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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에게 ‘도시락 폭탄’ 투척해볼까

등록 2010-03-24 22:35수정 2010-03-27 18:22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장어덮밥 도시락.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장어덮밥 도시락.
[매거진 esc] 예쁘고 맛있고 센스있는 사랑의 폭탄을 특별제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요리를 가사일 중에선 제일 괜찮게 생각해요. 집안일이라는 것이 요리를 빼면 모두 원위치시키는 노동이잖아요. 유일하게 최초와 달리 새로운 무엇이 나오는 건 요리밖에 없어요. 제일 싫어하는 일은 다림질이죠.”(<씨네21> 2009년 6월 707호 ‘김혜리가 만난 사람’)

밥 위의 그 계란프라이 기억나니?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때 하루에 도시락을 5개씩 싸던 지인의 어머니도 이 의견에 동의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는 “도시락은 일방적인 헌신”이라고 표현했다. 무상급식이 지방선거의 이슈로 등장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한다.

학교급식이 전면적으로 실시된 것은 1999년이다. 그 이전에 초·중·고교에 다녔던 사람은 모두 도시락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 갖고 있다. 89~97년 고등학교에 다녔던 남녀 취재원 9명에게 ‘가장 기억 남는 도시락 또는 도시락 반찬과 기억에 남는 이유’를 문자로 물었다. 답변은 다양했다.

“밥 위에 올린 노란 치즈. 이유는 보온밥통 밥 위에 녹은 것이 점심때 먹으면 딱 맞으니까.”(33·회사원)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쌈밥 도시락.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쌈밥 도시락.

“초등학교 1학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까먹은 도시락 맛을 잊을 수 없다. 대청댐 근처 충북 청원군 소재 ○○국민학교에 1978년 입학하였다. 점심 전에 하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도시락을 싸 갈 일이 없었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내일은 작업(시대적으로 1978년은 새마을운동의 종착역 즈음 되던 시기였다)이 있을 테니 도시락을 싸 와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님께 말씀드려 이튿날 태어나 처음으로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등교했다. 정규 수업은 없었고 대신 8살배기의 어설픈 노동을 나라에 바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왔다. 보자기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밥 위에 살포시 놓여 있는 계란프라이. 프라이 주변 밥알도 노랗게 물들어서 더욱 맛나 보였다. 반찬으로는 콩자반과 김치를 싸주셨다. (나름) 고된 ‘사역’ 후에 먹어보는 달콤한 밥 한술의 맛이란…. 초등학교 1학년 때 100% 남아 있는 유일한 미각의 기억이다.”(38·호텔 홍보담당)


“상추쌈. 오전 내내 침 흘렸음. 영화 <얄개> 시리즈에 고추장 된장 반찬 나온 것을 따라한 반찬.”(33·회사원)

“원통형 도시락통 처음 들고 간 날 먹은 시래깃국. ‘세상 좋아졌다’고 감탄함.”(33·회사원)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과일 도시락.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과일 도시락.

조리법 넘어 색감과 질감의 조합까지 관심

“고3 때 먹은 곰탕 도시락. 수능날 탈 나면 안 된다며 100일 전부터 똑같은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검은쌀밥, 곰탕, 오징어무침, 계란조림이 반찬이었답니다. 그때는 그게 지겨웠는데 아플 때는 그 반찬 그 곰탕이 생각나네요!”(29·외식업체 홍보담당)

“중딩 2학년 때 처음으로 싸 간 스팸구이.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맨날 허접한 반찬 싸온다고 쿠사리 먹다 추석 선물로 들어온 스팸세트 덕분에 삽시간에 급우들의 사랑을 받았다. 허나 “무식하게 스팸에 계란옷 입히는 경우가 어딨느냐”는 교수 아들 녀석의 갈굼에 어머니 얼굴이 오버랩되며 분노가 치솟아 주먹다짐으로 치달았다. 결국, 쌍코피 터지고 담임선생님께 귀싸대기 100회 강타당함.”(33·회사원)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쌈밥 도시락.
김재민 요리사가 만든 도시락. 쌈밥 도시락.

1980년대 초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레스토랑 누이누이의 박찬일 주방장은 돼지껍질을 잊을 수 없다. 어머니가 고기반찬 싸줄 형편이 안 돼 아이디어(?)를 냈다. 돼지껍질을 고추장에 볶아 도시락에 넣었다. 그 기묘한 고기(?)에 같은 반 아이들이 흥미를 보였다. 박찬일 주방장은 부끄러워 ‘고래고기’라고 둘러댔다. 이 시절 도시락은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헌신이었다. 어린아이들은 반찬이 얼마나 비싼지로 헌신의 크기를 재곤 했다. 똑같은 헌신과 사랑을 재려는 철없는 행동은 가끔 상처가 됐다.

학교급식 시대의 도시락은 헌신보다 놀이다. 초·중·고교생이 아닌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싼다. 이들에게 도시락 싸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놀이다. 김재민 요리사(31·사진)의 요리교실을 듣는 수강생들이 그렇다. 김재민 요리사는 음식연구기관에서 5년 동안 한식을 연구하고 지금은 음식 관련 경영학석사(엠비에이)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살도 안 찌고 맛있지만 보기에도 좋은 음식을 선호한다. 튀기는 요리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강생은 대부분 20~25살 대학생이다. 김재민 요리사는 대학 시절 미술을 공부해 음식의 미감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 수강생들은 맛뿐 아니라 색과 질감의 조화에도 민감하다. 조리법은 서투른데 색감과 질감의 조합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도시락을 받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구나’라고 느끼는 것이다.

‘돌려주기’ 부담 안기는 밀폐용기는 금물

김재민 요리사.
김재민 요리사.

김재민 요리사는 도시락과 관련해 몇 가지 노하우를 귀띔했다. 흔히 쓰는 밀폐용기는 금물이다. “돌려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의 없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보다 깔끔한 피크닉용 일회용기, 친환경 제품을 이용하거나 돈을 조금 더 들여 나무재질 우드박스 도시락을 쓰면 좋다. 예쁜 색의 유산지(물에 젖지 않는 식품 포장지)도 깔고 머핀컵, 미니 케이크 틀, 미니 잼 병 등을 이용해 장식한다. 20대의 수강생들에게 도시락은 맛과 영양뿐 아니라 ‘센스’를 담은 요리이기 때문이다. 대학 방학 기간인 7~8월과 12~2월엔 외국에서 혼자 산 경험이 많아 요리에 관심 많은 유학생이 수강한다. 3~6월과 9~11월엔 남자친구와 여자친구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수업을 듣는다. “‘도시락 대성공이에요’라고 문자 하는 아이들을 보며, 요리는 역시 상대편이 맛있게 먹고 기뻐하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고 새삼 생각한다”고 김재민 요리사는 말했다. ‘요리를 만든다’는 행위와 ‘포장해 준다’는 두 가지 행위가 결합한 도시락은, 사랑의 가장 강력한 신호다. 무상급식은 나라가 아이들에게 주는 도시락이다. 나라가 주는 도시락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도시락이든, 사랑을 주는 일은 기쁜 일인 것 같다.

야무진 가슴, 귀여운 주먹

김재민 요리사가 전하는 대표 도시락 조리법 2제.(수강신청 xpander 129@hotmail.com)

◎ 매운 고추장 닭 꼬치

재료 : 닭 가슴살, 대파, 양파, 미림 1큰술, 소금, 후추 약간, (양념)고추장 4큰술, 케찹 1큰술, 꿀 1큰술, 설탕 ½큰술, 다진 마늘 ½큰술.

조리법 : 1. 닭은 한입 크기로 자르고 미림과 소금, 후추를 넣고 버무려놓는다. 2. 대파와 양파는 닭 크기에 맞춰 잘라 놓는다. 3. 닭과 대파, 양파를 꼬치에 꽂는다. 4. 닭 꼬치를 그릴에 먼저 앞뒤로 3분씩 익힌다. 5. 구운 닭 꼬치에 양념을 바르고 3~5분 구운 다음 꺼내서 뒤집어 양념을 바르고 3~5분 정도 구워낸다.

◎ 새우 한치 주먹밥

재료 : 초밥용 새우, 한치, 밥 1공기, 단촛물(식초 1큰술, 설탕 ½큰술, 소금 약간), 우엉, 단무지, 해초, 깨소금.

조리법 : 1. 우엉, 단무지, 해초는 잘게 다지고, 한치는 한입 크기로 잘라 칼집을 내 놓는다. 2. 고슬하게 지은 밥에 단촛물, 다진 우엉, 단무지, 해초, 깨소금을 넣고 섞은 다음 동그랗게 주먹밥을 만든다. 3. 초밥용 새우와 칼집 낸 한치로 주먹밥을 싼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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