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드라마 두 편이 눈길을 끈다. 17세기 조선에 표류한 영국 귀족과 섬처녀를 그리는 <탐나는도다>가 신기함에 가까운 신선함이라면, <세 친구>에서 <세 남자>로 변신한 시트콤 <세 남자>는 다시 만나 반가운 신선함에 가깝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탐나는도다>(문화방송)와 <세 남자>(티브이엔)를 들여다봤다.
제주도 자연산 옥돔처럼 신선하고 탱탱한 주말드라마 ‘탐나는도다’
40대 공처가, 이혼남, 노총각으로 변신해 10년만에 모인 ‘세 남자’
정석희(이하 정) 만화 같은 <탐나는도다>를 주말 저녁 8시에 편성했다는 게 모험이다. 탄탄한 시청률의 <솔약국집 아들들>에 도전장을 내민 셈인데, 일단 신선하다.
신광호(이하 신) <꽃보다 남자>를 제작했던 송병준씨다운 기획이다 싶었다. <탐나는도다> 역시 기성 드라마보다 내러티브와 이미지가 판타지스럽다.
17세기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트렌디한 사극 <탐나는도다>. 문화방송 제공
황찬빈, 외국인 배우 중 최고야
정 여러가지 의아한 부분이 많지만, 만화라는 단어 하나가 그걸 무마해준다. 그 당시 바닷물에 방수되는 유리병이 있었을까, 잠깐 동안 외국인이 한국말을 어쩜 그리 빨리 습득할 수 있었을까. <궁>과 <꽃남> 때도 그랬지만 판타지를 그려내는 데 있어 만화를 앞세운다는 건 영리한 선택이다.
신 화면 뽀샤시~하고 배우들 이쁘고, 언뜻 여중생들을 위한 드라마 같았다. 17세기 제주도에 표류한 영국 꽃미남 귀족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신선하다. 한데 막상 드라마가 아직까진 흡인력이 크진 않더라. 신인 배우들이라 집중도가 약한가?
정 신인이라 별 기대를 안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임주환도, 서우도, 영국 귀족 역을 맡은 황찬빈도 기대 이상이다. 윌리엄의 집 풍경이 나왔을 때는 외국인 재연 배우들이 활약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았지만, 윌리엄은 볼수록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배우 중 연기를 가장 잘하는 것 같다.
신 외국인 배우가 주인공이라는 것도 최초지. 그밖에 잔재미도 많다. 진짜 제주도 방언을 배우들이 쓰니까 때때로 무슨 말인지 놓치는 장면도 있다.
정 그런 느낌이 더 생생함을 준다. 17세기 제주도에 살면서 관료들에게 착취당하는 주민들과 한양에서 유배된 선비 박규(임주환)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사실 암울한 현실인데 전혀 어둡지 않은 현실인 양, 밝고 유쾌하게 그려내는 시각이 신선했다.
신 모든 유행 코드들이 녹아 있다. 코믹이나 러브신, 판타지 다 들어 있다. 암행어사 박규는 탐정 포스도 느껴진다. 이야깃거리나 볼거리에서 흥미진진한 게 가득한데 이걸 진득하게 이어주는 흐름이 약하다. 장면과 장면이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 버진(서우)과 박규라는 이름 짓는 센스는 재밌지 않나. 이름뿐 아니라 버진 엄마로 나오는 김미경의 연기, 정주리와 방은희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크다. 박규라는 조선시대 선비 캐릭터도 나쁜 남자이면서 은근슬쩍 부녀자들을 도와준다. “감히 아녀자가?” 운운하지만 무거운 것 슥~ 들어주는 매력남이다.
신 윌리엄(황찬빈)도 얼떨결에 제주도에 표류한 이양인으로 나와 미모를 뽐내지만, 조선 선비 외모가 더 이쁘게 잘 어울린다.
정 그 당시 선비의 외모 같지는 않지. 부녀자 희롱죄로 유배됐지만 여자에게는 딱히 관심도 없고. 정의로운 구석도 있으면서 실력도 두루두루 갖춘 인물이다. 젊은 배우들이 극 중에서 또랑또랑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무슨 뮤지컬처럼 앙증맞다.
신 솔직히 요새 비주얼로만 신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도 많지 않나. 얼굴 잘생긴 게 되레 흠이 되는 배우도 있는데 임주환만 보더라도 연기에 사활을 건 듯 열심이었다.
9년 전 문화방송 시트콤 <세 친구>를 모티브로 성인용 웃음 코드를 강화한 <세 남자>. 티브이엔 제공
40대 남자의 <섹스 앤 더 시티>니?
정 서우는 윌리엄을 남자가 아니라 무슨 애완동물이나 인형처럼 좋아한다. 기존 드라마의 연애담보다 상대에게 애착을 느끼면서 돌봐주고 하는 관계가 보기 좋았다.
신 <탐나는도다>의 조연, 신인 배우들 다 아기자기하게 자기 식대로 연기하는 것 같다.
정 포스 넘치는 연기가 꼭 좋은 건 아니니까. 개그우먼 출신 정주리도 자신의 모습과 닮은 캐릭터를 잘 그려낸다. 한끝분(정주리)이 박규(임주환)한테 애정공세하며 들이대는 장면을 네티즌이 엮어냈더라. 그 장면만 모아서 뮤직비디오처럼 만들고, 정규리랑 임주환도 퍼갔다고.(웃음)
신 극 중 배경인 제주도가 그림처럼 그려진다. 요새 드라마에서 제주도가 참 인기다.
정 해녀가 잠수했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건 <태양을 삼켜라>에서는 뜬금없었는데 <탐나는도다>에서는 딱 들어맞았다. 그냥 이쁜 그림 만들려는 게 아니라 실제 제주도 해녀들의 몸동작을 보듯 흡인력이 있었다. 버진이 물속에서 윌리엄을 만나 구해주는 것도 그럴듯했다.
신 <탐나는도다>는 안전빵으로 쉽게 가려는 의도가 없어서 좋다. 꽃미남이나 퓨전 사극 등 코드는 예전에 인기 있던 걸 녹인 게 많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세 남자>도 9년 전 <세 친구>를 기반으로 새 시트콤을 보여준다.
정 티브이엔에서 금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데 정말 성인용이다. 얼마 전 <스타골든벨>의 아이돌 특집을 보니까, 너무 흐뭇하더라.(웃음) 이렇게 어리고 꽃 같은 애들이 대세인 시대에, <세 남자>가 낯설 수밖에. 40대 넘은 중년 남자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나 싶지만 사실 <세 남자>는 우리 현실과 좀더 가깝다. 기존 <세 친구>의 캐릭터를 좀더 조밀하고 세게 그려내고 있다.
신 1회에는 배칠수가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막돼먹은 영애씨>의 느낌이 나더라. 2회부터 내레이션이 빠지고 웃음소리 효과가 들어오던데, 그 순간 2000년 성인 시트콤으로 인기를 끌었던 <세 친구>가 그리워졌다.
정 <세 친구>의 주역인 정웅인, 윤다훈, 박상면이 다시 모인 것도 반가운 일이다. 캐릭터가 각각 초식남, 육식남, 잡식남으로 해석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세 남자를 보고 있으면 참 친구 되기 쉽지 않았겠다 싶다. 결벽증이 있는 정웅인이 어떻게 간통 경력 있는 남자와 친구 하겠나.
신 극 중 윤다훈이 간통죄로 경찰서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이렇게 현실의 일부분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예는 케이블과 지상파 통틀어서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다. <세 남자>를 보면서 세계적으로 히트한 <섹스 앤 더 시티>를 떠올렸다. 캐릭터의 힘으로 밀고 나간다는 점과, 친구로 만난 이 세 명의 다른 성격을 통해 현대적 삶을 보여주는 게 비슷하다. <세 남자>는 평범한 세 남자의 한국판 남성용 <섹스 앤 더 시티>랄까.
정 간통죄였던 사람이 드라마 주인공인 적은 없었다. 폭력배가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와 드라마는 있었지만.
신 <세 남자>에서 핵심은 40대 남자의 사랑과 성이다. 40대 한국 남자가 스타일에 죽고 살겠다며 멋부린다는 건 아직은 좀 비현실적이잖아. 패션이라는 영역이 빠지고 부인과의 관계, 이를테면 돈 때문에 남녀 주권이 달라지는 가정사 등이 녹아 있다. 한데 셋 중 유부남이 한 명이다 보니 실제 육아 문제, 일상적인 이야기가 균형감 있게 그려지지는 않는 것 같다. 공감 가는 요소도 많지만 육식남인 윤다훈의 러브스토리나 주변의 여성 캐릭터 등은 시각에 따라 불편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확 끌리는 판타지는 없다. 별난 볼거리가 없다는 점에선,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나오는 맨얼굴의 남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정웅인 엄마로 출연하는 강부자의 연기는 참 현실적이었다. 엄마가 마흔살 아들 데리고 속 터져 하며 사는 모습, 아들 돈 받는 처지를 고려해 굴비 구워 주는 장면 하나에서도 리얼하게 살아나더라.
신 조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다. <세 친구>에 등장했던 세 남자 외에 주변 인물들은 거의 다 바뀌었다.
정 비중 낮은 골프연습장 직원이라든지, 윤다훈을 유혹하는 여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극을 잘 받쳐 준다.
신 <세 남자>는 세 배우의 장점을 잘 살릴 뿐 아니라 흥미로운 아이템들을 잘 잡아낸다. 아내 우희진이 갑자기 남편 박상면을 꼬셔서 잠자리를 갖는데 그동안 티브이에서는 축구해설이 나온다든지.(웃음) 참 센스 있는 아이디어가 많은 것 같다.
정 근 10년 만에 다시 등장한 <세 남자>도 다양한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다시 한번 웃다가 쓰러지고 싶다
신 맞다. 난 군대 있을 때 <세 친구>를 보고 너무 웃겨서 데굴데굴 구르다 정말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안문숙이 맹활약하는 장면이었는데, 최고로 웃겼던 그 장면 보고 진정제까지 맞았다.
정 이 세 인물이 함께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추억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다른 연기활동을 펼쳐왔지만, 어떤 부분 비슷비슷하게 나이를 먹어온 것 같다.
신 윤다훈의 애드리브도 녹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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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도다>의 탐나는 인물
임주환(박규 역) | “처음엔 뭐 저런 다리 길고 잘생긴 선비가 있나 했지만 캐릭터 연구도 많이 하고 대략 잘해주신다. 선비 같은 걸음걸이나 시선 처리까지.”(정석희)
“신인인데 작정한 듯한 연기가 참 보기 좋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연기가, 꽃미남 외모에 꿀리지 않아.”(신광호)
<세 남자>의 새로 발견한 인물
우희진(상면 아내 역) | “과거 연기에서 확 변신한 지금의 우희진이 더 좋다. 뭔가 득도한 듯한 연기, 우희진 다시 봤다.”(신광호)
“<느낌>의 우희진이 박상면 부인으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지. 이 변화가 안쓰러운 게 아니라 터닝포인트이자 업그레이드 같다. 청초한 과거 이미지에 묻혀 있는 여배우들도 많은데 우희진은 모든 역을 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는 듯.”(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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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현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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