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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분장하는 명랑교 교주

등록 2009-12-02 19:05수정 2009-12-06 14:22

습이를 살려내라, 2002.
습이를 살려내라, 2002.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직접 분장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연출사진으로 비틀린 현실 조롱하는 사진가 조습
학교 앞은 뿌옇다. 최루탄이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파파팍! 또 터진다. 하늘 높이 터진 최루탄은 새들의 운무처럼 하늘을 제 마음대로 휘젓다가 학생들의 머리에 칼처럼 꽂힌다. 목이 타들어간다. 숨이 멈출 것 같다. ‘제길 담배라도 한 모금 빨았으면.’ 또 터진다. 달린다. 까만 뿔테 안경이 떨어지든 말든. 학교 앞은 전쟁터다. 최루가루보다 더 높은 곳에서 외치는 핏빛 소리가 들린다. “쓰러졌어. 한열이가 쓰러졌어.” 1987년이었다.

2002년, 시청 앞은 붉다.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함성이다. 사람들은 숨죽인다. ‘꿀꺽’ 숨 넘어간다. “골인~~.” “와~~.”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춤춘다. 함성 위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습이가 쓰러졌다.” 조습은 광장에서 피 흘리고 쓰러졌다.

“습이가 쓰러졌다”

젊은 사진가 조습(34)의 작품 <습이를 살려내라>에는 피 흘리는 조습과 이한열 열사가 있다. 조습은 1987년 쓰러졌던 이한열 열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종의 패러디다.

이한열 열사가 독재 권력에 희생되었다면 조습은 누구 때문에 쓰러진 것일까? “공포였다. ‘대한민국’을 한목소리로 외치는 모습이 (광기로 비쳐질 만큼) 공포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물고문, 2005.
물고문, 2005.

옥상, 2007.
옥상, 2007.


그의 작품에는 이처럼 역사의 한순간이 뾰족하게 등장한다. <물고문>에는 박종철 열사가 있다. 담배를 꼬나물고 박종철(조습)의 머리채를 잡아끄는 남자들은 짐승처럼 보인다. 그 짐승들의 뒤에는 때를 벗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묘한 웃음을 짓게 하는 이 사진은 대중목욕탕에서 찍었다. 작가는 평범한 공간에서 옛날의 상처를 끄집어내는 재주가 있다. <5·16>은 5·16 군사반란을 재현했다. 바지를 반쯤 내린 군인은 조악한 노래방보다 더 지저분하고 역겹다. 사진 안의 주인공은 작가다. 작가는 분장을 한 채 조롱하고 비웃고 경멸한다.

역사 문제를 지금의 일상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그의 상상력은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들다.

이 작품들은 2005년 개인전 <묻지 마>에 등장한 사진들이다. 20여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작가 자신의 시선으로 재현했다.

올드보이, 2004.
올드보이, 2004.

한국전쟁, 2005.
한국전쟁, 2005.

진리가 너희를 질리게 하리라, 1999.
진리가 너희를 질리게 하리라, 1999.

그의 별명이 ‘포스트-민중미술가’인 것처럼 그는 역사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 관심을 담아내는 형식은 또래의 젊은 작가들처럼 현대적이다. 영화감독처럼 정교하게 연출하고 기획하고 연기한다. 특수 분장사, 헤어아티스트, 의상 담당자, 배우를 섭외하고 며칠간 연습한다. 연습의 완성도가 올라가면 딱 하루 대형카메라(4×5인치 필름카메라)를 설치하고 찰칵 누른다. 그의 사진 속 출연자가 2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분장에 대한 지시는 꼼꼼하다. “화상도 그냥 입은 것이 아니라 일주일 전에 입은 것”이어야 한다. 첫 작품을 발표했던 1999년에는 이처럼 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명랑교’를 만들고 교주가 되어 분장을 한 채 지하철이나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셀프포트레이트를 찍었다.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지나가는 곳을 사람들은 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뜻 연출사진으로 유명한 신디 셔먼처럼 보인다. 연출사진 형식은 작가의 의지와 생각을 잘 드러내는 방식 중의 하나다. 그런 이유로 많은 현대작가들은 이 방식을 선택한다. 신디 셔먼은 영화배우로 분장해서 그의 사진 속의 자신을 훔쳐보게 했고,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연출사진으로 과격하게 드러냈다. 조습도 “한국 사회에 대한 발언은 내 의무”라는 자신의 의지를 연출사진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관념적이지 않다. “연출사진의 바닥에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10.26, 2005.
10.26, 2005.

그는 쏟아낸다. 촛불집회,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등 거침없다.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고 할 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그런 소를 키우지 말자고” 촛불을 들어야 하고 “선진국이라고 떠들면서 미개국에서 벌어질 법한 일(용산참사)이 20년 전과 같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대학생활 내내 민중미술에 관심을 가졌고 졸업 뒤에도 ‘대안공간 풀’, ‘포럼 에이(A)’ 등에서 사회참여미술을 하는 “선배를 자주 만나 이야기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고민의 늪은 같았지만 이전의 민중미술과는 달랐다. 그는 조롱한다. “대상을 조롱하는 것은 대상의 이상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전공한 그가 사진가가 된 이유는 오로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에 갇힌 인간의 이중심리
사진가 조습.
사진가 조습.

그의 독특한 세상살이 시선은 문화관광부가 시상하는 ‘2005년 제13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경기도 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다.

요즘 그는 ‘컨테이너’ 시리즈를 찍고 있다. 촛불집회 때 등장한 ‘명박산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안에 인간의 이중심리도 녹여낼 생각이다. “작가는 죽을 때까지 한 가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란다. 형식은 바뀔지 몰라도 “자신의 소리”는 늘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제공 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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