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담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래픽 이상호 기자 dokko@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출판·방송가 강타한 팝 사이콜로지 열풍
동네 형·언니 같은 비전공 상담가도 부상
출판·방송가 강타한 팝 사이콜로지 열풍
동네 형·언니 같은 비전공 상담가도 부상
사람들은 그들의 웃긴 모습이 아니라 진짜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다. 지난 2월 말 문화방송 <무한도전> 출연진이 정신감정을 받았다. 정신과 전문의가 몰래카메라와 아이큐 테스트, 그림 그리기 등을 통해 이들의 참모습을 분석했다. 유재석은 흠 잡을 데 없는 균형 잡힌 정신 상태를 가졌으나 좋은 겉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보’ 이미지의 정준하는 의외로 지능이 가장 높았으나 의존적이었다. 정형돈은 긴장·불안감이 높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노홍철은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속으로 우울한 조증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시청자들만큼 출연자들도 ‘무의식’ 혹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충격받았다. 심리학도라면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비틀어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존재한다”고 한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라캉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거린 시청자도 많았을 게다.
심리·고민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는다. 동정 없는 세상에 지친 한국 사람들은 상담과 치유에 목마르다. 윗세대에서 ‘멘토’(조언을 주고 모범이 되는 사람)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특히 그렇다. 한때 유행이던 성공을 위한 처세술 대신 이들은 심리학 책과 상담 책을 집어든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교수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갤리온)는 지난해 2월 초판이 나온 뒤 37만부나 팔렸다. 정신과나 심리학 전공자가 아닌 김어준씨의 상담집 <건투를 빈다>(푸른숲)는 지난해 11월 초판 뒤 2만3000부 팔렸다. 처세술 책보다 인간적인 고민에 더 주목한 직장생활 에세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임경선, 랜덤하우스 코리아)도 가뿐히 1만부를 넘겼다.
<코스모폴리탄> 같은 잡지에도 빠지지 않고 고민 상담이 올라오지만, 라디오야말로 상담 프로그램으로 넘친다. 많은 프로그램에 고민 상담 꼭지가 있다. 태연의 ‘친한 친구’(문화방송 에프엠포유)에서는 연예인들이 직접 상담을 해주고 상담가가 초대 손님의 성격을 분석한다. 소설가 이외수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고민을 상담하는 ‘이외수의 언중유쾌’(문화방송 표준에프엠)는 벌써 입소문을 탔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한국방송 2에프엠)에서도 임경선씨가 고민 상담을 해준다. 사연을 보내는 사람이 주로 젊은 세대라 고민의 대부분은 일과 사랑에 쏠려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지난 15일 방영된 에스비에스 티브이 ‘김제동의 황금나침반’은 상담 양식을 택해, 첫 회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여자 대학생의 고민을 다뤘다. “마치 나침반처럼,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조언자가 되어주겠다”는 게 기획 의도다.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된 ‘팝 사이콜로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아예 ‘팝 사이콜로지’(pop psychology)라는 표제어가 따로 있다. 포퓰러 사이콜로지, 즉 ‘대중 심리학’이다. 정의는 분명치 않다. ‘심리학이 널리 알려진 현상’ ‘자격증 유무에 상관없이 심리·고민 상담을 해주는 것’ 또는 ‘출판 등 심리 상담과 관련된 산업’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한국의 학생들이 영어 공부 할 때 많이 읽는 ‘디어 애비’(Dear Abby) 같은 칼럼이 대표적이다. ‘팝 사이콜로지’ 현상의 한 가지 특징은 사람들이 자격증의 유무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점이다. 책 판매량이나 매체 활동량이 많은 상담가 가운데 김혜남씨 같은 전공자 외에도 비전공자가 많다. 외과 수술이나 내과 치료와 달리, 마음의 치료와 관련해 사람들은 ‘공감’과 ‘좀 더 가까운 심리적 거리’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환자의 우열 관계가 아니라 동네 형,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상담을 대중들이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에 ‘그까이꺼 아나토미’를 연재하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피상담자를 나와 대등한 존재로 보고 (그들을) 조금만 노력하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로 상정한다”고 말했다. <코스모폴리탄>에서 고민 상담을 하는 방송작가·카피라이터 출신의 최윤희씨도 같이 아파하는 마음을 자기 상담의 원칙으로 꼽았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야매 상담가’나‘비전공자’ 같은 용어보다 ‘동네 친구형 상담가’나 ‘옆집 언니형 상담가’라는 용어가 오히려 적절해 보인다.
같은 고민에 대해 다른 어법으로 같은 결론에 이른 사례도 있다. 김어준씨의 <건투를 빈다>에서 한 스물네 살 여성이 ‘남친을 확 뜯어고치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어준씨는 “애인이 남인 걸 인정하지 않고 어른의 사랑, 못한다”고 조언했다. 김혜남씨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에도 비슷한 고민이 등장한다. 김혜남씨는 전문가답게 애인을 자기 마음대로 뜯어고치려는 심리적 태도에 대해 ‘피그말리온식 사랑’이라는 심리학 용어를 들어 설명하지만, 결론은 같았다.
단편적인 상담으로 정답 얻을 수는 없어
정혜신 마인드프리즘 대표는 ‘팝 사이콜로지’ 현상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밝혔다. “심리학의 일상화라 할 만하다.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다. 심리학은 책상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치유를 위한 학문이고 실용학문인데 전문 상담소에 갇혀 심리학이 유리된 측면이 있었다. 질환이 있어야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만들었다. 또 전문가들이 갇혀 있는 측면이 있다. 소설가 김형경씨는 비전공자지만 인간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해 전공, 비전공의 구분이 의미 없다. 이처럼 때로 일부 전공자보다 더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그는 매체를 통해 단발성의 명료한 답을 구하려는 태도는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고민에 대해 도움을 얻거나 성찰을 얻는 건 지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정서적인 깨달음의 과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단순히 논리적인 깨달음만으로 단번에 태도나 생각이 바뀌기는 힘들다.” 팝 사이콜로지는 소통 없는 세상의 소통이고, 동정 없는 세상에서 공감을 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누가 그 목소리에 돌을 던지겠는가.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래픽 이상호 기자 dokko@hani.co.kr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아예 ‘팝 사이콜로지’(pop psychology)라는 표제어가 따로 있다. 포퓰러 사이콜로지, 즉 ‘대중 심리학’이다. 정의는 분명치 않다. ‘심리학이 널리 알려진 현상’ ‘자격증 유무에 상관없이 심리·고민 상담을 해주는 것’ 또는 ‘출판 등 심리 상담과 관련된 산업’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한국의 학생들이 영어 공부 할 때 많이 읽는 ‘디어 애비’(Dear Abby) 같은 칼럼이 대표적이다. ‘팝 사이콜로지’ 현상의 한 가지 특징은 사람들이 자격증의 유무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점이다. 책 판매량이나 매체 활동량이 많은 상담가 가운데 김혜남씨 같은 전공자 외에도 비전공자가 많다. 외과 수술이나 내과 치료와 달리, 마음의 치료와 관련해 사람들은 ‘공감’과 ‘좀 더 가까운 심리적 거리’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와 환자의 우열 관계가 아니라 동네 형,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상담을 대중들이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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