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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강타한 복수는 나의 힘

등록 2010-09-01 19:56수정 2010-09-04 15:14

2010년을 강타한 복수는 나의 힘
2010년을 강타한 복수는 나의 힘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청춘의 덫>의 심은하부터 <악마를 보았다>의 이병헌까지 복수의 계보도
바야흐로 복수의 계절이다. 티브이를 켜면 티브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자신을 버린 그 사람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극장에 가면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해친 이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복수는 집요하고 독하게 진행되지만 복수의 과정에서 또다른 이들이 희생되고 결국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는다.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복수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은 그 어느 해보다 복수가 풍년이다.

한겨레 〈esc〉 팀이 자체 조사한 결과 올 8월까지 방영됐거나 방영중인 드라마 50편 중에 복수를 전면에 내세웠거나 복수의 코드를 사용한 드라마는 <나쁜 남자>, <황금물고기>, <자이언트>, <제빵왕 김탁구>, <구미호: 여우누이뎐>, <분홍립스틱>,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검사 프린세스>, <추노> 등 13편이 넘는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다. <하녀>와 <이끼>, <파괴된 사나이>, <아저씨> 등 올해 대표작들에 이어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로 복수극의 정점을 찍었다.

최근 국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가장 돋보이는 열쇳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복수극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가 최근 10년 동안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 중 복수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인물을 골라봤다. 이들 각자의 복수를 따라가며 복수극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자.

“당신 부숴버릴 거야.”

1999년 에스비에스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윤희(심은하)가 동우(이종원)를 향해 내뱉은 이 말은 2000년대 복수 드라마의 전주곡이다. 자신을 버린 동우의 결혼을 방해하려고 동우가 만나는 영주의 오빠 영국과 결혼하는 윤희의 복수극은 사실 동우의 몰락이라기보다 윤희의 위기 극복기에 가깝다. 윤희가 수도 없이 다짐했던 복수는 진심으로 영국을 사랑하게 되면서 누그러지고, 제목처럼 ‘청춘의 덫’일 뿐인 복수의 덧없음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점 찍거나 성형수술해 유혹하는 복수가 대세

“복수, 너나 잘하세요” 불친절한 금자씨
“복수, 너나 잘하세요” 불친절한 금자씨

2000년대 들어 드라마 속 ‘윤희’들은 <청춘의 덫>의 순둥이 윤희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상대를 유혹함에 있어 머뭇거림이 없고, 목표로 설정한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배우며, 무엇보다 복수의 꿈을 넓고 크게 갖는다. 2002년 매일 저녁 시청자를 놀라게 했던 <인어아가씨>의 은아리영(장서희)이 대표적이다. 아리영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아버지가 재혼해 낳은 딸의 약혼자를 유혹해 결혼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드럼 연주에 살사 댄스, 국선도까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복수우먼’은 아리영이다. 은아리영은 결혼으로 복수에 성공한 듯하나 복수의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죄책감 때문에 해피엔딩에 이르지 못한다.

이후 엇비슷한 복수만을 반복하던 드라마계에 ‘복수의 화신’인 장서희가 구은재라는 이름으로 재림한다. 2009년 <아내의 유혹>(이하 <아내>)의 여주인공 구은재는 바람이 나 자신을 죽이려 한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다른 여자로 변신해 남편을 유혹한다는, 황당하면서도 신선한 방법으로 복수에 나선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말 그대로 점이다. 구은재는 눈 밑에 점을 찍고, 아리영이 그랬듯 춤과 그림, 수영 등 여러 기술을 익혀 민소희로 변신해 전남편을 완벽하게 속인다. 은재의 복수는 ‘막장도 이 정도면 예술’이라는 평을 들으며 많은 시청자를 티브이 앞으로 끌어들였다.

<아내>가 종영한 지 5개월 만에 속편 <천사의 유혹>(이하 <천사>)이 전파를 탔다. <천사>는 <아내>의 업그레이드 판. 여자 주인공 대신 남자 주인공이 전면에 나선 점과 점을 찍는 정도가 아니라 ‘페이스 오프’ 식 성형수술을 통해 다른 얼굴로 변신해 자신을 버린 상대를 유혹해 복수한다는 점은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차별화된 점은 ‘복수의 시즌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는 것. <아내>에서 진짜 민소희가 돌아와 구은재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중반 이후에 다뤘다면, <천사>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는 주아란(이소연)의 복수가 초반에 등장했고, 중반으로 가면서 주아란에게 복수하는 신현우(한상진·배수빈)의 얘기가 중반 이후 극을 이끌었다.

지난달 종영한 <나쁜 남자>에는 <천사>에 이어 복수를 위해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심건욱(김남길). 자신을 버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계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재벌가에 복수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다다익선’, 재벌가의 딸 둘을 동시에 유혹하기다. 건욱은 자신을 사랑하게 된 유부녀 태라(오연수)와 모네(정소민) 자매를 이용해 뼈아픈 복수를 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복수에 희생되고 만다.

방영중인 일일드라마 <황금물고기>는 여러 복수극의 장점만을 골라 만들어낸 드라마다. 먼저 시즌제 복수극으로 초반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수양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사랑했던 여자 지민(조윤희)을 버리고 그 집안을 몰락에 이르게 한 태영(이태곤)의 복수를 보여주고, 그다음에는 태영에 대한 지민의 복수가 이어진다. 아직 30여회를 남겨두고 있어 태영과 결혼한 현진(소유진)의 복수가 3연타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자극적인 유혹과 결혼의 설정 역시 남다르다. 지민은 태영에게 복수하려고 23살 연상인 태영의 장인과 결혼한다. 복수를 위해 그 남자의 장모가 돼 상대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지민의 복수극을 보면서 설핏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병헌, ‘국가대표 복수 아이콘’에 도전

영화는 드라마보다 더 넓고 깊게 복수를 얘기한다. 곡절 많은 인생을 사는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사회 속에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복수의 단면을 담아내는 게 영화 속 복수의 특징이다. 한국 영화의 대표적 복수극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있다. 2002년 개봉한 <복수는 나의 것>은 어눌한 남녀가 여자아이를 자칭 ‘착한 납치’로 유괴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가 사고로 죽고, 아이 아버지 동진(송강호)은 복수의 바다로 뛰어든다.

<올드보이>(2003)는 오대수(최민식)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 때문에 자살에 이른 누나에 대한 복수로 그를 15년 동안 감금한 이우진(유지태)의 복수극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이우진에 대한 오대수의 복수극이다. <친절한 금자씨>(2005)는 참 오랫동안, 성실하게 복수를 해내가는 금자(이영애)의 얘기다. 유괴살인범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1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금자는 출소 이후 말 그대로 ‘피의 복수’를 해낸다. 복수의 시작점에 대한 의문과 복수의 끝에 대한 회의를 던지는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동진과 오대수, 금자는 한국 영화에서 누구보다 강렬한 복수의 아이콘으로 각인됐다.

여기에 또 한명의 인물이 ‘국가대표 복수의 아이콘’에 도전장을 던졌다. <악마를 보았다>의 김수현(이병헌)이다. 약혼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에 대한 지독한 복수극인 이 영화에서 수현은 지금까지의 인물들과는 다르게 경철을 잡았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하면서 뼛속 깊은 곳까지 복수의 칼을 들이댄다. “황폐해진 복수의 판타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지운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과도한 폭력성으로 인해 ‘복수의 막장’이라는 평까지 듣고 있지만, 그래도 폐허 그 자체인 복수의 끝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고 선명하게 보여준 수현이 한동안 ‘복수의 아이콘’ 왕좌를 차지하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명품 복수극도 있다

〈부활〉의 유강혁(엄태웅).
〈부활〉의 유강혁(엄태웅).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해가 다르게 말초적인 복수를 감행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치밀하고 진지하게 복수의 계단을 밟아간 이들도 있다. 명품 복수극이라는 평을 받은 김지우 작가의 <부활>(2005)과 <마왕>(2007), 또 <개와 늑대의 시간>(2007)이 그렇다.

세 편의 드라마에서 이들이 선택한 복수의 방법은 ‘위장’. <부활>에서는 경찰인 유강혁(엄태웅·사진)이 아버지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하려고 자신 대신 죽은 쌍둥이 동생 유신혁으로 살면서 누구에게도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천천히 복수의 화살을 당긴다. <마왕>의 태성(주지훈)은 형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 오승하라는 인물로 살아가며 변호사가 되어 이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는 정보국 요원 이수현(이준기)이 폭력조직의 일원으로 위장해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친다. 세 편의 명품 복수극은 치밀한 복수의 과정뿐 아니라 복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제공 에스비에스, 문화방송, <한겨레> 자료 사진·표지 디자인 이정희 기자 bb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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