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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들게 하냐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록 2009-05-27 18:02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너 어제 그거 봤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번 한 주간의 티브이처럼 우리를 깊은 생각과 성찰에 빠지게 했던 예가 또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번주 대다수의 예능, 오락 프로그램들은 다큐멘터리, 뉴스, 특집 프로들로 대체 편성되었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대체 편성된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특별 기획된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문화방송)을 통해 티브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요했던 티브이에 큰 울림 준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
평범하다 자위하는 우리들이 던진 돌은 정말 없었을까

신광호(이하 신) 연예오락 프로그램들로 소란했던 티브이가 이번 한 주간은 브레이크를 밟은 기분이다. 무공해 느낌도 난다.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해볼 시간이 되는 것 같다. 평소엔 티브이에서 좀더 자극적인 걸 찾게 된다.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고 캡처하느라 여기저기 돌려보곤 했으니 말이다. 이번주엔 사건이 사건인 만큼 뉴스와 대체 편성된 잔잔한 프로들을 곱씹으면서 보게 되더라.

정석희(이하 정) 그렇다고 설 연휴처럼 영화를 재탕 삼탕 하는 것도 아니고,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돌아볼 시간도 되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지난 주말엔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로봇다리 세진이> 편이 재방송됐다. 보면서, 서로 보듬어 안고 살기도 힘든데 왜 이렇게 물어뜯고 사는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랑하면서 살 시간도 부족하잖아. <사랑> 시리즈를 보면 목숨을 연장하거나 불행을 이겨내는 게 전부 긍정의 힘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지금 불신과 슬픔으로 가득한 현실이 <사랑>을 보면서 정화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잔인한 말 내뱉는 건 악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


역경이 있는 사람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난 잘 못 보는 편이다. 감동받지만, 내가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도 불편해진다.

그게 보통사람 마음일 거다. <로봇다리 세진이>에서 수영선수 세진이가 “물에 들어가면요. 힘들었던 마음이 싹 풀리는 것 같아요.”, “물속에 들어가면 하늘을 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역경을 딛고 일어난 아이라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세진이 엄마는 아이가 물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수영을 시켰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픈 애를 힘들게 수영 시키냐고 말했다잖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세진이를 향해, “더럽다, 병 옮는다, 물값 내놓고 가라, 수영장 닦아라” 했단다. 이런 잔인한 말을 뱉는 게 악인들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라는 것에 더 놀랐다. 대부분 우리는 잘못 안 했고 평범하다 자위하며 살아가지만, 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세진이 모자에게 상처를 줬다. 그래도 세진이가 맑고 깨끗한 건 역경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일 거다.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의 <로봇다리 세진이>. 문화방송 제공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의 <로봇다리 세진이>. 문화방송 제공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도 우리 주변인 거고, 그들을 배척하는 악의적인 사람들도 우리 주변인 거다. 우리와 다르거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걸 보면 결국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적인 차원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부분은 성장하면서 사회성을 키우지만 막상 인간적인 성숙함이나 교감 능력, 깊이를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세진이는 어른도 갖지 못한 성숙함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다. 어른인 내가 봐도 깜짝 놀랄 만큼, 한계상황 속에서도 정신적으로 꽉 차 있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 부끄럽다.

세진이가 ‘장애인 수영세계선수권대회’에서 상 타는 장면을 보는데, 난 박태환 선수 상 탄 것보다 좋더라. 다큐에서 실제로 세진이가 박태환 선수 만나는 것도 나왔는데 박 선수가 세진이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모습, 흐뭇했다! 인간성 좋아 보이던데, 정말 잘 큰 남자더라구. 22일 방영된 <우리가 사랑할 시간> 편은 보고 할 말이 없어졌다. 발랄하고 예쁘던 열두살 재희가 불치병에 걸려 손 까닥하는 걸로만 의사소통하는 걸 보면서 가슴이 막막해졌다. 의료진도 다 포기하고 항암치료 하지 말라는데 엄마가 애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그 마음 어찌 설명할까?

그들에게서 내가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커진다.

그들에게 뭔가 해주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게 우선이다. 사람들이 세진이에게 했듯 손가락질하고, 수영장 물 갈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거다. 세진이 엄마는 6시간씩 왁스로 수영장을 청소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자비 들여서 나갔다 왔다. 이런 걸 보면 나라가 도대체 뭐하는 걸까 싶었다. 왜 혼자 거기 나가는 거야? 통역도 없고, 나라는 뭐하고 거기 대사관이나 영사는 뭐하나 싶다. 진짜 누군가의 힘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최소한 신경을 써줘야 한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어른의 말

<사랑> 특집은 평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굳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했다. 삶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용기와 긍정. 그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받았고, 나를 뒤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로봇다리 세진이>도 <네번째 엄마>의 지원이도, <우리가 사랑할 시간>의 재희도 다행인 것은 큰 사랑을 주는 엄마가 있다는 거다. 엄마가 지켜주는 거잖아. 그런데 <풀빵 엄마> 편은 엄마가 암 말기로 투병중이었다. 아이가 재롱잔치에서 “엄마, 우리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데 가슴이 찡~했다. 키워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고마운 거라고 어린아이도 느끼는 거다. 우리 엄마가 아파서 나를 못 키울 수 있다는 걸 아는 거고. 큰애는 동생을 늘 한 팀으로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하더라.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의 <풀빵 엄마>. 문화방송 제공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준 ‘MBC 휴먼 다큐멘터리 사랑’의 <풀빵 엄마>. 문화방송 제공
참 일곱 살짜리의 멘트는 아닌데~. 막상 가족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거, 사랑을 증명하기까지의 레시피가 있는 건 아닌데도 표현법을 찾기 참 어렵다. 살면서 사랑을 확인하게 될 때 안도를 느끼는 걸 알지만 그걸 표현하기가 어려운 거다.

나도 몇 해 전 아플 때 딸이 나를 그토록 애타게 찾는데, 그간 잘 몰랐던 사랑을 크게 느꼈던 적이 있다. 표현을 하고 서로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중요하다.

다큐멘터리 상황에 이입되다 보면 내가 그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는 것에 일차적 안도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절박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을 보면서 나나 내 주변의 사랑을 체감하고 표현하고 살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지난 주말엔 ‘박지성 다큐’도 재방송됐다. 박지성의 자세 참 대단하더라. 네덜란드에서 야유를 받을 때도 “세계 축구 무대인 유럽에 와서 뛴다는 게 보통일이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 인재들의 배후에는 대단한 긍정의 힘을 가진 한 인물과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부모들이 있지 않나 싶다.

평범하게 살곤 싶지만 축구는 가장 잘하고 싶었다는 근성을 높이 살 수밖에 없었다. 박지성도 그렇고 다큐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참 대단하다. 그래서 다큐를 만드는 거겠지.

박지성이 잘 안될 때도 그를 믿어준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입김이 중요하구나 싶을 정도로 누가 한마디 안된다고 하면 다 안된다고 하는 식이다.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게 없는 냄비근성인 거다. 누군가를 제 눈으로 평가하기 이전에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는 거다.

인터넷 리플도 맨 위의 리플에 따라 달라지잖아. 나를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티브이를 보는 의미가 컸다. 다큐 속 인물들이 어쩜 그렇게 속이 깊은지 그들 말 한마디에 고개 끄덕이고 감동하게 됐다. 드라마나 토크쇼를 보면서 누군가의 말에 천천히 고개 끄덕인 적이 너무 오래됐던 거다.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힘

은근하게 위로가 됐다. 결국 인물 다큐라는 게 정신없이 마구 돌아가는 안테나를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 같다. 울림이 큰 다큐 한 편이 끝나고 나면 혼자 또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더라.

타인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밖에 있는 나와 또 내 주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 사랑을 보여준 최고의 순간

“재희야.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우리가 평생 네 수족이 되어야 해도 괜찮아.” <우리가 사랑할 시간> 편.

“남들은 다 포기하라고 해도 끝까지 붙들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이다. 철딱서니 없이 엉엉 울고 속상해하는 엄마지만 막상 엄마를 보는 재희는 기뻤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나의 곁에 있으려는 엄마를 보면서.”(정석희)

“막내 울음소리는 저승까지 들린다는 옛말이 있다. 엄마 아빠를 가장 짧게 보기 때문이라고.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 아직 경험해본 적 없으나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다’는 애절한 말에 눈물 펑펑.”(신광호)

■ 사랑 없는 최악의 순간

세진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 <로봇다리 세진이> 편.

“세진이를 걷게 하고 싶어서 병원을 찾은 엄마에게 의사가 ‘뱃속에 있을 때는 몰랐어요? 돈 많으면 해보든지요?’라고 말했다더라. 정말 황당했다. 이런 식의 태도가 쿨한 걸로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뭐 저런 ××가 있어?’ 생각했다가 더 슬퍼진 건, 나라면 세진이 엄마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에.”(정석희)

“수영 왜 하냐는 말부터 세진이를 향한 비난의 시선이 모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따끈하면 좋겠건만. ‘그래도 낳아야죠, 살려봅시다’라고 권고하는 사회~ 너무 멀리 있지 않았으면!”(신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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