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킬힐 신는 남자

등록 2009-12-16 19:37수정 2009-12-19 22:12

킬힐 신는 남자
킬힐 신는 남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키높이 구두에서 깔창, 에어 높인 운동화까지 남자들의 키높이 전쟁




바람이 매섭다. 돌체앤가바나 구두를 신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추위를 피하려 잠시 편의점에 들어간다. 따뜻한 캔커피를 하나 샀다. 잠시 뒤. 복면을 쓴 한 남자가 편의점에 나타난다. 현금을 주섬주섬 챙긴 강도는 정장 남성에게 다가간다. “가진 거 다 내놔” “예, 살려만 주세요” “음…구두도 벗어” “예? 제발 구두만은…” 돈 많아 보이는 저 남자는 목숨보다 구두가 중요한 걸까? 강도가 칼을 빼들었는데도 구두를 벗는 데 주저한다. 아무리 돌체앤가바나 구두라도 목숨 값에 비할 게 아니잖은가. 식은땀을 흘리던 남자가 결국 구두를 벗는다. 구두 속에서 툭, 무언가 떨어진다. 저건…키높이 깔창이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상상이다. 캐리는 빼앗긴 신용카드와 현금보다 마놀로 블라닉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저 남자를 망설이게 한 건 구두에 대한 사랑보다 키높이 깔창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여자의 욕망이 마놀로 블라닉이라면 남자의 욕망은 키높이 구두로 간다. 그건 남자가 욕망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남자들에게 욕망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쩌랴 점점 더 많은 남자들에게 키높이 구두는 ‘길티 플레저’가 되어 가는 것을. 키높이 구두·깔창을 사용하는 남자들의 사연을 은밀하게 전한다. 키높이 제품 사용 때 주의할 점은 물론 키높이 제품을 거부하는 남자들을 위한 스타일 조언도 모았다.

하이힐의 고통에 동참한다

⊙ 걷기 좋아하는 남자의 아픔을 아느냐 | 평소 외모에 관심이 없었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에서 외모가 가지는 힘을 알아 가면서 ‘드러내놓고’ 외모에 신경을 쓰진 못하더라도 몇 가지는 아예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 와중에 마련한 게 바로 지난겨울 생일날 산 키높이 구두다. 그전엔 살 생각이 없었다. 신던 구두가 오래돼 그저 ‘구두를 사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최근 캐주얼화가 많이 출시돼 선택의 폭이 상당히 넓었다.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난 지나치게(?) 넓은 선택의 폭 사이에서 짜증마저 느꼈다. 구두마다 굽이 다르다는 걸 알곤 생각 끝에 ‘그럼 한번 키높이 구두를 신어볼까’ 하고 결론 내린 거다.

겉보기에는 평범했다. 예전에 친구들 모임 때 키높이 구두가 화제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화제를 꺼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도 정작 내가 키높이 구두를 신은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다. 남자 신발이기 때문에 여자 구두처럼 힐이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바깥쪽에 보이는 굽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신발을 벗어 보면 특수 깔창이 있어 높이가 엄청나다. 달리 말하면 키높이 구두라기보다 ‘키높이 깔창에 디자인을 맞춘 구두’라 부르는 게 정확하리라.

키높이 깔창과 또 다른 게 뒷부분에만 깔창이 있지 않고 전반적으로 깔창이 높으며 발 끝부분에 이르면 장난이 아니라는 점이다. 굽에 깔창을 더하면 6~7㎝쯤 될 것 같다. 그동안 신어왔던 구두는 2~3㎝ 정도였기 때문에 수치로만 보면 4~5㎝ 차이지만 신어 보면 정말 다르다. 사실 키높이 구두만 신으면 키가 커진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걸 신다 키높이 굽이 없는 평범한(!) 구두를 신으면 갑작스레 키가 작아짐을 느꼈다. 또다른 점은 계단. (올라갈 때 말고) 계단을 내려오다 보면 구두 굽 때문에 확실히 높아졌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키높이 구두는 ‘벗었을 때’ 존재를 드러낸다. 신을 땐 모르는데, 방에 들어와 신발을 벗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동안 무척 발이 불편하다. 체중이 발에 골고루 실리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걷는 걸 무척 즐겨서 바깥에서 모임 약속이 있을 땐 한참을 걷는다. 친구들이 “멀다, 버스 타자”고 말할 때도 난 “그 정도 거리는 그냥 걸어” 하고 지청구를 준다. 걸으면서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나는 좋다. 거리의 공기와 산뜻한 바람을 느끼는 것도 좋다. 땅을 밟는 감촉을 나는 사랑한다. 그런데 키높이 구두를 신고 걷다 잠시 쉬거나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을 때면 발의 피곤함이 차원이 다르다. (체중이 발에 골고루 실리지 않기 때문일까?)


그래, 좀더 예뻐 보이려고, 멋져 보이려고 하는데 아무 희생이 없을 수는 없겠지. 이 정도의 피곤함이야 당연한 것일 테지…. (그래도 피곤한 건 피곤하다;;) 나는 그전부터 주위 여자들이 킬힐이나 굽 높은 신발 신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물론 내가 안 좋아한다고 그녀들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 키높이 구두를 신다 보니 불편함을 확실히 느낀다. 뭐든 경험해 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비로소 그동안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 알겠다.(26·대학원생·이글루스 블로거 dooheever)

양말 속에 넣을 걸 그랬어

⊙ 신발만 안 벗으면 되는데 | 키가 165㎝인데, 키높이 구두에 깔창까지 두둑하게 깔아 거의 20㎝에 육박하는 키를 덤으로 얻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들(여자인 친구들 말입니다^^)에게 “나 키 얼마일 거 같아?”라고 물으면 “175? 180?”이란 대답을 듣고 뿌듯했습니다. 물론 고민은 있었습니다. 항상 여자친구들을 만나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식당 등을 교묘히 피해 다녀야 했죠. 신발 벗는 상황만 피한다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여느 때처럼 여자친구들과 만났습니다. 노래방에 가서 놀자고 의기투합했죠. ‘노래방은 신발 벗지 않고 들어가는 곳이니까’라고 생각해 안심하고 저도 “고! 고!”를 외쳤습니다. 술이 불콰하게 취해 한 건물 앞에 섰습니다. 분명 간판은 노래방이었는데 뭔가 느낌이 심상찮았습니다.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복도 인테리어부터 독특하더군요. 계단을 올라가 방문을 열자 노래방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인테리어와 시설을 새롭게(!) 한 노래방이었죠. 욕조 앞에 노래방 기계가 있는가 하면 저희 방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였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면서 말입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저 삼십분 동안 일어서지 않으려고 노래를 빼고 뺐습니다. 그것도 한계가 있더군요. 결국, 마이크를 잡고 일어섰습니다.(앉아서 불렀어야 하는데!) 전주가 끝나기도 전에 함께 있던 아리따운 동생들이 일제히 묻더군요. “오빠 키가 몇 ㎝예요?” 그전에 왜 그냥 당당하게 “나 키높이 신는다”고 밝히지 못했을까요? 그날 저녁 노래방에서 제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끝까지 제대로 부르긴 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23·회사원)

키높이 구두 고를 때 주의할 점

⊙ 굽에 익숙해지라 | 키높이 구두가 익숙하지 않은 남성에게 깔창이 조금만 높아도 여성의 ‘킬힐’ 같은 효과를 낸다. 1~2㎝의 굽으로 몸을 높이에 먼저 적응시킨다.

⊙ 깔창을 깔기 좋은 구두는 따로 있다 | 깔창을 넣으면 신발 내부 공간이 좁아지므로 공간을 조절할 수 있는 레이스업(끈 있는) 구두가 좋다. 또 충격을 흡수하고 안정된 착화감을 제공하는 구두여야 한다. 깔창으로 몸에 무리가 올 수 있으므로 딱딱한 일반 구두보다 편안한 착화감을 주는 구두가 적합하다.

⊙ 재질도 중요하다 | 일부 저가 키높이 깔창은 기능성 제품과 달리 충격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 깔창이 가볍고 충격 흡수력이 뛰어난지 살펴야 한다. 발냄새를 피하려면 통기성도 우수해야 한다. 락포트, 금강제화, 마에스트로 등 여러 남성화 브랜드에서 기능성 깔창(패드)을 판매한다.

도움말 락포트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