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100분 토론>(이하 <100분>) 10년의 시간 중 8년을 도맡았던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지난 1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하차했다. 문화방송 <일밤-오빠밴드> 폐지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던 신동엽은 신설된 에스비에스 신개념 퀴즈쇼 <신동엽의 300>(이하 <300>)을 통해 전공 분야로 돌아왔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가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확실하게 갖고 있는 두 명의 진행자, 신동엽과 손석희를 각각 <100분>과 <300>을 통해 들여다봤다.
토론 프로그램 진행의 묘미를 보여준 문화방송 ‘100분 토론’
허세 없고 신사적인 진행자 매력 돋보이는 에스비에스 ‘신동엽의 300’
정석희(이하 정) <100분>과 손석희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손석희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공정성이라고 얘기했다. 손석희가 <100분>을 진행하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차우진(이하 차) 지난주 마지막 방송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았다는 반농담을 하고, 유시민 전 장관도 서운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보니까 토론자들이 나와 발언을 할 때 누구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거나 누구에게 적은 시간을 준 적이 없었다. 끊을 때 끊고, 제지할 때 제지했다.
8년간 진행해온 <100분 토론>을 떠나는 손석희(위)와 신설 프로그램 <신동엽의 300> 진행자 신동엽. 문화방송·에스비에스 제공
11시10분 편성을 ‘꼭’ 부탁해
정 실제로 손석희가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거의 그런 점을 내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평정을 유지했다. 본인도 하차를 앞두고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8년 동안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라는 약속은 크게 어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손석희 전 진행자인 유시민 전 장관에게서는 흔들리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손석희는 그에 비해 토론을 이끄는 기본적인 태도를 꾸준히 가져갔다.
차 개인적으로 손석희에 대한 이미지는 강렬하다. 1990년쯤이었는데, 문화방송이 파업에 들어갔을 때 머리에 띠를 두르고 뉴스에 잠깐 스쳐 지나갔던 손석희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는 즐겨 봤던 <퀴즈 아카데미> 진행자가 저런 것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정 손석희가 예전에 아침 방송을 진행했던 적도 있다. 그때 유머도 있고 적정 선을 잘 지키면서 진행을 참 깔끔하게 잘했다. 아침 방송을 그만두고 뉴스 쪽으로 간다고 했을 때 무척 서운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손석희는 지금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차 <100분> 특집에 나온 패널들은 예상했던 인물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궁금했던 건데, 토론 양쪽 진영을 우파와 좌파라고 나눈다면 우파 진영에는 늘 적당한 토론자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데 왜일까.
정 아마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은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뭔가를 갖고 있는 사람은 토론에 나와 굳이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차 이 프로그램을 보면 어떤 게 좋은 토론인지 생각하게 된다.
정 지난주 방송에서 유시민 전 장관이 ‘집에 가서 생각해 보니 저쪽 말도 일리가 있더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좋은 토론’이라고 했다. 항상 전투적인 태도를 보여줬던 그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았다. 유시민을 포함해서 진중권이나 전원책, 전여옥 등은 절대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자신의 논리를 설득시키려고 온갖 말을 쏟아붓는다. 가끔은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문득 회의가 들 때도 있다. 노회찬 대표는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토론이 계속되어야 한다고는 했지만 시청자 편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는 얘기를 계속한다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
차 결론이 나야 한다는 것은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환상이 아닐까. 토론 문화를 얘기할 때 우리나라와 외국을 비교하는데, 미국 선거 때 토론 프로그램 등을 보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토론 때문에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건 아니다. 적나라한 얘기들이 토론에서 수용되면 정치평론이나 정치풍자도 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거기에서 배울 것들이 많을 거라고 본다.
정 <100분>은 늦은 편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프로그램에서 나온 발언이 화제가 되고 그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도 있다.
차 <100분>은 토론을 마치 예능 프로그램처럼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100분>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손석희 때문이지만, 이 프로그램 자체의 편집이나 구성, 화면에서도 좋은 시도를 많이 보여줬다. 그렇게 토론 프로그램에 트렌드라는 걸 만들어냈다. 세련됐다. 다른 방송사의 토론 프로그램이 왜 재미가 없는지 <100분>을 보면 알 수 있다.
정 시민논객 코너를 최초로 도입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손석희의 부탁처럼 11시10분 고정편성이 꼭 됐으면 좋겠다.
다른 방송사 토론 프로들도 보고 배우길
차 손석희가 떠나면 <100분>이 막을 내리는 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누가 오든 흔들리지 않는 프로그램이 된 것 같다. 손석희 역시 계속 자신이 떠나도 어떤 식으로 이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더라.
정 이번주부터 권재홍 기자가 진행한다는데 그의 진행방식이 궁금해진다. 요즘 게스트가 큰 비중을 차지한 예능 프로그램 트렌드와 전혀 다르고, 게다가 <선덕여왕>과 대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신동엽이 진행하는 <300>이다.
차 신동엽은 진행자 중에 유재석과 비슷한 과는 아니다. 재치있게 웃음을 주기보다는 전체 분위기를 조정하고 조율하면서 무게를 잡아주는 사람이다. 일반인 300명이 여러가지 질문에 답을 하고 도전자가 대답한 사람들의 수를 맞히는 <300>은 이러한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다.
정 일반인 300명과 평범한 연예인 패널과 함께 진행을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신동엽은 자연스럽게 잘해낸다. 연령층과 성별이 다양한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잘 아우른다. 영리하고 똑똑하다.
차 <일밤-오빠밴드>에서 신동엽이 참 좋았다. 열심히 하는 그 자체가 좋았다.
정 신동엽은 회사를 차리고 돈을 번다는 이미지가 생긴 다음 결국 그 이미지 때문에 대중과 멀어진 감이 있다. 그렇지만 신동엽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꼭 필요한 진행자다. 모두가 리얼 버라이어티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차 신동엽은 허세가 없고, 신사적이다. 사람의 말을 잘 듣고 그걸 재치있게 넘기는 방식이 세련됐다. 또 신동엽은 정장이 참 잘 어울린다. 거기에서 오는 신뢰감도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아닌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 모델이다.
차 <300>은 플랫폼을 만들어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사용하면서 퍼져나가는 인터넷 서비스 같다. 일반인 300명이라는 무게를 갖고 가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재미와 성공 여부는 이 사용자들에게 달려 있다.
정 <300>을 보면 남녀노소를 떠나 요즘 사람들이 참 말을 잘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마이크를 들이대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면서 잘 얘기한다. 뭔가 틀을 깬 것 같다.
차 이게 다 <100분> 덕분이다.(웃음) <300>은 질문이 참 재미있다. ‘외계인이 정말 있다고 생각하느냐’ 같은 술자리 농담 같은 실없지만 창의력이 있는 질문이 많다.
정 사소하지만 한번쯤 궁금했던 질문을 잘 뽑아낸다. <300> 첫 회 첫 질문이 ‘어디까지가 바람이라고 생각하느냐’였다. 대중적인 생각의 선을 찾아내는 눈치 같은 게 필요하다. <100분>은 ‘절대 내 생각은 못 바꾼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지만 <300>은 언제든 설득될 수 있다는 걸 깔고 간다. 방청객들이 도전자를 설득하는 일도 많다.
차 인터넷 게시판 등을 보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뻔해 보인다. 그렇지만 막상 사람들과 만나 물어보면서 조사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 그럴 거야’라고 짐작하는 세상이 아닌 진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얘기한다.
나도 자신있게 발언할 수 있을 거 같아
정 같이 수다를 떠는 것 같은 분위기가 좋다. 만약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나에게도 대답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꼭 참여할 것 같다. 게다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서 부담도 없다.
차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방청객이 ‘알바생’처럼 보이는데 이 프로그램은 그렇지 않다. 나 스스로가 저기 들어가도 될 것 같고, 한번 참가 신청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발언 기회를 주면 편하게 말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가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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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분 토론> 손석희의 기억할 만한 한마디
“‘엄기영 사장님 11시10분으로 고정 편성을 부탁드립니다.’ 가장 공감 갈 만한 얘기였다. 편성을 꼭 지켜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정석희)
“‘사회자라는 짐은 내려놓지만 머릿속 마음속에서 토론이라는 단어는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토론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그리고 학습하는 기본적인 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토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차우진)
■ <신동엽의 300> 재치만점 질문
“지난 월요일 미혼남녀 특집에서 ‘여자들의 공중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레버 사용법은?’이라는 질문이 있었다. 레버를 발로 누르는 여성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정석희)
“‘선물을 받으려고 이별을 미룬 적이 있다’는 질문이 재미있었다. 돌발질문 중에서 ‘지금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게 있었는데,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6명이나 있었다.”(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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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