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은 요리를 살리고 죽인다. ‘맛의 척추’다. 그러므로 요리사마다 소금에 관한 철학이 있다. 소금이 왜, 어떻게 중요한지 요리사들은 경험으로 안다. 소금 때문에 울고 웃었던 에피소드도 있다. 2명의 요리사에게 “당신의 소금론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천일염 된장은 버터처럼 부드러워
기계염과 천일염은 큰 차이…게랑드만큼 우리 소금 뛰어나
⊙ 기계염과 천일염은 차이가 큽니다. 한식의 기본인 된장, 간장에는 소금이 들어갑니다. 저는 소금과 물이 된장 맛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간장의 깊은 맛은 어떤 소금을 쓰냐에 따라 다릅니다. 요리사들은 음식을 맛보면 텁텁한 맛이 있는지 등으로 어떤 소금을 썼는지 감별할 수 있죠. 한때 유행을 탔던 죽염은 무침에는 좋은데, 끓이는 음식에 썼을 땐 유황냄새가 조금 나더군요.
천일염의 간수가 얼마나 빠졌는지도 중요합니다. 3년 전에 한식당을 경영하면서 전남 신안의 태평염전을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곳에서 직접 천일염을 맛보고 소금 창고를 봤습니다. 4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에 슬로푸드 대회 참석차 갔을 때 유럽 국가들이 명품 소금을 전시했던 걸 보고 놀랐던 일도 기억납니다. 이처럼 귀중한 천일염을 생산하는 갯벌이 한국에서 자꾸 없어져 걱정입니다. 요새 요리의 흐름은 갖은 양념보다 원재료의 깊은 맛을 살리는 것인데 이때 소금 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천일염이 더 알려져야 할 텐데요.
전북 진안의 된장 장인이 전통 방식으로 만든 메주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천일염으로 담근 김치와 막소금으로 담근 김치는 단순히 맛뿐 아니라 아삭거리는 식감에서도 차이가 생깁니다. 젓갈이나 김치 같은 한국 음식은 소금으로 시작해서 소금으로 끝나죠. 요리할 땐 한국 천일염이 최곱니다. 저는 온갖 소금을 다 써봤습니다. 유명한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도 써봤죠. 그보다는 한국 천일염이 더 좋았습니다. 양식과 한식의 소금 간도 다릅니다. 양식에서는 기본적으로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그러나 한식은 소금 간 외에 발효 음식인 간장으로도 간을 하죠. 3년 전 한식당 ‘기흥별당’을 운영할 때 된장을 담그면서 천일염과 일반 소금으로 각각 나눠 담가봤습니다. 천일염으로 만든 된장은 가히 버터처럼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더군요. 소금의 맛은 짠맛이 아닙니다. 짜고 씁쓰름한 맛은 천일염의 맛이 아닙니다. 좋은 천일염은 깊은 맛이 납니다.
윤정진(41)/한식 요리사
카메라는 돌고, 소금통은 사라지고
원재료의 맛 살릴 땐 소금간…한국 천일염 제품 다양했으면
프랑스식 레스토랑 ‘라 싸브어’ 주방장 전경수씨
⊙ 저는 프랑스 요리를 합니다.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2002년 이곳 레스토랑을 열었으니 6년이 넘었군요. 양식에서 소금의 구실은 큽니다. 요리의 마지막(피니시)이 소금이니까요. 실제로 프랑스 등 양식에서는 생선용, 스테이크용 등 여러 요리에 맞춤한 기능성 소금이 많습니다. 양식에서 이렇듯 다양한 소금이 발달한 이유는, 한식과 달리 양식에 달고 매운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로 짜거나 신맛이 많죠. 설탕은 본요리보다 디저트에 집중합니다. 저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 국산 천일염, 꽃소금, 남미의 암염 등 여러 소금을 써봤습니다. ‘라 싸브어’에서는 게랑드 소금 두 종류, 남미 파타고니아 호수염을 씁니다. 해산물, 스테이크, 맑은 수프 등 요리에 따라 다른 소금을 쓰죠. 우리 한국의 천일염도 써봤습니다. 게랑드 천일염에 비해 크게 품질이 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진경수 주방장의 푸아그라 요리. 뿌려진 게랑드 소금이 눈에 보인다.
다만, 요리별로 좀더 다양한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스테이크에 쓸 수 있는 허브 소금 등으로 세분화되어야 하는 것이죠. 기계염과 천일염의 맛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요리사에게 소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식재료입니다. 저는 꼼꼼한 성격이라 주방에서 요리할 때 항상 내 게랑드 소금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있죠. 문제는 밖에서 벌어집니다. 몇 년 전 어느 방송사에서 주관한 요리 관련 행사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요리 경연 대회였습니다. 1차 대회는 무사히 치렀는데, 2차 대회 때 주방이 바뀌면서 사달이 벌어졌습니다. 요리사에게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방송사 스태프들이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바뀐 주방에 서서 요리를 하려는데 게랑드 소금통이 없어졌지 뭡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더라고요. 카메라가 저를 비추고 있는 걸 까맣게 잊고 스튜디오를 벗어나 제 게랑드 소금통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됐죠. 생방송이 아니어서 무사히 방송을 마치긴 했습니다만, 식은땀 좀 흘렸죠.
저는 소스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생선 요리나 스테이크에 뿌린 소금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게랑드 소금은 염도가 낮고 미네랄이 풍부해 조금 짜게 먹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손님 가운데 게랑드 소금을 잘 모르는 분은 “소금이 보인다, 너무 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바쁘지만 않으면 제가 직접 천일염에 대해 설명을 드립니다.
진경수 주방장은 요리에 맞춰 다양한 소금을 사용한다.
진경수(42)/프랑스식 레스토랑 ‘라 싸브어’ 주방장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