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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08은 ‘닥본사’가 제 맛

등록 2008-06-25 18:40수정 2008-06-29 10:33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한국이 아니라도 챙길 나라가 너무 많네
밤새워 티브이로 스포츠 보기의 즐거움

연일 강행군이다. 야근이 많아서가 아니다. 주경야독을 해서도 아니고 주경야견(見)하느라 늘 뒤통수가 묵직하고 어깨가 뻐근하다. 4강전까지 도달한 ‘유로 2008’ 중계를 보느라 고단한 일상이다. 그 옛날 국가별 리그전이란 한·일전이나 남한 대 북한전밖에 없었지만 스포츠 중계와 관람도 글로벌해진 시대에 축구팬들은 한국이 아니라도 챙길 나라가 너무나 많아졌다. 아침에 출근 지하철에서 눈이 벌겋게 부은 남자를 만나면 괜한 동질감에 흐뭇해진다는 자칭 “철없는 어른” <매거진t>의 위근우 기자(사진 왼쪽)와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으로 친구들과 만나면 소외감에 고민하는 차우진 기자가 유로 2008과 케이-원(K-1) 등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보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차우진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졌다. 프리미어 리그니, 유로 리그니 이런 말들조차 그 전에는 생소했는데 스포츠에 별 관심 없는 나조차 선수들 이름을 외운다. 월드컵과 함께 케이블과 위성 디엠비 중계 등의 힘이 컸다.

위근우 박지성의 힘도 크다. 이에스피엔 시청률은 박지성이 맨유 들어가기 전보다 후가 몇 배나 뛰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보는 눈도 확실히 높아졌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전반적인 수준이 월드컵보다도 높은 유로 리그까지 챙겨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지. 얼마 전 남북전 때 박주영이 북한 골대 앞에서 똥볼 차는 거 보고 평화통일 축구하는 거냐 야유도 나오고.

XTM의 재미있던 농구 편파방송


스포츠를 뭐랄까 국가적 자존심이나 국가별 대항으로 보는 게 아니라 스포츠 자체로 즐기는 감수성이 만들어졌다. 2002년 월드컵 때 민족주의 논란이 대두되면서 이젠 한발짝 나가 관심사가 팀이나 개인 단위로 글로벌해진 거다.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포털 사이트에서 유로 2008 기사가 따로 묶이고 거기에 댓글 달고 편 갈리고 싸우는 게 축구팬이 아닌 나로서는 무척 신기하다.

네덜란드가 이탈리아를 3 대 0으로 이겼을 때나 러시아가 4강 올라갔을 때 내가 막 충격을 받았잖아요.(웃음). 또 굳이 응원하는 팀이 없어도 맨유 대 첼시 등 빅게임을 찾아 보는 사람도 많다. 그야말로 경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다.


유로 2008과 K-1(사진 아래)등 티브이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해외 스포츠 경기들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높여주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감수성을 보편화시켰다. 사진 에이피연합.
유로 2008과 K-1(사진 아래)등 티브이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해외 스포츠 경기들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높여주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감수성을 보편화시켰다. 사진 에이피연합.
프리미어 리그나 유로 리그에 관심 있는 건 분명히 박지성이나 히딩크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이기는 하지만 그걸 국위 선양이나 한국인의 긍지 식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도 변화다. 방송에서 스포츠를 다룰 때 촌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중계를 하고 언론도 민족주의보다는 게임의 룰이나 좀더 넓은 시야로 경기에 접근하는 것들이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촌스럽냐 세련됐냐의 기준이 스포츠에도 적용된다. 드라마로 비교하면 좀더 플롯이 정교하게 짜여지고 스펙터클도 압도적인 미드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완벽한 경기는 정말 군더더기 없으면서 볼거리로 가득한 드라마같지 않나.

드라마의 장르가 전문화되면서 다양해지듯이 중계 스포츠도 전문화되고 중계 방식도 다양해졌다. 옛날에 김성주가 케이블에서 일할 때 탁구·농구·축구 가리지 않게 열 몇 개 장르를 했다고 말했는데 이게 불과 10년도 안 된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은 전문 채널과 전문 앵커가 생겨나고 골프를 버라이어티쇼와 결합한다거나 하는 대중화 시도도 다양하다. 전에 농구 편파방송이라는 걸 엑스티엠(XTM)이 지역 케이블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 음성다중 채널처럼 1채널에서는 일반 진행을 하는데 제2외국어 채널을 돌리면 그 지역편을 노골적으로 드는 중계를 하는 거다. 사투리 쓰면서 쟤가 원래 저런 놈이라고 비난하고.(웃음) 올 초 전남 지역에서인가 시험방송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야말로 스포츠가 쇼가 된 거다.

헐크 호건과 워리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저스틴 팀벌레이크나 자넷 잭슨, 유투 같은 최고의 엔터테이너들이 앞다퉈 등장하려는 슈퍼볼 게임처럼 확실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강해지는 게 요즘 스포츠 중계의 변화인 것 같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중요하고 또 변하지 않는 스포츠 중계 관람의 매력은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에 있다. 즐길 수 있는 텍스트면서도 뉴스다. 생중계가 끝나면 김이 확 빠져버린다. 드라마는 재방송 본다고 재미가 줄어드는 게 아닌데 스포츠에는 다르다. “어제 새벽에 봤어?”가 중요한 거다.

보통의 남자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방식이기도 하지. 7시에 출근하더라도 5시까지 경기를 사수한다, 특히나 결혼하면 그 피곤함에 아내의 구박까지 버텨내고 경기를 보는 게 일종의 성취감이고 그걸 남자들끼리 공유하면서 고난의 행군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되는 거지.(웃음) 물론 난 별 관심이 없어서 이런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쪽이지만.


유로 2008(사진 위)과 K-1등 티브이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해외 스포츠 경기들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높여주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감수성을 보편화시켰다. 사진 케이원코리아닷컴 제공.
유로 2008(사진 위)과 K-1등 티브이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해외 스포츠 경기들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높여주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감수성을 보편화시켰다. 사진 케이원코리아닷컴 제공.
격투기는 거의 주말에 하니까 약속도 안 잡고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는데 이게 처량하기보다 자부심이 된다. 그런데 케이원이나 유에프시(UFC) 같은 건 룰을 가진 스포츠인데 항상 가장 궁금한 건 경기 종류가 계보를 막론하고 누가 제일 셀까 하는 초딩적 관심사다.(웃음) 헐크 호건하고, 워리어 하고 누가 더 세냐, 남자들 같으면 계급장 떼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웃음) 이런 철없는 어른의 판타지 같은 게 분명히 실려있다.

옛날에 스트리트파이터처럼 유도 하는 애랑 태권도 하는 애랑 붙고 이런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 어떻게 보면 스포츠로 다시 디자인 된 거고. 그런데 이종 격투기가 처음 중계되기 시작하면서 한참 인기 있었을 때는 지금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한번은 러시아에서 하는 격투기 중계를 보는데 이건 말 그대로 투견장이더라. 경기장부터 철조망을 쳐놨고, 싸우는 건 선수가 아니라 일반인이다. 택시 운전하는 배 나온 아저씨 같은. 시간 제한도 없고 한 사람이 항복하면 끝나는 건데 절대 안 한다. 그러면 바닥은 피바다가 되고, 돈 놓고 응원하던 사람들까지 나가떨어진 한참 뒤에야 끝난다. 너무 잔인했지.

어떻게 보면 격투기도 축구처럼 수준 높은 외국 메이저 대회를 소개하면서 제대로 된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다. 펀치나 넘어지는 기술이나 이게 단순히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잔인함의 강도가 아니라 진짜 스포츠의 재미를 사람들이 즐기게 된 거지.

레슬링과 같은 쇼는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비슷한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반칙이나 링 위에서 난동 부리는 것도 나름 흥미롭고 무엇보다 경기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는 것 같다. 선수들이 등장할 때 음악도 깔리고 또 중계 역시 다양한 편집화면들로 버라이어티쇼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지 않나.

종합 격투기는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쇼

프로 레슬링이 정통 버라이어티쇼라면 이종 격투기나 종합 격투기는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쇼 같다. 둘 다 철없는 어른들이 즐기는 거죠.(웃음) 종합 격투기와 복싱을 비교하면 복싱은 너무나 발전해서 더 이상 기술적으로 발전할 부분이 없어서 오히려 좀 지루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종합 격투기는 발전 단계이다 보니 변수나 의외의 결과도 나오고 정점으로 가는 과정에서 더 재미있는 것 같다.

2002 월드컵을 지나고 박지성이 프리미어 리그로 가면서 유럽 축구 중계를 보는 여성 팬들이 늘어났다. 요즘 추성훈을 보면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고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장난이 아닌데 추성훈 보려고 종합 격투기를 보는 팬들도 늘어나면서 격투기를 프로 스포츠로 즐기려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 같다.

정리 김은형 기자

유로 2008 나는 소망한다. 이 나라의 우승을

■ 히딩크의 마법, 러시아 - 차우진

“이변을 낳은 러시아를 보면서 2002년 한국 축구가 생각났다. 한국처럼 국제적인 경기에서 승리해보지 못한 팀 아닌가. 그래서인지 경기 시작 전이나 끝나고 나서 선수들에게 미묘한 비장미가 흐르는데 거기서 나오는 감동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서울광장에 모여서 2002 월드컵을 함께 열광했듯이 러시아 사람들도 붉은 광장에 모여서 축구를 본다고 하던데 이 이변이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

■ 무적함대, 스페인 - 위근우

“스페인은 언제나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 모여 있고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해왔는데 이상하게 큰 경기에서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2002년에 한국과의 승부차기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나. 투지도 좋고 끈기도 좋고 인간성도 좋은데(웃음) 실력이 최고인 팀이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다. 축구를 제대로 즐기는 하나의 방식으로도 가장 세련된 축구를 하는 팀이 이겨야 순정의 축구팬들에게 보람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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