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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를 뺏긴 처칠의 그 표정

등록 2009-04-15 19:02수정 2009-04-19 12:17

윈스턴 처칠(정치가)
윈스턴 처칠(정치가)
[매거진 esc]
한국의 예술가들을 찍은 사진가 김용호의 ‘인물 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전’ 관람기

사람들은 눈과 입과 코가 하나같이 미묘하게 다르게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단 하나의 피사체이다. 사진가는 기록자라는 역할부터 형식과 개념의 변혁적 시도를 하는 사람, 그 안에 담긴 열정과 자유의지 등을 예술로 남기는 사람이다. 사람을 찍는 인물사진가도 그 안에 있다. 유서프 카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유서프 카쉬의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특별한 기억이 그와의 허심탄회한 소통을 시작했다. 기이한 경험이었다. 고인이 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작가를 작고하기 전 내 카메라에 담은 적이 있다. 5년 전 백남준 작가를 찍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그에 관한 모든 저서와 작품을 연구하고, 그를 마주한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던 그 시간들이 떠올랐다. 유서프 카쉬가 내게 준 선물이다.

뉴욕서 백남준 촬영할 때 생각나

인물사진을 찍기 위해서 나와 피사체의 소통과 교류는 중요하다. 모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사진 촬영에 익숙하지 않으며 심지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피사체인 모델은 작가와 상호 교감이 중요하며 작가는 피사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파블로 카발스(첼리스트)
파블로 카발스(첼리스트)
나는 뉴욕에서 촬영 당시 백남준 작가에게 비디오아트에 관한 이야기로 소통을 시작했고, 구겐하임 전시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대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그 대화의 결과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날 소호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로 초대를 받았다. 그는 미공개된 작품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인간적인 교감을 함께하는 예술가로서의 존재를 나에게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덕에 그동안 보아왔던 백남준 작가의 모습 이면에서 표출되는 새로운 모습을 뷰파인더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촬영이 진행됐던 시간은 두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연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경제적 여유와 명예를 가진 이들은 그들의 명예에 걸맞은 이미지 연출을 위해 미학적 관점으로 자신을 표현한 사진을 남겨두고 싶어 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카쉬는 일반인의 삶보다 유명한 셀레브리티에 관한 기록을 작품으로 남긴 대표적인 작가이다.


파블로 피카소(화가)
파블로 피카소(화가)

제시 노먼(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오페라 가수)
카쉬는 무엇보다 일반인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들만의 비범함과 삶에 대한 태도까지 치밀하게 뷰파인더에 담아냈다. 그들의 정신을 프레임 안에 집약해서 노출시켰다. 끝없는 영감으로 수많은 거장들의 내면을 들추어냈고, 그가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매혹적인 순간들을 심미학적 완성도로 이끌어냈다.

그뿐만 아니라 피사체의 결점과 장점을 극대화하여 기쁨, 슬픔, 분노, 유머 등을 재탄생시켰으며 라이팅(빛 조절 또는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과 내면을 형상화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감정들은 카쉬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유려한 시선에서 절대적인 품위를 내포하고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물리학자)

소피아 로렌(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영화배우)
관람자들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유명인들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카쉬만이 지닌 대단한 관찰력의 결과다. 결정적인 그 순간을 카쉬는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셔터를 눌렀다. 그만의 뛰어난 재능이면서 또한 지루함을 묵묵히 견뎌내는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처칠의 유명한 에피소드는 빠뜨릴 수 없는 한 예다. 1941년 카쉬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얼굴을 찍을 기회를 얻었다. 평소 시가를 좋아하는 처칠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도 시가를 내려놓지 않았다. 카쉬는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고 그가 시가를 내려놓는 때를 기다렸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카쉬는 조용히 처칠에게 다가가 시가를 뺏고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속에는 시가를 뺏긴 처칠의 화난 표정이 그대로 담겼다. 그 사진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정치인의 면모를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카쉬는 모순적인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가로 남게 되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소설가)
잊을 수 없는 헤밍웨이의 눈빛

이번 전시 작품 가운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진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 문체 이면에 도사린 서정적 눈빛과 아름다운 은발 노신사의 조화로움을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진 속의 표정(약간은 찡그린 미간, 작품 속에 감춰진 허탈한 눈빛)은 그의 삶을 전부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인물사진은 대화와 소통의 산물이다. 카쉬는 위대한 인물들을 과장된 수식과 해석 없이 철저하게 그들 본래의 고유색으로 표출해냈다. 그는 인물의 섬세한 이미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영혼의 감정의 깊이와 에너지까지 정확하게 보게 한 예술가다.

글 김용호(사진가)·사진 ‘인물 사진의 거장 카쉬전’ 제공


사진가 김용호
사진가 김용호
사진가 김용호는 <한국문화예술명인전>(2003) 등 20여년간 패션 사진과 인물 사진을 찍은 작가다. 최근에는 <몸>(2007), <신데렐라>(2009) 등 다양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 ‘인물 사진의 거장 카쉬전’은 5월8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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