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파업의 추억은 한밤의 꿈이었던가

등록 2008-03-26 22:58수정 2008-03-30 15:28

민주노총 산하 요리사들의 노동조합, 그 20년 실패의 기록
민주노총 산하 요리사들의 노동조합, 그 20년 실패의 기록
[매거진 Esc]
민주노총 산하 요리사들의 노동조합, 그 20년 실패의 기록

국제뉴스에 귀 밝은 독자라면, 지난 1월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네바다 요식업 노조(Culinary Workers Union local 226)의 공식 지지를 받았다는 기사를 기억할 것이다. 오바마와 힐러리는 네바다 코커스(당원대회)를 앞두고 경쟁적으로 이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애썼다.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주에서 요식업 노조의 영향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열악한 주방 조건에 눈 떴던 조합원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요리사 노조가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 소속된 전국요식노동조합이다. 고현문(64)위원장과 십여명의 요리사가 조합원의 전부다.


기자가 여수에 머물고 있는 고씨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대뜸 1988년을 언급했다. 한겨레신문사 정보자료실에서 영인본을 살펴보니, 88년 8월9일치 6면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발견됐다. “여수·여천·순천시와 여천군 식당종업원들이 지역노조 형태로 조직한 여순요식노동조합(위원장 고현문)이 대한요식업중앙회 전남지부 여수시조합과 단체교섭을 벌이던 끝에 쟁의발생 신고를 했으나 전남지방노동위원회는 대한요식업 여수시조합을 사용자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며 노조의 쟁의발생 신고서를 되돌려보내 물의를 빚고 있다 … 노조위원장 고현문씨 등 3명은 지난달 28일 상경, 평화민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는 한편, 노동부 장관 앞으로 지난 2일 질의서를 보내 유권해석을 요청해 놓고 있다.”

고씨는 10년이 지나서도 당시 자신을 취재했던 정치부 신참 기자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성한용 기자(현 <한겨레> 선임기자)는 잘 계십니까”란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씨는 제대 뒤 20대 초반 광주지역의 한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고씨는 마을 후배의 소개로 당시 여주지역에서 잘나가던 일식집인 ㄱ식당에서 지배인으로 일하게 됐다. 가까이서 지켜본 요리사와 주방 보조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했다. 중견 요리사도 휴일 없이 일하기 일쑤였다. 고씨는 자연스레 노동조합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여수지역에는 특이하게도 식당경영자들과 요리사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79년과 80년 식당경영자들의 교섭단체인 여수시 요식업 조합과 전국연합노동조합 여수지역지부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79년 단체협약서를 보면 양쪽은 유니언숍(사용자가 종업원을 고용할 때는 자유이나 채용 뒤엔 노동자가 반드시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 제도), 상여·퇴직금, 정기휴일 등의 보장에 합의했다. 이들의 요구 가운데 ‘매월 정기휴일 4일’ ‘추석·구정 3일 휴일’등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요식업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렸다.

여수 요식업 노조는 80년 전두환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는다. 여수 요식업 노동자들은 민주화 바람을 타고 88년 다시 대한요식업중앙회(현 한국음식업중앙회) 전남지부 여수시 조합장과 단체교섭을 시도했다. 양쪽은 다섯 차례에 걸친 단체교섭으로 유급휴일 매월 2회 시행, 5인 이상 업체 퇴직금 제도 시행 등에 합의했다.

식당업주는 사용자인가 아닌가

갑자기 요식업 여수시 조합이 단체협약을 보류하고 교섭을 거부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요식업 노동자들은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발생 신고를 냈다. 그러나 위원회는 “사용자 단체는 구성원 사용자들을 조정·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며 “여수시 조합은 그런 권한이 없어 사용자 단체가 아니므로 교섭에 응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에 88년 7월 중순 고씨를 비롯한 요리사 등 70여명이 파업을 시작했다. 고씨는 “당시 여수 지역의 내로라하는 주요 식당 조리사들이 다 참여했다. 일식으로 유명한 ㅂ식당, ㄱ초밥 등 여수의 많은 식당이 영업을 멈췄다”고 말했다. 고씨와 요리사 등 50여명은 당시 서울 여의도에 있던 평민당사에 찾아가 상경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평민당 대회의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앞두고 파업에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자 고씨는 어쩔 수 없이 농성을 접어야 했다.


88년 파업당시 〈한겨레〉기사.
88년 파업당시 〈한겨레〉기사.
고씨는 중앙노동위원회와 한국음식업중앙회 여수시지부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청구 소송도 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도 노동위원회의 판단과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99년 6월 “음식업중앙회는 경제단체·이익단체일 뿐 노동조합에 대응하는 사용자 단체가 아니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도 79년과 80년 단체교섭 사례가 존재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이는 구 여수시 조합의 일일 뿐 현재 소송 참가인인 한국음식업중앙회가 관여한 바 없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패소 판결한 것이다.

고씨는 여전히 여수시 지부에서 지역의 식당업자들이 모여 요리사들의 보수·노동조건 등에 대해 협약을 맺기 때문에 사실상 사용자 단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법원도 판결문에서 “88년 당시 옛 여수시조합 식당업자들이 조리사들의 직장 이탈을 막기 위해 새로운 요리사를 채용할 땐 그 요리사가 이전에 고용된 식당의 업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벌금이 따른다는 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고씨는 2001년 4월 전국요식업노동조합을 설립신고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했지만, 요식업 노동운동은 불붙지 않았다. 외려 설립 당시 수백명에 이르던 조합원은 현재 수십명 수준으로 줄어 사실상 활동이 멈춘 상태다. 고씨는 이에 대해 “요식 노동자들, 특히 주방장들은 업주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러니 노동운동에 동참하지 않는다. 조금만 버티면 업주가 되는데 왜 노동운동을 하겠나”고 분석했다. 고씨 외에도 임점섭씨가 2003년 한국노총 산하에 전국음식업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금세 흐지부지됐다.

근로계약서 없는 구두 계약도 문제

한식·복어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고씨는 몇 달씩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빼고 노조운동에 매달렸고 이젠 60대가 됐다. 그는 2001년 노조 설립 뒤 단 한 차례도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단체교섭을 제안하지 못했다. 조합원이 늘지 않아 교섭력이 없는 탓이다.

한국 요리사들의 노동조건은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할까?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지적이 많다. 호텔에서 시작해 경력 15년째인 한 중견 요리사는 “호텔을 제외하면 중견 요리사라도 여름휴가 제대로 못 간다. 2, 3일이 고작이다. 일주일에 하루 쉬면 다행이다. 근로계약서를 정식으로 쓰지 않고 구두로 계약하는 것도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연봉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 식당에서 요리사와 계약할 때 연봉제로 계약하는데 이는 1년 단위로 쉽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외국 셰프들이 한국에 오면 이런 노동조건을 보고 크게 놀란다. 노조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식업 노조가 성장할 가능성이 있을까? 단체교섭에 응할 사용자 단체가 없는 점도 큰 걸림돌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올해 요식업 노동자를 포함한 대산별 노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이나 요리사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기초 연구도 없었다.

고씨는 좌절한 운동가로 보였다. 그의 운동도 좌절한 것일까? “그렇다”고 답하기에 주방의 현실은 팍팍해 보인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김종완


미국은 요리사노조의 선진국

외식산업이 발달한 미국·유럽·일본도 요식업 노조의 조직률은 높지 않았으나, 노동조건은 한국보다 훨씬 좋다.

미국은 이들 중 요식업 노조가 활성화된 편이다. 네바다주 요식업 노조(CWU)는 1938년에 생겼으며, 현재 조합원은 6만여명이다. 요리사는 물론 공항, 병원, 라스베이거스의 대규모 세탁소와 카지노에서 일하는 바텐더, 벨보이, 주방보조, 파출부, 짐꾼 등을 망라한다. 노조를 장악해 이윤을 얻으려는 네바다 마피아가 노조 지도자를 암살하기도 했다. 90년대 6년간 이어졌던 프런티어 파업은 미국 노동운동사에 가장 긴, 성공한 투쟁으로 기록된다.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뉴욕도 노조 가입률이 높다. 그러나 뉴욕·런던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오키친’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는 뉴욕의 노조는 마피아와 깊숙이 연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마피아가 노조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식자재 산업에 개입해 이윤을 얻는다는 것이다.

미국 외에 유럽·일본은 호텔 요리사를 제외하고 개별 레스토랑의 노조 가입률이 낮았다. 그러나 노조가 없는데도 노동 조건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었다. W호텔의 아일랜드인 키아란 히키 총주방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노조가 없는 영세한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요식 노동자도 여름휴가, 노동 중 휴식 시간 등 기본 노동인권을 보장받는다. 한국처럼 구두계약을 하는 일은 없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