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을 당당하게 보고 고르느냐는 여전히 한국에서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홍대 근처 콘돔 전문매장 콘도매니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70년대 산아제한 정책으로 대접받던 콘돔, 저출산 시대에 슬그머니 뒷자리 물러나
70년대 산아제한 정책으로 대접받던 콘돔, 저출산 시대에 슬그머니 뒷자리 물러나
단 세 곳뿐인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세계 콘돔시장 1위를 차지한다. 유니더스·동국물산·한국라텍스가 그들이다. 95%를 수출한다. 한국인은 콘돔을 많이 만들지만 콘돔을 많이 쓰지는 않는다. 대신 콘돔만큼 많이 입양아를 ‘수출’한다.
유니더스의 회사 연혁은 그대로 한국 콘돔의 역사다. 콘돔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한국인은 완고하기도 하고 이중적이기도 하며 쉽사리 바뀌기도 하는 존재다.
대학은 콘돔을 싫어해
1973년. 창업주 김덕성 회장이 콘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콘돔제조업 허가번호 1번은 한국라텍스지만, 세 업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생산을 시작했다. 존재하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도 마케팅이지만, 없는 시장을 만들어내는 마케팅이 한 수 위다. 김덕성 회장은 10년 뒤를 내다볼 줄 아는 사업가였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 통념 때문에 콘돔은 금기시됐지만, 그는 서유럽의 역사에 비춰 곧 한국에서도 콘돔이 생활필수품으로 부상할 것이라 예상했다.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약국 아닌 곳에서도 팔 수 있게 콘돔 판매를 자유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게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성병예방과 가족계획사업이라는 명목”이라고 보건사회부는 취지를 밝혔다. 21세기 한국의 대학 가운데 콘돔자판기가 없는 곳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이미 1973년에 콘돔자판기가 처음 설치됐다. 10원짜리 동전 3개를 넣으면 콘돔 2개가 나왔다. 명분은 가족계획이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가족계획협회는 “이로써 성도덕이 문란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일부 여론도 있으나 많은 남성이 약국에서 낯을 붉혀가며 사야 했던 것을 손쉽게 살 수 있게 되어 가족계획 실천은 크게 오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콘돔 판매는 더뎠던 모양이다. 유니더스는 “(당시) 국내에서는 집창촌을 중심으로 처음 콘돔이 유통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추측했다.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니다. 공창제를 실시했던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에도 미군기지 주변 등 성매매 산업은 줄어들지 않았다. 1988년 정부 집계로 음식숙박업이 국민총생산의 5%를 넘었다.
2004년. 이해 12월 한 경북대 졸업생이 대학 안에 콘돔자판기를 설치하라는 1인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벌인 학생은 맥 빠지는 일이지만, 대학 안에서 콘돔 판매는 이미 오래전에 ‘허가’됐다. 의료기기법상 콘돔은 의료기구로 규정돼 있지만, 예외 규정을 만들어 판매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의약품정책과는 “콘돔판매에 대한 규제는 없다. 다른 의료기구는 판매업 신고를 해야 하지만 콘돔은 예외”라고 설명했다. 대학에 콘돔자판기를 만든다고 누구도 벌금을 물리거나 규제할 수 없다. 대학에 콘돔자판기가 없는 것은 각 대학 행정당국 책임이다.
2007년. 세계 피임기구 전문가들이 모여 콘돔의 크기와 강도 등 품질 기준을 정하는 물리적 피임기구 국제표준화 총회가 열렸다. 콘돔 디자인은 순수한 창조의 결과물이 아니다. 박수근의 그림이나 로댕의 조각과 다르다. 콘돔은 의료용품이므로 생산자가 마음대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콘돔이든 국제 규격에 맞추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콘돔 디자이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니더스의 경우 프로덕트 매니저가 제품의 모양·색상·향기 등과 관련해 구매자의 요구에 맞춰 제작한다. 콘돔 모양도 세계 기준에 맞춰 생산된 몰드(틀)에 따라 생산된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우둘투둘 도깨비방망이 같은 제품이 시선을 끌고 야광 콘돔이나 진동형 콘돔 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도 출시되어 있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일반형이다. 유니더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리고 2009년.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풍속의 역사>에서 절대불변의 도덕은 없으며 어떤 시대에는 도덕적인 것이 다른 시대에는 정반대로 취급받는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피임에 대한 정부 정책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1970~80년대 정부가 나서서 산아제한을 하던 때 콘돔과 피임은 찬양받았다. 이런 태도는 최근 슬그머니 바뀌었다.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에는 피임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렵다. 대신 복지부는 임신·출산·육아 포털인 ‘아기사랑’을 운영한다. 콘돔 보급·홍보 활동은 최근 몇 년간 진행한 적이 없다고 보건복지가족부 가족건강과는 밝혔다.
콘돔 광고는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콘돔 광고나 홍보를 쉽게 할 수 없다. 다른 제품보다 훨씬 까다롭다. 의료계 전문지 외에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 광고의 경우 다른 상품과 달리 방송통신위원회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말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사전심의를 받아야 한다. 의료기구이니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판매를 자유화한 취지와 지나치게 엄격한 광고 규제는 충돌한다. 비아그라 광고는 넘치는데 콘돔 광고는 찾기 어렵다.
정부 규제만큼 대중의 시선도 두렵다. 성이 생식의 수단이냐 쾌락의 대상이냐는 해묵은 갈등이 세대를 깊게 가른다. 한국 성매매 산업 규모는 거대하지만 성은 쾌락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오래된 말은 여전히 힘이 세다. 유니더스는 ‘롱 러브’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낭패를 봤다. 약한 마취제를 바른 콘돔으로 사정을 지연시켜주는 제품이었다. 딱히 광고를 한 건 아닌데 언론에서 ‘비아그라 콘돔’으로 소개해 비난을 받았다. 유니더스는 “콘돔 광고를 전혀 진행하지 않으며, 일부 언론 홍보를 진행하고 있으나 독일 디자이너를 고용해 만든 동물 시리즈 등 신제품이나 제품 특성과 관련된 홍보는 사실상 못 한다”고 밝혔다. 대학을 찾아다니며 동아리나 성평등상담소에서 주최하는 성교육 특강에 콘돔을 지원하는 정도다.
플라톤도 권했던 저출산?
근대적인 콘돔이 등장한 것은 1930년대이고 먹는 피임약이 만들어진 건 1960년대지만, 인류는 오래전부터 피임을 꿈꿔왔다. 각자 입장과 근거는 달랐지만 말이다. 가령 플라톤은 아이를 한 명 이상 낳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근 들어온 유니더스 해외영업부 신입사원 2명 중 1명이 여성이다. 세상은 또 바뀐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콘돔을 당당하게 보고 고르느냐는 여전히 한국에서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홍대 근처 콘돔 전문매장 콘도매니아. 에이피 연합
2007년 독일에서 열린 러브 퍼레이드 행사. 러브 퍼레이드는 올해 120만명 이상이 참가한 범유럽 규모의 테크노음악 축제다. 유니더스는 주최 측과 함께 에이즈 확산 방지 캠페인을 벌였다. 유니더스 제공
유니더스의 신제품 동물 시리즈. 실제로 콘돔이 동물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제품마다 두께와 겉모양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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