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집착, 그거 있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사수 때문에 정떨어진 직장! 확 때려치우고 꿈꾸던 일 할까요 말까요
사수 때문에 정떨어진 직장! 확 때려치우고 꿈꾸던 일 할까요 말까요
Q 직장 3년차 남자입니다. 재미있게 다니던 회사였지만 8개월 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후부터 고민이 많습니다. 그 부서는 제가 원하던 곳이었지만 실제 생활은 겉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사수와 성격이 맞지 않아 힘이 듭니다.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사수 밑에서 제 스스로 어떤 걸 해볼 만한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밑에서 일하는 동안 악몽을 꾸기도 하고 위장병이 생긴 적도 여러 번입니다. 사실 회사에서 주는 연봉은 만족스럽지만 과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회사의 상사, 과장, 부장님들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앞으로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꿈꾸던 요리사가 되고 싶어 여러 곳을 알아봤습니다. 외국에 요리유학을 가려고 돈도 모았고 어학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해도 괜찮을지, 현재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떠나는 게 옳은지. 잘못돼서 이도 저도 안 되고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습니다. 유학 가려면 모아놓은 돈도 다 투자해야 하고, 시간도 걸리며 더불어 제가 쌓아온 학력, 경력은 제로가 됩니다. 실제로 요리사가 된다고 해도 또 생각과는 많이 다를 텐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사실 집에 말하면 난리가 날 텐데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떠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남들처럼 좀 참으면서 사는 게 나을까요? A ‘원래 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하던 일 때려치우기’ 에이케이에이(aka·올소 논 애즈·~라고도 알려진) ‘꿈 대 현실 논쟁’은 저도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를 가지는 주제입니다. ‘뭘로 먹고사는 사람인가’는 한 사람의 존재양식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사안이기도 해서지만 저 역시 ‘때려치운’ 경험을 거쳤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전부터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쓴 글을 많이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무조건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현실도피 아니냐?’ ‘장단점 대조표를 만들어 논리적으로 접근해라’ ‘잠시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라’ 등 저마다 조언들은 제각각.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더군요. 바로 그들의 개인적 성공 경험이 투영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질러서’ 잘된 경우라면 ‘너도 질러봐라, 해볼 만하다’ 이러고 있고, 헛된 욕망임을 알아차려 십년 감수한 경우라면 ‘안 하는 것도 선택이다’라고 짚어주기도 합니다. 뭐가 맞는지는 결국 결과가 많은 것을 말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결정은 ‘개인에 있어서의’ 진리였던 셈이죠. 성공이 아닌 고군분투 중인 처지이지만 저 역시 개인적 경험을 투영한 한 말씀 드립니다. 당신의 그 문제는 신문의 인생상담 코너에 조언을 구할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꿈을 좇는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남들에겐 드러나기 힘든 ‘마음’의 영역입니다. 마음의 사그라지지 않는 간절한 열망, 그것을 꿈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그 어떤 잘난 이가 귀에 대고 설교를 하든 간에 난 이걸 꼭 하고 싶어, 하고야 말겠어, ‘먹고사니즘’ 따윈 난 몰라, 같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감정입니다. ‘요새 같은 팍팍한 세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드는 건 무모하잖아요’라는 신중한 검토는 끼어들기가 사실 힘듭니다. 장단점 대차대조표를 짜서 숫자 많은 쪽을 택하거나 주변의 현자 스무 명한테 물어봐서 과반수의 의견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결정은 오로지 그 열망을 품은 자가 조용하게 고독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변인들의 얘기는 솔직히 아무런 참고가 될 수 없습니다. “꿈이야” “아냐 현실이야”라고 확신에 차서 짚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신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들 개인의 과거를 돌이켜본 감상주의적 잘난 척일 뿐이니깐요. 사실 재능의 싹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 이전에 마음속 열망을 행동으로 옮기게 해줄 의지력이 있는지 그게 가장 중요하고 또 궁금합니다. 꿈을 이루게 하는 것이 뭘까요? 저는 솔직히 ‘집요한 집착’ 이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뭔가에 집착을 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민감해지죠.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의 기사만 보더라도 속에서 울컥 질투심이 일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내가 가려는 길을 이미 경험했던 이들과 조금이라도 접점을 가지며 온갖 정보를 얻으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손을 써보기도 합니다. 사실 꿈이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몰입하는 ‘사랑’의 감정인 거죠.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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