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내요, 그게 더 독한 거예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동료에게 도둑맞아 억울한데…
참신한 아이디어를 동료에게 도둑맞아 억울한데…
Q 회사에서 뒤통수 제대로 맞았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부랴부랴 보고를 위해 기획서를 작성했답니다. 그런데 상사에게 보고하기 전에 제3자의 의견을 좀 받고 싶어 한 동료에게 보여줬는데, 그 동료가 몇 가지 내용만 싹 바꾸더니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상사에게 선수 쳐서 기획서를 제출해버렸습니다. 그는 좋은 기획이라고 회의 때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았죠. 그 사실을 알고 저는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바로 동료를 만나 따지고 싶었지만 평소에는 사이도 괜찮았던 동료라 일단은 제가 열을 좀 식혔죠. 그럼 뭐합니까. 제가 열불 억누르고 쿨하게 얘기했건만, 그의 해명인즉슨, 자신도 본래 저와 똑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신 너무 바빠 시간이 부족해서 보고할 겨를이 없었으며 도리어 제가 그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해서 먼저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네요. 사과를 받으려다가 더 어처구니없어졌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다그치니 그는 묵묵부답 저를 회피합니다.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상사한테 보고해서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하나요? 평소에도 너무 남을 잘 믿는 제 성격이 회사생활에선 되레 문제였던 걸까요? 저도 독하게 이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걸까요.
A 아이디어를 빼앗아간 것이 분한 것도 있겠지만 ‘나의 재능에 대한 인정의 기회’를 빼앗아간 것이 더 분하고 원통한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이건 내 오리지널 아이디어!’라는 명확한 증거를 첨부해서 상사한테 들이밀고 ‘본래 이건 제 기획이고요. 쟤가 훔쳐간 겁니다’라고 한들, 이것이 정의구현이 될지 한낱 고자질이 될지는 상사가 평소 이 두 사람을 어떻게 지켜봐 왔느냐에 따라 전후 사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과가 뭐가 되었든 당장은 속이 후련할지 모르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내 주변의 에브리바디, 뒷맛이 떨떠름한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 이 아이디어는 너의 것 맞네’로 판정승 났다 해도 이게 묘하게 꼬여버리면 상사는 정의로운 고발자(?)에 대해 조금 미심쩍게 거리를 둘지도 모르겠고, 다른 동료로부터 ‘독한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문제의 ‘그 동료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되레 자기가 당했다 생각하고 지금부터 열심히 칼을 갈기 시작할 수도! 또 한 번 언제 등에 꽂을지는 글쎄요. 당하기는 내가 당했는데 진짜 억울하죠?
헌데 한 발 뒤에서 봤을 때, 그 아이디어라는 거, 이 먹구름의 가능성을 다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개인적으로 개발했는데 그것을 누가 빼돌려 선수 쳐서 특허라도 낸다면 사력을 다해 권리를 되찾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회사라는 공적 영역.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게, 기발한 아이디어나 잘 만들어진 기획서는, 엄밀히 말해 직원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직원들의 회사업무 관련 지적 자산은 월급을 지급하는 그 회사가 모두 소유하는 것이지요. ‘나의’ 아이디어나 기획서가 아닌 궁극적으론 ‘우리 회사의’ 아이디어나 기획서라고 보는 시각이 맞습니다. 또한, 회의 때 공개적으로 칭찬받았다 한들, 하나의 기획이나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완벽하지가 못하고 제대로 상품으로 개발되어 이윤을 남기기 전에는 별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이윤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까지는 한 사람의 탁월한 재능이 아닌 여러 사람의 참여와 노력을 통해 보완과 변형과 숙성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죠.
고로 ‘누가 누가 잘하나’보다 ‘우리의’ 비즈니스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인배 애티튜드를 이참에 고려해주십시오. 아이디어의 기안을 누가 했든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조직의 여러 사람이 함께 투입되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더 흥분되는 일입니다. 그 동료의(나의?) 기획서를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더 멋진 아이디어는 어디 없나요? 제 요지는, 이번 건은 그냥 흘려보내라는 겁니다. 그것이 독하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거나 공을 가로채서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하는 파렴치한들을 정면으로, 혹은 상사를 통해 공격해서 현실적으로 얻어갈 수 있는 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향후의 행동에는 변화가 있어야 이번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겠지요. 애초에 저 동료에게 사전검열을 받으려고 한 것도 자신 없고 불안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요? 향후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이번 경험 때문에 더 방어적으로 숨기고 있어야 할까요. 천만에요. 그 반대로 아이디어 공유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 되어야 합니다. 상사들과 관련 담당자들에게 당신의 생각을 알리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 헤퍼지십시오. 회의건, 단체 메일이건, 가장 유효한 타이밍을 골라잡아 그 보고 내용에 걸맞은 적절한 형식을 채택해서 시원~하게 터트리십시오. 별 반응이 없다 해도, 실없는 녀석이라는 소리 들을까 봐, 무능하다고 욕먹을까 봐, 그런 사전 우려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반응에도 뻔뻔할 줄 알아야 존재감 있는 직원이 됩니다. 아이디어에 대한 오너십이 별겁니까. 씨를 내가 먼저 뿌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물 주고 키우도록 공개적으로 유인하고 그 모습을 상사에게 잘 보여주는 것이 영역표시죠. 기획력과 추진력에 동그라미. 또 활발한 소통 전개했다고 친화력과 팀워크 능력에 추가 동그라미. ‘어둠의 세력들’과 질퍽하게 상대하지 맙시다. 밝게, 맑게, 자신 있게!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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