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엠더블유에스 회원이 싱글 몰트 위스키를 시음하고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입에 담기 전에 먼저 독특한 향을 느껴야 한다.
[매거진 Esc] 싱글 몰트 위스키 동호인들, 폭탄주로 획일화된 쾌락주의의 개혁을 주창하다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술은? 1. 맛과 향이 개성적이다. 2. 술마다 사연이 담겨 있다.
대부분 ‘와인’을 떠올릴 것이다. 만약 ‘싱글 몰트 위스키’를 떠올렸다면, 최소한 당신은 술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많이 팔리는 위스키는 거의 블렌디드 위스키다. 두 곳 이상의 증류소(distillery)에서 만든 위스키를 배합해서 만든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한 증류소에서만 만든 위스키를 가리킨다. 싱글 몰트 위스키의 매력은 와인처럼 풍미가 개성이 뚜렷하고, 스코틀랜드 150여 곳의 증류소마다 각기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증류소마다 물이 다르고, 보리를 건조할 때 때는 이탄의 사용법과 양, 숙성시키는 술통의 특징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라프로익, 그 강렬한 개성
한국에서 위스키의 80% 이상이 유흥주점에서 소비된다. 대부분 폭탄주로 ‘말아’먹는다. 지난 3월29일 청담동 ‘커피 바 케이(K)’에서 만난 ‘에스엠더블유에스’ 회원들은 이런 문화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다. 흡사 프리메이슨(18세기 영국에서 결성된 세계동포주의자 조직) 같은 비밀결사처럼 들리는 이 모임의 정식 명칭은 ‘스카치 몰트 위스키 소사이어티’(The Scotch Malt Whisky Society). 이들은 사회 개혁 대신 ‘취하는 술 문화에서 음미하는 문화로’를 외치는 쾌락주의의 개혁(?)을 주장한다.
이날 모임에서 30여명이 5가지 싱글 몰트 위스키를 시음했다. 에스엠더블유에스 한국 모임(cafe.naver.com/smws)의 유용석(43) 회장의 설명을 들으며 기자도 맛봤다. 어윅로이스크(Auichroisk) 증류소의 위스키에서는 보리 내음과 바닐라 향이 가득했다. 테이블에 마련된 냉수를 머금고 차례로 스프링뱅크(Springbank), 라프로익(Laphroaig), 클리넬리시(Clynelish), 글렌로시스(Glenrothes) 증류소의 위스키를 맛봤다.
가장 강렬한 개성을 보인 것은 라프로익이었다. 시음회 설명 자료에는 ‘항구의 디젤 낚시 보트와 엔진의 스모키함’이라고 적혀 있다. 라프로익은 스코틀랜드 옆 아일래이(Islay) 섬에 있는 증류소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라프로익의 풍미를 그나마 가깝게 묘사한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스코틀랜드로 위스키 여행을 다녀온 뒤 하루키는 라프로익 위스키에 대해서 “갯내음이 물씬 풍긴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문학사상사)고 표현했다. 아일레이에서는 바닷바람이 매일 불어 이탄을 포함한 모든 사물에 갯내음을 새긴다니 그럴싸한 표현이다.
대부분 100년이 넘는 증류소의 역사도 재밌다. 글렌 리벳은 19세기 초 리벳 강 부근 불법 증류소에서 제조된 위스키에서 유래한다. 당시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벌였던 잉글랜드의 조지 4세가 화해 협정 자리에서 마신 뒤 합법화됐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차 대전 당시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는 지독한 금주론자여서 위스키 소비를 막기 위해 ‘미숙성 독주 조례’(The Immature Spirits Act)를 제정했다. 2년 이상 숙성시키지 않은 위스키를 판매 금지한 이 조례는 생산자들의 원성을 샀지만 외려 질을 높여 영국 위스키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스엠더블유에스’는 1983년 영국의 위스키 애호가들이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다가 한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오크통째 구입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그 뒤 모임을 결성해 해마다 증류소에서 오크통째 위스키를 사서 병입한 뒤 회원들끼리 나눠 마셨다. 지금은 세계 12개 지부와 4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모임이 됐다. 병입할 때 ‘에스엠더블유에스’라는 라벨이 붙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아니다. 절반에 가까운 1만8천명이 영국인. 에스엠더블유에스 한국모임은 네이버의 ‘위스키&코냑 카페’의 일부 회원들이 만들었다. 홍보대행사 임원인 유 회장은 92년 홍콩 장기출장 때 새로운 술 문화에 눈떴다. 와인·코냑·위스키를 천천히 즐기는 문화에 빠졌다. 싱글 몰트 위스키 애호가가 된 그는 네이버 카페에서 활동하다 2006년 에스엠더블유에스 모임을 만들었다. 한국모임 회원은 25명으로 발효학자 등 술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이 모임은 아직 정식 지부가 아닌 탓에 일본 지부에 가입해야 한다. 2만1000엔(약 20만원)의 가입비를 내면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125개 증류소의 싱글 몰트 위스키를 살 수 있다. 한 병에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집에서 천천히 즐겨보라
정부가 희석식 소주를 서민의 술이라고 지정하는 마당에 병당 8만∼9만원은 사치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위스키를 폭탄주로만 마시는 획일화된 술 문화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유 회장은 지적한다. 병으로 사서 집에서 즐기면 주점에서 마시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라고 그는 반박했다.
실제로 이런 싱글 몰트 위스키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매캘란을 수입하는 맥시엄코리아 자료를 보면, 싱글 몰트 위스키는 2006년 3월∼2007년 2월 2만2146상자가 팔렸는데 2007년 3월∼2008년 2월에는 3만2858상자가 팔려 전년 대비 성장률이 48.4%에 이른다. 같은 기간 위스키 시장 성장률은 6.6%였다.
하루키는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라고 썼다. 하루키의 바람처럼 이 기사가 위스키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행복한 순간을 기다리기보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직접 맛보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송정근/ 사진가
물을 섞으면 더욱 강한 향기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기기 위한 도움말을 유용석 회장, 술 전문가인 이종기 영남대 식품가공과 교수, 맥시엄 코리아로부터 들어봤다. ⊙ 어디서 사나 : 매캘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모렌지, 싱글톤 등이 국내에 수입된다. 주류할인매장·백화점에서 숙성 햇수에 따라 8만∼20만원에 살 수 있다. 더 다양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맛보려면 강남의 위스키 바나 호텔 바를 찾든지, 에스엠더블유에스(SMWS)에 가입해야 한다. ⊙ 어떻게 맛보나 : 먼저 코로 향을 맡고 그 다음 맛을 본다. 향을 더 강하게 즐기고 싶으면 물을 섞어 20도 정도로 도수를 낮춘다. 그러나 오직 스트레이트로만 마시고 물은 입가심할 때만 마시는 원칙주의자도 있다. 덜컥 털어넣지 말고 먼저 혀끝으로 맛을 느끼고 입천장에 퍼지는 맛을 음미한다. ⊙ 잔이 따로 있나 : 입구가 작고 동그란 잔이면 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싱글 몰트 위스키 전용 잔이 시판되지만, 국내에서는 작은 코냑잔이나 와인잔에 따르면 된다. ⊙ 어떤 안주를 먹나 : 담백한 치즈, 견과류, 수박 등 위스키 자체의 맛과 향을 방해하지 않는 안주가 좋다. 반주로 즐길 땐 칼로리가 높고 맛이 진한 음식보다 단백질 많은 육류나 생선 요리가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생굴에 싱글 몰트 위스키를 끼얹어 먹었던 맛을 극찬했다. ⊙ 참고할 사이트는 있나 : 네이버 ‘위스키&코냑 카페’(cafe.naver.com/whiskycognac)에 역사와 종류에 대한 설명이 많다. 영문 사이트에는 더위스키가이드(thewhiskyguide.com), 스카치위스키닷컴(scotchwhisky.com) 등이 있다. 글렌리벳닷컴(glenlivet.com) 등 국내에 유통되는 브랜드의 웹사이트도 괜찮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대부분 100년이 넘는 증류소의 역사도 재밌다. 글렌 리벳은 19세기 초 리벳 강 부근 불법 증류소에서 제조된 위스키에서 유래한다. 당시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벌였던 잉글랜드의 조지 4세가 화해 협정 자리에서 마신 뒤 합법화됐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차 대전 당시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는 지독한 금주론자여서 위스키 소비를 막기 위해 ‘미숙성 독주 조례’(The Immature Spirits Act)를 제정했다. 2년 이상 숙성시키지 않은 위스키를 판매 금지한 이 조례는 생산자들의 원성을 샀지만 외려 질을 높여 영국 위스키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스엠더블유에스’는 1983년 영국의 위스키 애호가들이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다가 한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오크통째 구입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그 뒤 모임을 결성해 해마다 증류소에서 오크통째 위스키를 사서 병입한 뒤 회원들끼리 나눠 마셨다. 지금은 세계 12개 지부와 4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모임이 됐다. 병입할 때 ‘에스엠더블유에스’라는 라벨이 붙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은 아니다. 절반에 가까운 1만8천명이 영국인. 에스엠더블유에스 한국모임은 네이버의 ‘위스키&코냑 카페’의 일부 회원들이 만들었다. 홍보대행사 임원인 유 회장은 92년 홍콩 장기출장 때 새로운 술 문화에 눈떴다. 와인·코냑·위스키를 천천히 즐기는 문화에 빠졌다. 싱글 몰트 위스키 애호가가 된 그는 네이버 카페에서 활동하다 2006년 에스엠더블유에스 모임을 만들었다. 한국모임 회원은 25명으로 발효학자 등 술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이 모임은 아직 정식 지부가 아닌 탓에 일본 지부에 가입해야 한다. 2만1000엔(약 20만원)의 가입비를 내면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125개 증류소의 싱글 몰트 위스키를 살 수 있다. 한 병에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와인처럼 맛과 향의 개성이 뚜렷하다.
물을 섞으면 더욱 강한 향기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기기 위한 도움말을 유용석 회장, 술 전문가인 이종기 영남대 식품가공과 교수, 맥시엄 코리아로부터 들어봤다. ⊙ 어디서 사나 : 매캘란, 글렌피딕, 글렌리벳, 글렌모렌지, 싱글톤 등이 국내에 수입된다. 주류할인매장·백화점에서 숙성 햇수에 따라 8만∼20만원에 살 수 있다. 더 다양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맛보려면 강남의 위스키 바나 호텔 바를 찾든지, 에스엠더블유에스(SMWS)에 가입해야 한다. ⊙ 어떻게 맛보나 : 먼저 코로 향을 맡고 그 다음 맛을 본다. 향을 더 강하게 즐기고 싶으면 물을 섞어 20도 정도로 도수를 낮춘다. 그러나 오직 스트레이트로만 마시고 물은 입가심할 때만 마시는 원칙주의자도 있다. 덜컥 털어넣지 말고 먼저 혀끝으로 맛을 느끼고 입천장에 퍼지는 맛을 음미한다. ⊙ 잔이 따로 있나 : 입구가 작고 동그란 잔이면 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싱글 몰트 위스키 전용 잔이 시판되지만, 국내에서는 작은 코냑잔이나 와인잔에 따르면 된다. ⊙ 어떤 안주를 먹나 : 담백한 치즈, 견과류, 수박 등 위스키 자체의 맛과 향을 방해하지 않는 안주가 좋다. 반주로 즐길 땐 칼로리가 높고 맛이 진한 음식보다 단백질 많은 육류나 생선 요리가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생굴에 싱글 몰트 위스키를 끼얹어 먹었던 맛을 극찬했다. ⊙ 참고할 사이트는 있나 : 네이버 ‘위스키&코냑 카페’(cafe.naver.com/whiskycognac)에 역사와 종류에 대한 설명이 많다. 영문 사이트에는 더위스키가이드(thewhiskyguide.com), 스카치위스키닷컴(scotchwhisky.com) 등이 있다. 글렌리벳닷컴(glenlivet.com) 등 국내에 유통되는 브랜드의 웹사이트도 괜찮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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