 와 닿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한겨레> 사옥에서 미쓰라진을 만났다. 한때 인터넷에 그의 고등학교 시절 ‘꽃미남’ 사진과 살찐 모습을 비교한 ‘관리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떠돌았다. 망가졌다고 알려졌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소프트 모히칸 헤어스타일에 패딩점퍼를 걸친 모습은 시쳇말로 ‘간지’가 났다. 체중도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다. 너무 정상인걸. 대체 왜 김태은 피디에게 낙점됐는지 물었다. “김태은 피디나 김종민 작가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죠”라고 말하며 스스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에 대해 김 피디는 “‘관리의 중요성’이라는 사진으로 알 수 있듯, 잘생긴 외모도 관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한 것에 착안했다”며 “관리 소홀로 훈남 이미지를 잃은 미쓰라가 꽃미남들을 테러한다는 게 <치욕…>의 포맷”이라고 설명했다.
미쓰라진의 설명을 종합하면, 처음 방송을 제안하는 자리에서 이미 김 피디는 옷차림과 말투의 콘셉트까지 짜 놨다. 자리에 앉은 미쓰라진 앞에 엽기에서 코미디까지 여러 콘셉트의 사진 자료가 펼쳐졌다. 들춰보던 미쓰라진의 손은 자레드 헤스 감독의 미국 코미디영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스틸 컷에서 멈췄다. 어벙한 표정의 파마머리 주인공이었다.
<치욕…>은 전국에서 일반인 ‘꽃미남’들을 제보받는다. 지난달 26일 방영된 1회에는 수원, 청주 등 전국 네 곳의 꽃미남 네 명이 제물이 됐다. 19∼22세의 청년들. 제작진은 이들을 납치해 가짜 취조실에서 “국가에 해를 끼치는 일을 도모했냐”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낀 적이 있냐”며 협박한다. 또다른 두 명에게는 이들이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제작진이 들어가 강도짓을 벌인다. 이들 네 명은 얼굴만으로 1차 점수를 받은 뒤 각자 처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용기 있게 대처했는지에 따라 인간성 점수가 합산된다. 참고로 어떤 출연자는 울먹거리며 “하긴 요새 시선을 많이 느꼈다”며 얼결에 ‘왕자병’을 실토한다. 한 꽃미남은 강도가 들이닥치자마자 다른 시민을 버리고 냅다 줄행랑을 쳐 제작진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용기 있게 행동해 인간성과 외모에서 두루 높은 점수를 받은 청주의 한정우(22)씨가 ‘제1회 주적’으로 선정됐다.
김태은 피디는 이미 ‘망가진 가수들’이 엠시로 등장하는 <재용이…>, <디제이…>를 만들었다. 혹시 미쓰라진이 ‘순결한 재용이’의 아류는 아닌지 물었다. 가수가(게다가 둘 다 힙합 가수다) 우스꽝스럽게 분장해 독설을 날린다는 설정이 동일해 보였다. 미쓰라진은 “<재용이…>나 <디제이…>와 내용과 형식이 똑같다면 거절하려 했다”고 답했다. 눌변인 듯한 달변이 이어졌다. “몰래카메라라는 형식이 크게 달랐죠. 이게 두 프로그램을 다르게 만든다고 봤습니다.” 정재용, 신동과 평소 친한 관계인 것도 ‘김태은표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줄였다. “지난달 26일 첫방이 나간 뒤 신동이 전화했더라고요. ‘형 잘 봤어요. 재밌던데요’라고요. 재용이 형한테는 아직 전화 못 받았어요”.
첫 방송 진행인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미쓰라진은 <치욕…> 진행에 대해 ‘정신 놓고 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게임이든 만화든 한 가지에 빠지면 푹 빠진다. 오타쿠 기질이 있다”고 말한다. ‘바른 청년’ 인상이지만 유독 엉뚱해 보이는 눈빛이 그걸 보여주는 걸까. 그런 끼 덕분에 첫 촬영 때 피디와 작가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어려움은 있었다. 그는 “제가 외모와 달리 마음이 약하거든요. 방송 마지막에 골탕 먹였던 출연자 중 한 명이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요. 꽃미남이니까 독설을 퍼부어야하는데 도저히 미안해서 못 하겠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피디님이 ‘좀더 세게 해도 된다’고 말하더군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결국 하고 싶은 건 음악
지금 스스로 망가지면서 남을 망가뜨리는 가수 겸 엠시 계보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쓰라진은 그걸 별로 의식하지 않아 보였다. “그냥 재밌잖아요. 그래도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건 음악이죠”라고 즐겁게 말한다.
참고1. ‘아롱사태’는 쇠고기 뭉치사태의 한가운데에 붙은 살덩이다. 사태는 소의 앞·뒷다리 윗부분 살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 명칭은 꽃미남들의 본질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상징한다.
참고2. 성질 급한 네티즌들이여, 왼쪽과 오른쪽 위 검은 반점을 자꾸 드래그하지 마시라. 지워지지 않는다. 모니터를 닦아도 소용없다. 피디가 꽃미남들에게 치욕을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똥파리’를 앉힌 것이므로.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치욕…〉의 한 장면. 미쓰라진이 오타쿠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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