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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동료 옆에서 위축돼요

등록 2009-06-24 19:31수정 2009-06-25 09:37

목소리 큰 동료 옆에서 위축돼요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목소리 큰 동료 옆에서 위축돼요 /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최근 입사한 26살 신입사원입니다. 한 살 어린 동기 여사원이 신경 쓰입니다. 수수한 외모, 조용한 편인 저는 잘 맞는 친구들과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타입이고 만인과 친하려고 노력하는 건 쓸데없고 속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가 아닐 경우 적당히 거리를 두죠. 아마 저는 주변인들에게 ‘착하고 조곤조곤하며 성실하고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는’ 평범한 여자일 것입니다. 반면 같은 부서의 그 친구는 쾌활하고 목소리도 크고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쏙쏙 골라 합니다. 듣는 사람 기분 좋게 거짓과 진실을 적당히 버무릴 줄도 알죠. 문제는 이 친구와 있을 때 제가 괜히 위축되고 소외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상사가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녀는 선수 쳐서 자기 의견을 잘 표현하죠. 저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말할 기회를 놓쳐 존재감이 적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동료들도 그녀한테만 말을 많이 하고요. 저는 저보다 한 살 많은 여선배도 깍듯이 대하는데 이 친구는 제게 그런 배려는 안 하고 자기 어필에만 힘쓰네요. 결론은, 전 필요할 때만 말을 하는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 좋습니다. 애써 그녀처럼 굴면서 어필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다면 저 같은 스타일이 상사나 동료들에게 어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받길 원하는 속내 털어놓지 않으면 피해자 의식만 쌓일 뿐입니다

A 사랑받지 못해, 괴로운 거군요. 사랑, 다들 받고 싶어하죠. 나대는 ‘그 친구’도 사랑받기 위해 그런 거고, 회사 사람들도 사랑받는 느낌 드니까 귀 즐겁게 해준 그녀가 좋은 겁니다. 이렇게 직장을 직간접적으로 움직이는 건, 실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신입사원의 사랑은 ‘붙임성’입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질문하고 많이 조잘거리고 많이 흡수하면서 잘 따르는 신입사원 둘레에 사랑이 많이 싹틉니다. 과거에 얼마나 잘났든, 이 조직에선 엄연한 베이비니까 방긋방긋 나를 보고 웃어주는 맛이 있어야죠. ‘쟨 속에서 뭔 생각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둡다’ ‘반응이 느리다(혹은 없다)’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 ‘기분이 만날 저기압이다’ ‘너무 개인주의적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시킨 일 깔끔하게 잘해도 유쾌한 마음은 안 듭니다.

보아하니 당신의 관점에선 ‘그 친구’는 사랑이 넘치다 못해 쉽고 헤프게 보이나 봅니다. 그녀의 관점에서 본 당신은? 앞에선 마음의 철벽을 치면서 뒤에선 꿍얼대는 응석받이처럼 보일 것 같은데요.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믿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실은 다른 이들이 먼저 내게 손 뻗어주고, 눈엣가시인 그 동기 여사원조차도 날 먼저 예우해주길 바라고 있잖아요. 그리고 이건 저의 관점인데요, 자신을 ‘평범하다’고 칭하시는 분들, 은근 자존심이 필요 이상으로 강합디다. 난 평범해, 라는 선언이 ‘난 다수를 대변한다→고로 난 옳다→난 이대로 안 변하련다→배째’로 들리더란 말입니다.


정말로 당신은 ‘착하고 조곤조곤하며 성실하고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는’ 평범한 여자일까요? 이참에 회사 사람들한테 객관적인 평가 한 번 받아보십시오. 들은 바에 의하면, 스스로 내리는 자기평가는 주위의 평가에 비해 30% 정도 더 후하게 쳐준다고 합니다. 자연스런 자기애, 자기방어 본능에서 나오는 현상이라 나쁜 건 아니지만, 직장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확인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은 후, 그것을 사실로 인정해서 받아들이고 견고한 껍질을 과감히 깨고 스스로를 변화,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하겠지요. 과연 회사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말을 하는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의 미덕을 얼마나 알아줄까요? 학교와는 달리 개인적 이해관계가 일로 연결된 직장에선 ‘사랑의 조건’은 보다 혹독하답니다. 가령 ‘참 착하고 차분하니 좋은 애네’라 해도 직장 동료에게 있어서 유효한 ‘착함’이란 ‘내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민폐가 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왜 마돈나적 존재인 ‘그 친구’의 아우라를 누를 수 있는 필살기를 알려주지도 않고 기분 나쁘게 딴소리냐고요? 뭔 소리. 방금 제일 확실한 거 알려드렸습니다. 지금 나한테 묻고 싶은 거, 같이 일하면서 당신을 정확히 지켜본 그들에게 고스란히 물으십시오.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 난 지금 너에게 어떤 동료인가. 내가 어떻게 해야 사랑받겠는가.’ 이렇게 묻는 행위야말로 ‘난 너로부터 사랑받길 원한다’는 최고의 직격탄 러브레터이자 어필법입니다! 속내를 털어놓고 약한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보이는 것, 당신들의 사랑을 기꺼이 받고 싶다고 먼저 고백하는 것, 그걸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신입사원, 그것도 조금은 까칠해 보였던 아이가 촉촉한 눈망울로 이렇게 불쑥 들이대면 그 반전효과에 다들 깜빡 죽을 겁니다. 게다가 이런 ‘사랑의 항복’ 어필법은 신입사원 시절에나 통하니(다 커서 저러면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어 날로 먹을 것임), 지금 써먹을 수 있을 때 써먹어 대십시오. 특권입니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최악은 계속 닫힌 상태로 ‘난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입장’이라며 피해자 의식이 연차만큼 늘어가는 것. 신입 때 이런 피해자 의식이 싹트면 ‘책임 전가형’ 인간으로 승진되죠. 내가 노력하지 못하는 건 다 주변 탓, 상사들은 날 제대로 평가 안 해주고, 선배들은 조언도 안 해주고, 동기들은 죄다 이기적이고, 고로 내겐 합당한 기회가 안 주어지니 나 운 지지리 없어, 이 회사 졸라 웃기는 회사네, 요령 좋은 인간들만 살아남아, 이러면서 대학원이나 가볼까 기웃거리기나 하지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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