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나, 주변에선 유별나다는데.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사랑받는 만큼 미움받는 이유에 대해 공정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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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 제가 매우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야말로, 발에 차이면 후두둑 떨어지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요. 제 나름대로 조용히 살았고, 남에게 크나큰 피해를 준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제가 평범하지 않다고 하네요. 심지어 얼마 전엔 친구에게 ‘넌 아직도 네가 다른 애들과 다르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겠냐’고 한 방 쥐어박혔습니다. 저는 평소엔 그냥 조용히 있고, 모두에게 싫은 소릴 한 적도 없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중에는 명백히 저를 부담스러워(라기보다는 멀리하는)하는 아이도 있고, ‘저’를 상당히 재미있는 인간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주위의 사람들은 두 부류로 갈라져 저를 좋게 보는 쪽도 있고, 싫다는 쪽도 있습니다. 제가 보여준 행동이 각각에게 다른 행동도 아니었건만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전 나름 타인에게 저를 좀 맞춰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아니라고 하니까 또 쥐어박혔습니다. 대체 왜죠? A ‘안’ 평범하다는 것은 긍정적 의미의 ‘특별함’일까요, 부정적 의미의 ‘이상함’일까요? 이 경우는 환호나 공격의 용도보다는 섭섭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합적 의미에서 사용된 것 같아요. 당신은 ‘내가 뭘 어쨌다고’ 싶어 더 서운하겠지만요. 그 친구들의 미묘한 뉘앙스를 어디 한번 가늠해 볼까요. 우선, 친구 사이라곤 하지만 은연중에 철벽 치고 있지 않나요. 조용히 남 피해 안 주면서 산다 했는데, 그건 그만큼 타인의 개입을 꺼린다는 것 아닌가? 피해도 안 주지만 반대로 피해받고 싶지 않다 이거죠. 싫은 소리 안 하는 건 나도 싫은 소리 들을 이유가 없다는 거구요. 타인에게 나를 얼추 맞춘다 했지만 그건 본인이 내킬 때 충분히 나이스해질 수 있는 유연성을 갖췄다는 것이지, 상대방을 향한 깊은 공감 능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죠. “넌 너밖에 몰라”라는 뼈아픈 소리를 곧 들을지도 모르겠어요. 호불호가 분명해서 부담 주는 것도 한 가능성. 어렸을 적 우리는 좋고 싫고가 분명했는데 나이 들수록 ‘적당하고’ ‘고만고만한’ 그다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회색 영역만 커져 갔지요. 그게 마치 성숙함의 상징인 것마냥. 그런데 당신은 감성이 아직 날것 그대로라 세련된 그들에겐 거슬렸겠지요. 그래서 친구들의 일언보다 ‘내가 좋아하냐 싫어하냐’가 중요하니 무언중에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남 눈치 안 보고 호불호를 쉬이 표현하는 당신에 대한 질투로 복잡미묘한 짜증이 나는 거죠. 심지어 여기에 말수가 적다면 대체 무슨 꿍꿍이속일까 싶고. 그뿐입니까. 조용해 보이는 타입이 속으로 자신의 견해가 단단하면 그게 또 묘하게 기 세 보이고 튀어 보입니다. 순해 보였던 애가 은근히 건방지네, 좀 잘난 척이네, 싶고 너무나 ‘자체완결’되어 보이니, ‘틈’이 없어 보여 가까워지기 힘든 거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이 어, 이거 비웃는 거야 싶습니다. 당신은 멍청히 혼자 딴생각하다 히죽거렸을 뿐인데. 게다가 마이페이스 타입이다 보니 사실 이런 안절부절못했던 그 친구들의 심정을 알 길이 없습니다. 평소 관심이 없었으니 “뭐가 문제 있어?” 싶죠. 이런 천연의 무심함이랄지, 자신감이랄지, 뻔뻔함이랄지가 특히 말수 많되 공허한 오지랖 타입들을 소리 없이 긁어대곤 했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 받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해주기는커녕(본인의 감정에만 집중해서) 의식조차 못 하니 그 무관심, 무신경함에 두 번 삐치죠.
어때요, 의도했든 안 했든 이래저래 그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미움 받는 여자라고 해서 판에 박힌 싸가지 없고 못된 여자만 미움 받으라는 법은 없거든요. 객관적으로 굉장히 괜찮은 애인데 유독 특정 역학관계에선 짜증을 부르는 이들이 있는 거 어쩔 수 없어요. 이 친구들도 논리적으로 공격하기엔 사안이 주관적인 속상한 감정인지라, 괜히 시작했다간 ‘나 못났소’ 하는 꼴이 될까봐 이렇게 완곡하게 찔러보거나 슬금슬금 기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을 길 없던 겁니다. 딱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 거북하다는 몇 사람 안심시키려고 스타일 바꾸겠어요? 그들 말대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평범하지 않은 대로 좋은 점도 분명히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미움 받고 싶지 않다고 내가 아닌 나를 연출한들 그건 나 자신을 애써 부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난 나야, 난 나를 사랑해, 난 행복할 권리가 있어, 식으로 싸구려 처세서처럼 단순화시키는 것은 비호감을 넘어 무진장 얼빵해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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