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김질을 하려면 뼈와 살의 이음새를 지도처럼 외워야한다.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매거진 Esc]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①
옛날로 치면 백정,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기술자는 어떻게 사는가
“농부 아저씨의 땀이 배어 있다.” 어렸을 적 밥을 남길 때마다 부모님이 혼내며 했던 말씀이다. 그런 부모님도 고기를 남길 땐 “정육점 아저씨의 땀이 배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백정’이라는 단어는 차별의 냄새를 짙게 풍겼다.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2006년 6.7㎏으로 25년 전에 비해 2배 넘게 늘었다. 돼지고기도 비슷하다. 인터넷은 맛집 정보로 넘치고 스타 요리사도 출현했다.
그러나 뭇사람들의 펜과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사람들이 있다. ‘소의 주검’은 그들의 칼끝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차돌박이가 되고, 아롱사태가 된다. 고기의 뼈와 살을 발라 부위별로 나누는 일을 ‘새김질’이라 부른다. 18년 동안 마장동에서 새김질을 해온 김지삼(48) 부영축산 사장의 손은 잔 흉터로 가득했다. 그와 그의 동료야말로 진정 ‘요리의 친구들’이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대부분 쇠고기에 대한 것이었고 일부는 노동에 관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40년 넘게 대표적인 축산물시장 자리를 지켜온 마장동에 대한 기억은 덤이다.
마장동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합니다. 질 좋은 쇠고기를 받아 가려는 단골들이 새벽부터 문을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이 바닥은 신뢰 관계가 중요합니다. 처음 보는 요리사들이 떼로 와서 장을 보는 일은 없습니다. 제가 파는 쇠고기를 믿는 단골이 주요 고객입니다. 요리사, 식당 주인, 마트 소매업자 등입니다. 단골들은 식당 문을 열기 전에 최대한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고기를 파는 저도 일찍 문을 여는 수밖에요. 이렇게 새벽에 열린 문은 저녁때가 되어야 닫힙니다. 12시간 넘게 일하는 셈입니다.
소 발골, 새김질을 아십니까
저는, 요약하자면 한우 도매업자입니다. 오로지 국산 한우만 취급합니다. 현재 서울에는 가락동, 독산동 두 곳에 소 도축장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가락동 도축장에서 소를 공급받습니다. 가락동에서는 하루 약 400마리의 소가 도축됩니다. 이 중 70%가 마장동으로 공급되지요. 도축장에서 4등분된 상태의 소를 공급받는데, 이를 ‘4분도체’라고 부릅니다. 4분도체 상태의 소를 갈고리로 천장 가로대에 매달아 놓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새김칼’을 들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우 1마리를 ‘발골’하는 데 평균 3시간 정도 걸립니다. 하루 평균 2마리를 발골합니다. 직원은 2명이지만 발골작업은 제 몫입니다.
발골이란 단어를 처음 듣는 분도 있겠군요. 소나 돼지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작업입니다. 마장동에선 ‘새김질’이라고 부릅니다. 매일 피냄새를 맡아야 하는 일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백정들이 했던 바로 그 일입니다. 최근엔 이런 새김질에도 자격증 제도가 생겼습니다. 이름하여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증. 그러나 생긴 지 얼마 안 된 자격증이라 마장동에서 오랫동안 새김질하는 사람들 대부분 자격증이 없습니다.
제가 뼈와 살을 발라내면 나머지 한 명이 덩어리진 고기를 다시 부위별로 세세하게 분리합니다. 그걸 “손질한다”고 부릅니다. 손질을 하고서야 비로소 차돌박이니 등심이니 안심이니 하는 익숙한 이름의 진짜 고기가 됩니다. 부위별 고기를 곧바로 진공 포장합니다. 그날 들여온 소는 반드시 그날 안에 처리해야 합니다. 쇠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루만 지나도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고 육질이 떨어집니다. 시간을 다툴 뿐 아니라 매일 고기 냄새, 피 냄새를 맡아야 하는 일입니다. 요새 젊은이들이 마장동에서 일하길 꺼리는 이유입니다.
소나 돼지는 똑같은 고기지만, 발골 과정은 전혀 다릅니다. 소 발골하는 사람은 소만 발골하고, 돼지 발골하는 사람은 돼지만 발골합니다. 또 소 발골을 먼저 배운 사람은 돼지 발골을 쉽게 배우지만, 돼지 발골을 먼저 배운 사람은 소 발골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돼지가 훨씬 크기가 작고 값이 싸기 때문입니다. 돼지는 한 마리 20여만원에 불과합니다. 크기가 작으니 소보다 분리해야 할 부위의 수도 적습니다. 반면 한우는 한 마리에 600만원에 달합니다.
차돌박이·안심이 탄생하기까지
이 때문에 돼지 발골은 젊은 친구들도 많이 합니다. 배우는 과정이 짧습니다. 그러나 소 발골하는 사람들은 좀더 나이가 많습니다. 마장동의 경우 숙련된 사람은 40∼50대입니다. 어려서부터 도축업체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새김칼을 잡게 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칼질을 잘못하면 고기값이 뚝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새김칼을 쉽게 잡기 어렵고 배우는 데 오래 걸립니다.
마장동에서는 소를 사람에 비유합니다. 등급이 낮은 소는 “70살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소 등급은 등지방 두께 등에 따라 에이, 비, 시, 디로 구분합니다. 각각의 영문자 등급은 다시 마블링(소 근육에 지방이 섞인 정도)에 따라 1+, 1, 2, 3으로 나뉩니다. 선입견과 달리 마블링이 많을수록 상등품 쇠고기입니다. 지방이 섞여야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마장동에선 1+을 ‘일뿔’이라고 부릅니다. ‘일뿔’ 쇠고기는 새김질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다른 ‘험한’ 직종처럼, 마장동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장동 축산물시장에 들어서도 아마 이들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왠지 아세요? 대부분 몽골인이나 재중동포이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구분이 안 됩니다. 게다가 그들은 발골 같은 ‘고급 작업’은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눈에 안 띄는 곳에서 뒤치다꺼리를 도맡습니다. 가령 내장 세척 같은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 곱창 좋아하지요? 하지만 소 내장 취급하는 일은 정말 힘듭니다. 하루 종일 물을 만져야 합니다. 힘듭니다. 저는 내장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고기에만 집중합니다. 내장까지 취급하면 이도 저도 안 됩니다. 육질이 떨어지면 신뢰에 금이 갑니다.
김지삼 부영축산 대표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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