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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전임신 ‘혼전양상’이군

등록 2008-04-09 18:14수정 2008-04-13 11:42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너 어제 그거 봤어?
드라마에서 바뀌는 결혼과 연애·가족상
〈명랑 히어로〉에선 김구라 제대로 먹히네

몇 년 전만 해도 드라마에서 연애는 넘쳐났지만 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혈기 방장한 커플이 여행을 가도 손만 꼭 잡고 자고, 하다못해 동거를 하는 상황이 와도 각 방 원칙은 깨지지 않았다. 연예인들의 ‘속도 위반’ 결혼은 꼭꼭 숨겨졌다가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겸연쩍게 웃으며 때이른 출산 소식을 전할 때 비로소 알려졌다. 요즘은 상황이 바뀌었다. 배우 이한위와 개그맨 이수근의 혼전 임신도 결혼 소식 못지않게 즐거운 뉴스로 보도됐고, 한국방송의 <엄마가 뿔났다>에서 아들의 ‘사고’를 심난해했던 건 한자(김혜자)뿐이다. 혼전 임신을 상상하기 힘든 시절 결혼해 20대 딸을 키우는 엄마 정석희(칼럼니스트·사진 오른쪽)씨와 연애와 성에 개방적인 30대 독신 남성인 조진국 작가가 새로 시작한 에스비에스 월화 드라마 <사랑해>와 함께 방송에서 바뀌는 연애와 결혼, 가족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오락 프로그램에 시사적인 주제를 곁들여 참신한 재미를 선사하는 문화방송의 <명랑 히어로>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정석희 <사랑해>의 첫 내레이션이 이거다. “그날 밤 그 아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14살 많은 남자와 스무 살의 여자가 우연찮게 혼전 임신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다. 혼전 임신이라는 소재가 옛날 같으면 결코 가벼울 수 없는데 이 드라마는 밝고 경쾌하다.

조진국 오히려 상큼한 연애 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혼전 임신이라는 소재만 보면 자극적인 설정인데, 풀어가는 방식이 경쾌해서인지 자극적이기보다 잔잔하고 아기자기하다고 할까.

결국 ‘결혼’으로 봉합하고 마는가


혼전 임신뿐인가. 이 드라마의 주제어들을 보면 변태, 불륜, 룸싸롱 이런 어두운 단어들이 즐비하지 않나.(웃음) 접근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세상이 그만큼 바뀌었다는 의미겠지. 나 결혼할 때만 해도 혼전 임신은 철저히 숨기거나 비밀스럽게 처리하거나 해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세대 차이도 있겠지만 문화적인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우리 누나도 혼전 임신을 하고 결혼했는데 사실 우리 집에서는 그걸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였으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의 지름길이 된 셈이다.

<사랑해>가 특별한 게 아니라 <엄마가 뿔났다>를 봐도 아주 평범한 집의 아들은 애 낳아 와서 결혼하고, 딸은 이혼남과 동거하다시피하는데 그걸 굉장히 일상적으로 그리지 않나. 따지고 보면 한국방송의 <싱글 파파는 열애중>이나 <아빠 셋 엄마 하나>도 통상적인 연애나 가족 이야기가 아니다.

옛날에는 나보다 내 주변 사람, 내 시선보다 남이 나를 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관계가 구성됐다면 지금은 철저히 너와 나의 이야기로 바뀐 것 같다. 또 연애뿐 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 된 거지. 그게 드라마나 방송에도 반영이 된 거고.


오락 프로그램에 시사적 주제를 접목시켜 기대를 모으는 문화방송 〈명랑 히어로〉. 문화방송제공.
오락 프로그램에 시사적 주제를 접목시켜 기대를 모으는 문화방송 〈명랑 히어로〉. 문화방송제공.
그런데 혼전 임신을 결혼으로 연결시키는 게 과연 개인의 자유의지라고 볼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떠밀려서 결혼을 해야 한다면 그게 더 불행한 거 아닐까. <사랑해>에서도 결혼을 원하지 않던 철수(안재욱)가 스트레스로 결혼식장에서 기절한다고 하던데.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도 영채가 혼전 임신으로 결혼을 하는데 유산이 되면서 결혼의 매개가 사라지니까 결혼이 무색해지지 않나.

이전보다 진화된 개방성과 여전히 남은 보수성이 혼재된 양상인 것 같다. 혼전 임신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개방된 시각을 가지면서도 결국 결혼으로 봉합을 해야 하는 거다. 주인공 신은경이 싱글맘을 선택하는 파격적 설정의 <불량 커플>도 결국 아름다운 결혼이라는 보수적인 뒷수습을 하지 않았나.

나같이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좀 헷갈린다.(웃음) <엄마가 뿔났다>나 <사랑해>를 보면서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면서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다가도 만약에 내 딸이 혼전 동거를 한다거나 며느리 될 아이의 혼전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글쎄, 드라마에서 배운 것만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신 없는데 …, 나는.(웃음) 또 현실은 실제 우연히 혼전 임신을 한다고 하면 골치 아프게 풀리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풀고 가니까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만화적 재치가 돋보이는 〈사랑해〉

원치 않거나 강제된 임신 같은 걸 부각시키면 그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거니까 티브이가 거기까지는 보여주기 싫은 거다. 그래도 나는 <사랑해>의 장점이 이런 소재를 만화적으로 풀어가는 재치로 보인다. 이를테면 철수와 영희가 넘어질 때 꽃비가 떨어지는 컴퓨터그래픽 장면 같은 게 애니메이션 같으면서도 사랑스럽다. 몇 가지 디테일의 부족은 아쉽지만.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명랑 히어로>에서도 캐릭터를 만화처럼 재치있게 활용해 프로그램 분위기를 잘 살렸다.

<명랑 히어로>는 재미있는 기획이다. 살면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화나는 것들, 짜증 나는 것들 많지 않나. 얼마 전 아들이 군대 가니까 연예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질질 끌다가 다들 공익으로 가는 거야, 싶었는데 이처럼 세상에 태클 걸고 싶은 일들을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끌어왔다는 게 참신하다.

딱딱한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면서 평범한 시청자들의 답답하고 힘든 사정을 연예인들이 시청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게 좋았다. 김구라의 독설은 불편하고 거슬리는 적도 많았는데 여기서 진짜 제대로 된 멍석을 깐 것 같다.


혼전임신을 만화적 경쾌함으로 다루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사랑해〉. 에스비에스 제공.
혼전임신을 만화적 경쾌함으로 다루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사랑해〉. 에스비에스 제공.
그런데 이야기 주제를 출연진들이 공감하기 힘든 이슈들, 대학 등록금 문제나 환율 문제 등으로 잡으니까 겉도는 느낌도 있다. 주제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출연진들이 체감을 못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김국진 이혼, 이하늘 신용불량, 신정환 도박으로만 자꾸 빠지는 건 옥에 티다.

라디오 스타에서 맨날 들었던 이야기잖아.(웃음) 사실 기본적으로 오락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큰 걸 기대하는 건 아니다. 재미있고, 속이 후련해지는 통쾌함을 선사하면 된다. 출연진들이 관련 주제에 대해서 지식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만 자기 의견을 좀더 명쾌하게 정리해줘야 이 프로그램만의 색깔이 더 뚜렷해질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대담과 <명랑 히어로>는 비슷하다. 우리는 한 주 동안 텔레비전을 보고, 그 팀은 한 주의 뉴스를 보고 태클을 걸게 하는 것이니까. 우리가 티브이를 안 보고 이야기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누가 오려준 신문만 더듬더듬 읽으면 밥상 위에 올려진 숟가락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꼴이다. 예습을 안 해 온 출연진에게는 <상상플러스>의 뿅망치 같은 벌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지각생 박미선, 좀 일찍일찍 나와라

우리가 매주 최고, 최악을 뽑는 것처럼 거기도 이주의 명랑 히어로뿐 아니라 안티 히어로를 뽑으면 어떨까. 사실 누군가를 칭찬하는 건 쉽지만 질타하고 비판하는 거야말로 어려운 일 아닌가. 기왕 시청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려면 나쁜 사람도 꾸짖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출연진들이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쥐머리 사건으로 과자 회사가 이럴 수 있냐고 시작했다가 시에프 때문에 욕 못 한다고 농담을 했는데, 이게 사실은 농담 속의 진담이다.

맞다. 좀더 용감해졌으면 좋겠다. 시청자가 여기서만 허용해줄 테니까 모든 출연진이 김구라가 되기를 바란다.

사족인데 박미선이 2회 동안 계속 늦게 등장했는데 설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제 시간에 나와주셨으면 좋겠다. 홍일점인데 자꾸 그러면 여자라서 트미한 것처럼 보이잖아.(웃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 이번주의 명랑 히어로

〈명랑 히어로〉의 박미선이 추천했다가 아깝게 탈락한 최진실.

“코믹한 드라마인데 최진실이 울면 그 여자의 아픔과 슬픔이 피부로 전해진다. 좋은 연기면서 연기가 아닌 ‘진실’에게 박수를!”(정석희)

“어느덧 그냥 그런 아줌마로 퇴색하나 했던 최진실에게 전성기 시절의 발랄함과 사랑스러움을 되돌려준 작가에게도 박수를!”

■ 이번주의 안티 히어로

영등포 역 ‘노숙자’ 발언의 주인공 전여옥.

“정리라는 단어는 집안 청소할 때만 써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조진국)

“지금 당장 가글하셔야겠어요. 사람 마음을 손톱만큼이라도 헤아리는 정치인이 되시길!”(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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