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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한가, 징한가

등록 2009-11-04 18:44수정 2009-11-07 21:23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의 임성한 작가와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클럽>의 문영남 작가가 각각 문화방송 주말기획드라마 <보석비빔밥>과 한국방송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로 브라운관을 찾았다. <10 아시아>(10asia.co.kr)의 최지은 기자(사진 오른쪽)와 위근우 기자가 일일·주말드라마의 지존인 이 두 작가들이 보여주는 두 가족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입맛부터 단어 사용까지 계급 분류 바쁘다 바빠 <보석비빔밥>
시어머니와 며느리 한풀이로 중·장년층 공략 <수상한 삼형제>

최지은(이하 최) 임성한 작가와 문영남 작가는 <아내의 유혹> 김순옥 작가 이전에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일컬어지는 드라마를 쓰는 양대산맥이었다. 임성한 작가는 선정적인 대사와 엽기적인 설정으로, 문영남 작가는 부부간의 갈등으로 끝까지 가곤 했다. 이 두 작가가 시간대는 다르지만 주말드라마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아내의 유혹>보다 더 센 드라마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레시피’ 단어 알면 노동자 계층 아니라니

위근우(이하 위) 그런데 막상 방송을 시작하고 보니 두 드라마 모두 전작의 ‘막장류’ 드라마로 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실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임성한과 문영남의 사인과도 같은 특징은 이름과 몇 가지 장면에서 드러난다. <보석비빔밥>(이하 <보석>)에는 비취, 루비, 호박 등의 이름이 등장하고, <수상한 삼형제>(이하 <수삼>)에는 전과자, 김건강, 왕재수 등의 이름이 나온다. <보석>은 루비가 아바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아현동 마님>의 첫 장면이 생각났다.


임성한 작가의 <보석비빔밥>(위)과 문영남 작가의 <수상한 삼형제> 문화방송·한국방송 제공
임성한 작가의 <보석비빔밥>(위)과 문영남 작가의 <수상한 삼형제> 문화방송·한국방송 제공
임 작가는 <보석>에서 예전만큼의 극단적인 설정을 쓰지는 않지만 여전히 불편한 계급의식을 드라마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임 작가의 드라마에는 빈부에 따른 계급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부유하고 똑똑한 남자 주인공이 예쁘고 자존심이 센 서민 가정의 여자를 만나 그 여자를 자기 계급으로 편입시킨다. 남자 주인공 서영국은 명문가 자제인데 아버지가 서민생활을 체험해보라면서 1000만원을 주고 내보낸다. 마치 왕자가 잠행을 나온 것 같다. 부자가 서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연극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임 작가에게는 계급뿐 아니라 지식인에 대한 판타지도 있는 것 같다. <아현동 마님>에서 여자 주인공인 검사의 아버지가 딸을 극진히 모시는 모습이 그려졌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다르고, 또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이 다르다는 거다.

임 작가는 사람을 계급과 지식 등으로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중년층에 대한 묘사다. 서민 계급의 중년 남녀들은 늘 천박하게 그려진다. 가난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면에서 절박한 것을 인성이 천박한 것으로 쉽게 치환한다. <보석>에서 엄마인 피혜자는 아들이 부잣집 딸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예비 며느리에게 아파트를 해오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하며 자식들을 부끄럽게 한다. 카일이 라스베이거스 호텔 후계자라는 걸 알고 딸에게 결혼을 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부잣집 사람들을 희화화하는 것과는 다르다. 임 작가의 드라마에서 가난한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자존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서민이라는 개념 자체도 환상이다. 비취가 분식집을 여는데 이천쌀과 나물을 쓰는 8000원짜리 비빔밥을 판다. 또 이 식당에서 처음에 부대찌개를 팔겠다면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비취가 영국에게 싱겁다고 하면서 서민들은 짜게 먹는다는 대사를 한다. ‘계급=식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영국이 요리를 하면서 “이 요리의 레시피는”이라는 얘기를 하자 비취는 레시피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걸 보면 노동자 계층은 아닌 것 같다고 혼잣말을 한다. 레시피에 대한 설명이 자막으로 뜬다. 상류층과 서민층은 식성도 용어도 다르다는 믿음이 임 작가에게는 있다.

<보석>은 큰 이야기 줄기나 맥락 없이 에피소드가 쭉 이어지는 구성이다. 전체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진행되는 얘기가 많다.

임 작가는 임성한 월드를 만들어서 그 안에 나오는 인물을 마음대로 갖고 노는 걸 좋아한다. 개연성 없는 에피소드가 계속 이어지는 일이 많다. 이런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갑자기 귀신 얘기를 하거나 살림의 지혜, 요리하는 법 등 뜬금없는 에피소드로 10분 정도를 보내도 이상하지 않다. 차라리 30분짜리 일일드라마일 때는 호흡이 빠르니까 에피소드가 한 회로 소비되는데 한 시간짜리 드라마가 되면서 흐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임 작가는 일일드라마에 특화된 스타일인 것 같다.

폭력적이어도 가족이니까 이해해라?

<수삼>은 부부싸움이나 불륜에 초점을 맞춘 <조강지처클럽>보다 가족과 연애 이야기를 하는 <소문난 칠공주>에 가까운 드라마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전에 썼던 일일드라마 <바람은 불어도>가 생각난다. 첫째라서 대접받는 큰아들과 돈을 잘 버는 둘째, 이 둘을 바라보는 엄마, 시부모를 모시고 시집살이를 하는 둘째 며느리의 사연, 셋째 아들의 로맨스 등이 주 이야기 구조다.

<조강지처클럽>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가족 간의 갈등 구조는 비슷하다고 본다. 그 갈등을 극한으로 가져가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조강지처클럽>이었다면 <수삼>은 가족드라마의 틀에 남아 있다. <수삼>의 장점은 주부가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거다.

둘째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10년이나 모시고 산 것에 대해 시어머니에게 쏘아붙이고, 시어머니는 이에 한 치도 지지 않는다. 둘째 며느리를 통해서는 며느리 시청자들의 얘기를, 시어머니를 통해서는 시어머니 시청자들 얘기를 대신 해준다. 보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한풀이를 해준다.

문 작가의 드라마에서 가족 외의 이야기를 할 때를 보면 마치 다른 사람이 쓰는 것 같다. 가족 이야기는 현실적인데 로맨스는 판타지로 한다. 연하남과의 순정 코드도 또 나오고 가장 멀쩡하고 잘생기고 인격적으로 문제없는 남자가 마치 말괄량이를 길들이듯 센 여자와 로맨스를 이어간다. 판타지적인 대사를 보면 약간 지금 시대와 동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6회밖에 진행되지 않아서인지 문 작가의 장기가 잘 발휘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두 작가의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는 건 가족에 대한 태도다. 가족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이다. 가족관계의 폭력성을 드러내면서도 가족에 대한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 싶은 가족이 뭔지 잘 모르겠다.

혈연 중심의 가족인 것 같다. 징그러워도 혈연으로 엮였으니 어쩔 수 없다는 거다. <보석>에서 엄마 피혜자가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도 엄마로서 자식들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수삼>에서도 둘째 며느리 도우미와 엄마인 계솔이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내 딸이니까 부양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그 가족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에 주목하기보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쉽게 그 갈등을 봉합해버린다. 이걸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혈연의 원칙이 어떤 것보다 강하게 가족을 묶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장년 이상의 세대가 선호하고 공감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현실이었던 가족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아직도 이런 가족의 코드를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20~30대의 가족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

그랬던 그들도 변하고 있다. 김수현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엄마가 집을 나가는 장면에 공감하는 중·장년층이 많았다. 가족이 단지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결국 개인과 개인의 관계이고 그 관계의 연결이라는 걸 얘기했고 그게 호응을 받았다. 지금의 20~30대는 이런 드라마 속 가족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가족에 더 공감한다. <보석>이나 <수삼>은 이러한 변화를 담지 못하고 전작들의 서사만 반복한다.

여기서 시원했다

“<보석>에는 가족이지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얘기를 디테일을 살려 얘기하는 지점이 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양을 강요하는 부모에게 반발하는 부분 등이 그렇다. <수삼>은 심리를 다루는 대사가 좋다. 누구나 속에 있는 얘기를 마치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것처럼 시원하게 대사로 쏟아내는 게 대단하다.”(최지은)

“<보석>에서 영국과 비취가 분식집을 하면서 서로의 다른 점들을 사람 대 사람으로 배워나가는 부분이 나온다. 공감할 만한 지점이 있었다. <수삼>에서 딸을 찬 남자친구에게 아빠인 노주현이 쫓아가서 어떻게 내 딸을 찰 수 있느냐고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적 계급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가족을 보여줘서 좋았다.”(위근우)

이건 좀 아니지

“<보석>에서 꼭 고생한다고 잘되는 건 아니라면서 노숙자들은 술만 먹는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다. 노숙자라는 사람들에 대해 현상만 보고 전혀 그 사정이나 전후 이야기는 잘라내고 말을 막 하는 것은 반칙이다. <수삼>에서 셋째 아들 김이상과 그의 상대역 주어영을 친구들이 호텔방에 집어넣는다. 화끈하게 놀라는 뜻인 것 같은데 젊은 세대에 대해 위험한 오해와 판타지만 준다.”(위근우)

“<보석>에서 영국과 비취가 하는 분식집에 눈화장을 하고 블라우스를 입은 남자가 와서 영국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준다. <수삼>에서는 시어머니가 둘째 며느리에게 미안함 없이 노동력을 요구한다. 며느리의 반항에서 카타르시스를 준다고는 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은 보기 불편하다.”(최지은)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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