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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이 좀 더 지저분했더라면

등록 2008-05-22 13:10수정 2008-05-23 14:03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기자들도 열광한다는 〈스포트라이트〉
돼지우리 기자실과 그들의 세계를 논함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를 외면했던 시청자층은 바로 그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변호사 드라마? 법정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잖아! 기자 드라마? 신문사에서 연애하는 내용이잖아! 그런데 <하얀 거탑>과 <온 에어> 등 해당 직종의 종사자들도 녹록하게 볼 수 없는 드라마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당사자들이 더 열광하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문화방송의 수목 미니시리즈 <스포트라이트>다. 돼지우리 기자실을 비롯해, 보고하는 말투까지 기자들에게 “맞아, 맞아”를 외치게 만드는 이 드라마를 1년 반 동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경찰 기자 시절’을 보내고 현재 방송을 맡고 있는 8년차 김소민 기자(사진 왼쪽)와 칼럼니스트 정석희씨가 들여다봤다.

김소민 <스포트라이트>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 잡아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세계를 진짜 잘 표현했다.

정석희 1, 2부까지만 봐서는 손예진을 위한 드라마 같기도 하다. 손예진은 한 팀을 이루는 기자 중의 하나인데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지 않나. <대장금> 생각도 난 게 <대장금>에서도 지진희가 이영애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지지자 역을 하는데, 여기서도 손예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것 같더라. 그런데 일반 시청자들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저게 사실적인지 아닌지, 보통 사람은 경찰서 갈 일도 별로 없는데 기자실이나 방송사, 신문사는 더 낯선 곳 아닌가.

리얼리티 떨어지는 사회부 캡의 ‘수트발’



꼼꼼한 취재로 기자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문화방송 제공.
꼼꼼한 취재로 기자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문화방송 제공.
드라마에서 기자실을 돼지우리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특히 경찰서마다 1진 기자실과 2진 기자실이 따로 있는데 수습들이 가는 2진 기자실은 진짜 돼지우리다. 방송에 나온 풍경은 그나마 낫고 담배꽁초에 쓰레기 더미 사이로 난민처럼 널부러져 잔다.

3회에서는 기자실에서 남녀가 같이 자는 바람에 벌어지는 문제들도 등장하던데 정말 같은 방에서 자나?

며칠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눈만 붙일 수 있으면 어디든지 눕는 판에 남녀 구별이 어딨나. 정말 난민처럼 뒤엉켜 자지만 다들 피곤에 쩔어서 뭔가 사건이 생길 일은 희박하다. 게다가 일주일 동안 못 감은 떡진 머리와 발 냄새 때문에 끌릴래야 끌릴 수도 없고.(웃음)

그렇다면 지진희가 연기하는 사회부 캡이라는 직함은 굉장히 고된 일일 텐데 늘 ‘수트발’이 너무 근사한 거 아닌가. 게다가 드라마에서 캡은 굉장히 높은 직책인 것 같은데 서른세 살이면 너무 젊은 거 아닌가.

좀 빠르긴 하지만 만약 군대에 안 갔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사실 리얼리티 제일 떨어지는 게 지진희의 모습이긴 하다. 보통 캡의 스타일이라면 거의 매일 술을 마시니까 배도 엄청 나오고 술 냄새 풍기면서 악랄하게 쪼는 게 일이거든.(웃음) 오태석(지진희)이 경찰에 몰카 테이프가 있는 거 같다는 서우진 말에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정확히 말하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건 양반이다. 그리고 수습을 쪼는 건 캡이 아니라 1진의 역할인데 폭력 사고가 났다면 누가 때렸냐, 왜 때렸냐 정도가 아니라 오른손으로 때렸냐, 왼손으로 때렸냐, 주먹으로 때렸냐, 손바닥으로 때렸냐, 조지기로 작정하면 끝이 없는 거지, 수습 때 내가 줄창 깨지면서 맨날 울고 다니니까 출입 경찰서 식당 영양사가 나를 위로하더라. 언젠간 이 생활도 끝나지 않겠냐고.(웃음)

<무릎팍 도사>에서 손예진이 출연했을 때 <온 에어>의 오승아 같은 배우는 없다고 말하는데 그걸 바꿔 말하면 서우진 같은 기자는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다. 진짜 기자가 신창원 같은 탈주범에게 접근하면서 사건을 푼다면 사실 경찰은 바보되는 것 아닌가.

드라마를 위한 설정인 거 같다 . 기자도 직장인이라 집회 같은 행사나 보도자료 등 매일 처리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일 다 제끼고 사건에 뛰어들 수 있나.(웃음) 그런데 이 드라마에 대한 비평을 찾아보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기사들이 많은데 좀 악의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스포트라이트>는 기자 세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지 직업세계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는 아니지 않나. 직업세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다면 드라마를 찾아보면 안 되지.

불법 이발소 취재하다 왕창 깨진 경험


꼼꼼한 취재로 기자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문화방송 제공.
꼼꼼한 취재로 기자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문화방송 수목드라마 〈스포트라이트〉. 문화방송 제공.
왜, 그래도 전직기자였던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무릎팍 도사>에 나와서 삼풍백화점 사건 때 소방관 옷을 훔쳐 입고 현장에 잠입해 들어가서 특종을 했다고 하던데. 그래서 소방관 옷 훔쳐 입는 게 자랑이냐고 네티즌들이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잠입 취재를 실제 하기도 하나?

특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훈련 차원에서 수습들에게 시키는 경우도 많다. 수습 때 당시 테헤란 벨리에 성매매를 하는 불법 이발소가 많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아이티업계 종사자들이 거기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건데 취재를 해오라는 거다. 공식적으로는 당연히 취재가 안 되니까 위장 취업으로 잠입을 시도했다. 당연히 취업은 계속 안 되는데 위에서 쪼니까 나중에는 그냥 거짓말이 술술 나오더라. 그래서 온갖 사연을 만들어 한 군데 취업을 하긴 했는데 취업한다고 바로 취재가 되나, 그래서 또 엄청 깨지고 서러워서 막 우니까 거기서 일하는 언니들이 밥 사주더라.(웃음) 밥만 먹고 나와서 또 뒤지게 깨졌지.(웃음) 수습 때 거지꼴로 불법 금융업체에 잠입해서 돈 많은 투자자 흉내를 내다가 딱 걸려서 취재수첩 다 찢어진 적도 있고, 그때 진짜 맞아 죽는 줄 알았다.

세상에나, 그러다 진짜 큰일 당하면 어떡하려고 … 드라마에서 경찰들이 딸내미 기자 죽어도 안 시킨다고 하는데, 엄마 입장에서 이 무서운 세상에 딸이 그러고 다니는 거 알면 진짜 겁나겠다. 그런데 이상한 건 방송에서 여기자가 나오면 <스포트라이트>의 다방 레지나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명세빈처럼 노래방 도우미나 이런 특정 직종으로 잠입 취재를 하는데 여성성을 이용하는 방식이랄까. 이게 좀 거슬리기도 한다.

그건 일단 여배우들이 예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웃음) 농담이고, 말씀 들으니까 진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일종의 고정관념인데 디테일에 대한 세공 못지않게 드라마적인 접근에서도 좀더 참신했으면 좋겠다. 손예진은 연기를 참 잘한다. 물론 좀더 지저분하게 나왔으면 더 사실적이었겠지만(웃음), 말투나 이런 것들을 세심하게 연기하더라.

손예진은 또래 배우들 중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동급 최강 아닌가. 잘하면 전도연처럼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까지 기자를 하는 이유가 뭐지?

맞다. 작품 선택도 굉장히 똑똑하게 한다. 청순가련형 이미지로 스타에 오른 다음엔 조금씩 자신의 연기의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걸 보면 놀랍다. 다만 전도연이 한 발자국씩 성큼성큼 나아갔다면 손예진은 반 발자국씩 나아간다는 느낌이랄까. 조금은 안전하게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동급최강인 건 확실하지. 개인적으로는 지진희가 잘됐으면 좋겠다. 지진희의 열렬한 팬으로서.

1, 2회 때까지는 지진희의 캐릭터가 손예진만큼 선명하게 보인 것 같지는 않다. 너무 바른생활 사나이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돼지우리 같은 기자실에서 몸고생하고 또 갖은 인격 모독을 당하면서 마음고생하고 그렇게 살면서도 기자를 하는 이유는 뭔가? 기자정신이겠지?

기자정신? (잠시 침묵) 뭐 기자도 샐러리맨인데 거창하게 무슨 기자정신. 음 … 그런데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일거리들이 생기니까 지루하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지루하지 않은 게 문제랄까. <생활의 달인>에서는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해오면 눈 감고도 턱턱 해내던데 이놈의 기사는 몇년을 써도 맨날 처음 같은 난감한 기분이다. 생활의 달인처럼 기사의 달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 김소민 기자가 꼽은 〈스포트라이트〉의 리얼리티 3종 세트

1.서우진이 2진으로 온 수습 이순철(진구)에게 챙기라고 강조하는 경찰 당직사건 기록부 “수습 달고 처음 경찰서 갔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이야기.”

2. 서우진이 의경의 주머니에 넣어주던 빵 “경찰들과 친해지지 못해 쩔쩔 매다가 초코파이 돌리니까 새벽에 핸드폰에 불나더라.”

3. 수습들이 뒤엉켜 자는 돼지우리 기자실 “옛날 생각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든 추억의 그 장소. 조금 더 지저분했어야 하지만.”

■ 정석희씨가 꼽은 〈스포트라이트〉 옥에 티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힘든 동료 여기자들. “이주희(김보경)와 채명은(조윤희)은 무슨 일을 하는 기자일까? 왜 늘 사무실에 앉아 있는 걸까? 혹시 담당은 서우진 괴롭히기?”

▶ 김혜수의 드레스 뒤엔 그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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