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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두 마리가 나타났다

등록 2009-10-21 18:18수정 2009-10-23 09:06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블록버스터급’ 드라마 두 편이 시작했다. 하나는 배우부터 이야기까지 ‘대작’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의 공식을 따라 만든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아이리스>이고, 또 하나는 이제는 낯설지 않은 수식어 ‘막장 드라마’의 지존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가 선보이는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천사의 유혹>이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왼쪽)과 최지은 기자가 <아이리스>와 <천사의 유혹>을 들여다봤다.

블록버스터 공식 충실한 <아이리스> 캐릭터의 철학도 기대해
세상의 모든 불가능을 순식간에 가능하게 하는 <천사의 유혹>

백은하(이하 백) <아이리스>는 기대도, 우려도 컸던 드라마다. 이미 우리는 엄청난 돈을 들였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스토리와 지나친 해외 로케이션으로 외화 낭비만 해버린 것 같은, 장진영의 유작으로 남은 대작 <로비스트>를 봤다. 한류 스타를 내세우고 일본 흥행까지 고려했지만 국내에서 반응이 없었다. 가장 큰 우려는 <아이리스>가 <로비스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이리스>는 1회와 2회에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했다. 시작부터 끝장을 보지 않으면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가 보였다. 볼거리를 끊임없이 제공해줬고 2회 만에 25%가 넘는 시청률을 끌어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운명 거는 건 삼가줘

이병헌과 김태희의 드라마 복귀작 <아이리스>. 초반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이병헌과 김태희의 드라마 복귀작 <아이리스>. 초반 2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최지은(이하 최) 최근 미니시리즈는 히트해봤자 시청률 20% 넘기기가 어렵다. 수목드라마에서 1위를 해도 20%를 못 넘긴다. 그런데 <아이리스>는 시청률이 초반에 20%를 넘으며 치고 나갔다. 드라마 관계자들도 놀랐다. 1회와 2회는 볼거리에 휩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3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다.

<아름다운 날들> 이후로 욘사마를 잇는 한류 스타 이병헌은 이 작품으로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왔다. 이 드라마는 이병헌에게 기대는 부분이 많다. 이병헌이 나오는 지점과 안 나오는 지점의 차이가 눈에 보인다. 이병헌을 청춘스타로 자리잡게 한 것은 캠퍼스 드라마였다. 이후 영화에서 전사나 강렬한 악인 이미지를 쌓아왔다. <아이리스> 1회와 2회에서는 이병헌이 청춘스타였던 지난날을 보는 느낌이었다. 캠퍼스로 들어가서 특유의 장난기로 여자를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드는데, 그게 능글능글해서 징그럽다기보다 귀여웠다. 김태희의 연기는 이병헌의 무게감에 눌리긴 하지만 드라마 전체를 거스르는 느낌은 없다.

문제는 모든 볼거리와 드라마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블록버스터 첩보 멜로 드라마의 장점이나 플롯을 따온 게 많았다. 영화 <쉬리>나 <본 아이덴티티>, 미국 드라마 <24> 느낌도 났다. 예상에서 벗어난 장면이 별로 없었다. 아주 대중성 있는 드라마를 노리고 만든 것 같고, 눈높이가 높은 시청자보다 아래를 보고 만든 것 같다. 캐릭터도 그렇고 사건의 전개도 그렇다.

패를 다 보여주고 시작하는 드라마다. 모든 걸 다 보여주고도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게임이 있고, 다 보여줘서 흥미가 떨어지는 게임도 있다. 전자일지 후자일지 모르겠지만 더는 궁금한 패가 없다. 반전이 나올 거라는 기대보다는 배우들이 얼마나 알차게 채워줄 것인가, 드라마가 얼마나 강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뒷심이 부족할 경우 이야기로 드라마를 끌고 가기 힘들 것 같다. 두 주인공은 작전에 의해서든 무엇에 의해서든 곧 떨어지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을 이야기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액션 장면은 최근에 나온 어떤 대작보다도 잘 찍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의 철학은 뭘까. 앞으로 김현준(이병헌)과 진사우(정준호)가 대립하고 그 사이에서 최승희(김태희)는 갈등할 것이다. 이 인물들의 가치관에 따라 딜레마가 생길 거다. 이 드라마가 철학을 가지려면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며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 가치관과 정체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미드가 재미있는 이유는 캐릭터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의 철학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설정 안에서 이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운명을 건다는 식은 설득력이 없다. 대작드라마일수록 이 부분을 간과한다.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고민은 개인의 욕망과 이뤄내야 하는 임무의 성취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에서 나온다. 초반에 김현준이 나는 충성심도 모르겠고 대의도 모르는데 그냥 이 일이 재미있어서 한다는 대사를 한다. 앞으로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김현준이 어떻게 싸우고 또 어떻게 변하는지를 우리는 지켜보게 될 텐데, 여기에서 지금까지 봐왔던 드라마와 달리 <아이리스>만의 가치관과 방식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리스>가 정통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면, <천사의 유혹>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다.

망설임 없이 주저함 없이 달리고 달리고

<아내의 유혹>을 쓴 김순옥 작가의 신작 <천사의 유혹>.에스비에스 제공
<아내의 유혹>을 쓴 김순옥 작가의 신작 <천사의 유혹>.에스비에스 제공
파괴력 면에서는 <아이리스>보다 <천사의 유혹>이 더 크다. 한국 드라마에 한 획을 그은 <아내의 유혹>의 작가가 보여주는 남성판 복수 이야기다. 게다가 아예 얼굴이 바뀐다. 설정으로 치자면 할리우드 저리 가라다. 사람 얼굴이 바뀐다는 <페이스 오프> 식의 블록버스터 이야기를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것 같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가 기업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시드니 셸던의 소설과 비슷하기도 하다. 김순옥 작가는 셸던 식의 허풍이 센 이야기를 한국 드라마에 확 끌고 들어온다.

문제는 디테일이 없는 허풍이라는 거다. 30억이나 50억이라는 큰돈을 하루아침에 만들어내고,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3억원이라는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자에게 준다. 정보가 필요할 때는 룸살롱 아가씨로 변신해 회장이 갖고 다니는 유에스비에서 기업의 기밀을 쉽게 빼내고, 신혼여행에서 남편이 밖에 있는데 호텔 방에 정부를 끌어들여 정사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데 희한하게 모든 것들이 쉽게 이뤄지고 쉽게 정리되는 간편한 세계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보고 간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가깝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민망해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작품이어야 한다든지 철학이 있어야 한다든지 그런 생각은 다 버린 것 같다. 윗세대 작가일수록 드라마는 문학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데 어느 시점부터 그런 생각들이 사라졌다. 김순옥 작가에게서는 그런 면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를 일회용으로 만드는 데 자기검열도 없고 망설임도 없고 주저함도 없다. 이게 김순옥 작가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다면 천재다. <아내의 유혹>은 첫회에서 한 2분 동안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여주고 시작했다. <천사의 유혹>에서도 이소연이 왜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슬픈 가족사와 복수의 과정을 빠르게 보여준다. 그것만 봐도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안다. 머리를 쓰지 않고도 볼 수 있다.

<천사의 유혹>은 인간이 원래 천박하다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사장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품격은 있는 척했다. 그렇지만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진희도 그렇지만 천박한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한다. 아내에게 왜 자신을 무시하냐며 먹물을 뿌리는 장면이나 딸에게 손찌검을 하는 장면처럼 불필요한 폭력이 쉽게 이뤄진다. 배설적인 폭력이다.

품격이 뭐임? 먹는 거임?

이소연의 연기가 나쁘진 않지만 <아내의 유혹>의 장서희 포스를 따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옴파탈’ 배수빈의 연기가 기대된다. 한동안 다소 심심하게 흘러갔던 드라마 판에 커다란 괴물 두 마리가 등장했다. 두 편의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 것이며, 또 그 파장이 어떨지, 어떤 영향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아이리스>와 <천사의 유혹>, 이래서 기대된다.

“이병헌의 연기. 김태희가 ‘난 당신의 상사야’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로망스> 식 대사를 치고 그다음 이병헌이 대사를 이어가는데, 그게 이병헌이 하니까 설득력을 갖게 되더라. 대본을 뛰어넘는 느낌이다. 이병헌의 몸이 아닌 눈을 보게 된다. 드라마에서 아무리 뻔한 장면이 계속된다고 해도 이병헌의 연기 때문에 계속 보고 싶다.”(백은하)

“배수빈의 연기. 배수빈이 어떻게 악마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옴파탈’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주몽>에서 사용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했고 <찬란한 유산>에서는 키다리 아저씨 역을 했다. 이 드라마에서는 김순옥 작가 특유의 기이한 설정들이 나올 텐데 이러한 설정을 남자 배우가 어떻게 소화할지 기대가 크다.”(최지은)

<아이리스>와 <천사의 유혹>, 이래서 뻔할 것 같다.

“최승희 캐릭터. 첩보물에서 여자는 의도치 않게 인질이나 희생양이 되거나, 남자 주인공의 결정을 흩뜨려 작전을 방해하는 역으로 그려진다. <아이리스>에서도 계속 관계의 주도권을 남자가 끌고 가면서 점점 여성 캐릭터는 밋밋하고 수동적으로 나온다. 최승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찾기 힘들다. 김태희의 기존 이미지와 미모에 최승희라는 인물을 얹은 느낌이다.”(최지은)

“<천사의 유혹>이 <아내의 유혹>의 자기복제가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한 번 들은 허풍에 두 번 속지는 않는다. 좀더 디테일하거나 독창적인 허풍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백은하)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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