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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간판 내리시죠

등록 2009-11-25 21:14수정 2009-11-26 14:23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지키고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지 않는 것은 맛집의 조건이 아니라 식당의 기본에 해당한다. 맛집으로 추천된 식당 가운데 위생 문제로 적발된 곳이 적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 위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없습니다.)
식재료의 유통기한을 지키고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지 않는 것은 맛집의 조건이 아니라 식당의 기본에 해당한다. 맛집으로 추천된 식당 가운데 위생 문제로 적발된 곳이 적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 위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없습니다.)
[매거진 esc]
음식 재사용·유통기한 무시 등 적발되고도 버젓이 추천받는 레스토랑들, 걸러낼 방법 없을까
※ 위 사진은 특정 기사와 관계없습니다.

조르조 아르마니 자켓에 구제 청바지를 믹스앤매치시킨 저 남자. 안에는 목이 늘어진 밋밋한 흰색 티셔츠를 입었다. 촌스럽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걸치지도 않았다. 요즘 남자 스타일의 꽃인 수염까지 잘 다듬었다. 멋지다. 따라하고 싶다. 그의 스타일을 찬찬히 뜯어보기 위해 다가간다. 5m…3m…1m…. 윽!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야? 이제 보니 머리에 왁스를 바른 게 아니라 떡진 거였잖아!

미슐랭 가이드 맛집 위생 문제로 발칵 뒤집혀

옷은 잘 입었지만 씻지 않아 몸에서 냄새가 나는 저 남자를 멋쟁이라 부를 수 있을까? ‘맛집’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맛있어도 식재료의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음식을 재사용하거나, 고기 등 식재료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한 식당을 ‘맛집’이라 하긴 어렵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내는 맛집’이라는 표현은 ‘뜨거운 얼음’이나 ‘맞고 다니는 추성훈’ 등의 말과 비슷하다. 모순 형용이다. 올해 영국에서도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주방장의 레스토랑 체인 가운데 한 곳이 형편없는 위생 점수를 받아 요식업계가 시끄러웠다. 유명한 요리사인 마이클 케인이 주방장으로 있는 레스토랑 한 곳이 캔터베리 시의회가 실시한 식당 점검에서 ‘열악한 수준의 식품 안전’을 뜻하는 별 한 개(다섯 개 만점)를 받았다. 이 사건은 심지어 전국 종합일간지 <텔레그래프>에도 보도됐다.

지난 11월12일치 < esc >에는 요리 블로거 3명이 요리사와 식당 주인에게 바라는 말이 실렸다. 공통으로 기본적인 위생을 지켜달라 부탁했다. 그래서 < esc >가 한국 ‘맛집’의 위생 수준을 살펴보기로 했다. 서울시의 민원처리 온라인공개시스템
(http://open.seoul.go.kr/open/open_list/opoohtm02_saeall.htm)에 나온 식당 행정처분 결과를 분석했다. 25개 구청에서 올해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관할 식당에 영업정지·과징금 결정을 내린 사례를 살폈다. 위반 사유 가운데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 사용, 남은 음식 재사용, 식재료 원산지 허위 표시 등 ‘기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세 가지만 추렸다. ‘맛집’의 기준이 주관적이라, 미식가·요리사 사이에서 비교적 많이 이용되는 <윙버스>
(http://r.wingbus.com/seoul/), <블루리본 서베이 서울의 레스토랑 2010>(클라이닉스) 두 곳에 소개된 식당을 살폈다. 이른바 ‘맛집’ 외에 먹거리 프랜차이즈, 특1·2급 호텔 식당을 함께 살폈다.

취재 결과는 ‘맛집의 배신’이라 할 만했다. 위 두 매체에 추천된 맛집 중에 적발된 식당이 네 곳이었다. 그중 두 곳은 두 매체에 동시에 추천됐다. 여러 언론에도 맛집으로 소개됐다. 돼지갈비로 유명한 서울 마포구 ㅈ식당은 남은 음식을 다시 사용하다 걸려 지난 9월 영업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식당은 영업정지 대신 과징금을 택해 1770만원을 납부하고 정상영업을 했다. 브루마스터가 직접 맥주를 담그는 것으로 유명한 ㅇ하우스맥줏집 종로 지점도 지난 7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보관하다 적발돼 영업정지 15일 처분을 받았다. 이 맥줏집도 실제로 영업을 정지하는 대신 과징금을 택해 1770만원을 내고 정상영업을 했다. 현지의 맛을 낸다는 평을 받으며 명동, 강남, 분당 등에 문을 연 고급 인도음식 레스토랑 ㅌ식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조리 목적으로 보관하다 적발돼 지난달 영업정지 15일 처분을 받았다. 이 식당도 과징금 1140만원을 내고 정상영업했다.

맛집·특급호텔 식당 위반 사례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위반 사유를 빼고는 식당 주인이 요청하면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바꿀 수 있다. 청소년에게 술을 팔거나 유흥접객부를 불러 접대시키는 등 중한 위반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영업정지를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마포구청은 밝혔다. 똑같이 영업정지 15일 처분을 받더라도 식당의 매출액이 크면 과징금을 더 많이 낸다.

미식가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쓰거나 남은 음식을 재사용하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징금만 내면 정상영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에게 적발 사실이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행정처분 결과를 서울시 민원처리 온라인공개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이 사이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구청 누리집에도 행정처분 결과가 공개되지만 실제로 검색해보니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전화로 문의하자 “식당 주인들의 타격이 커서 공개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는 구청 직원도 있었다.

특1·2급 호텔 식당과 음식 프랜차이즈 지점도 여럿 적발됐다. ㅍ호텔 식당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 목적으로 보관하다 걸려 지난 7월 영업정지 15일 처분을 받은 뒤 과징금 180만원을 냈다. ㅅ호텔 식당도 같은 이유로 적발돼 지난 9월 영업정지 8일 처분을 받고 대신 과징금 992만원을 냈다. 코스트코 양재점 푸드코트는 식용 얼음에서 대장균이 발견돼 적발됐고, 스타벅스 명동점은 세균이 기준치의 다섯배가 검출돼 적발됐으며, 토니로마스 명동점도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조리 목적으로 보관하다 걸렸다. 더 영세한 프랜차이즈의 지점도 많았다.

맛집 평가 매체에서 왜 ‘배신한 맛집’이 걸러지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윙버스와 블루리본 둘 다 맛집 선정에서 ‘집단지성’을 이용한다. 윙버스는 사용자들의 갑론을박을 통해 맛집을 선정한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땐 사용자는 ‘신고하기’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윙버스 편집부는 이를 참조한다. 블루리본도 1, 2차에 걸쳐 유·무료 온라인 회원들의 추천을 받은 뒤 미식가·음식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수십명의 ‘블루리본 기사단’이 리본 1개부터 3개까지 등급을 매긴다.

윙버스는 “구청의 행정처분 내용을 꾸준히 참고한다. 그러나 행정처분이 내려졌다고 바로 해당 맛집을 삭제하지는 않는다. 행정처분이 있었다는 것을 사용자들이 해당 맛집 평가에 남겨 유저들과 공유한 경우가 있다. 이런 신고를 바탕으로 맛집 등록을 취소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발된 식당에 대해 윙버스에 달린 댓글이나 평가글을 뒤져봤지만 구청에 적발됐다는 내용은 찾지 못했다. 블루리본도 위생 문제로 식당이 언론에 보도됐을 땐 바로 추천 맛집에서 삭제하지만, 자체적으로 모든 구청의 행정처분을 점검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노력은 엿보인다. 실제로 적발된 맛집 네 곳 중 두 곳은 <블루리본 서베이 2008년>에는 소개돼 있으나 2010년판에서는 빠졌다.

위생문제 행정처분, 말만 공개일 뿐

집단지성으로 출발한 이들 매체가 기댈 곳은 다시 집단지성밖에 없는 셈이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이달 홈페이지에 사용자들이 게임을 하면서 화성 사진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자료가 수십만장이나 돼 자체 인원으로는 분석할 수 없자 찾은 궁여지책이다. 과학 연구에 누리꾼의 도움을 받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이다. 배신한 맛집을 찾는 데도 크라우드 소싱이 가능할까?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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