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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다!”

등록 2010-10-21 14:04수정 2011-03-31 14:46

카이스트 오준호(56·기계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오준호(56·기계공학과) 교수
[매거진 esc] 판타스틱 덕후 백서
자, 한번 상상해보자. 어느 날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조금씩 사라진다①. 해가 사라진 자리엔 ‘다이아몬드 반지②’ 같은 빛이 번쩍이다 돌연 어둠이 밀려온다. 주변 하늘은 초저녁 땅거미가 지듯 검푸르러지며 별들도 보인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다는 ‘개기일식③’의 순간은 이와 비슷하다. 지구에서 보는 달과 태양의 겉보기 크기가 같기 때문에 개기일식이 가능하다. 지구인만이 볼 수 있는 ‘신의 선물’인 셈이다. 한 지역에선 100년에 한두번 정도 볼 수 있고 지속시간은 길어야 7분. 이론상 그렇다는 이야기니 실제론 1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날씨운이 안 따르면 볼 수도 없다.

개기일식의 짧은 순간을 쫓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 ‘휴보’의 개발자 카이스트 오준호(56·기계공학과) 교수도 “세상엔 개기일식을 본 사람과 못 본 사람 두 종류가 있다”고 외치는 개기일식 덕후다. 그의 열띤 설명은 가수 아웃사이더의 ‘속사포 랩’ 못잖다. “음, 뭐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 아주 극적이야. 실제로 본 천문현상 중에 가장 감격스러워요. 직접 보는 사람들은 뭐 까무러치지. 흥분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해요.” 오 교수는 지금까지 여덟번의 개기일식 여행을 떠났다. 그의 좌충우돌 체험담을 들여다보자.

제1장 꿈이더냐 생시더냐

카이스트 휴보랩 옥상에는 오 교수가 직접 만든 특별한 공간이 있다. 사다리를 두번 기어올라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엔 컴퓨터와 망원경이 놓여 있다. 손으로 천장을 밀어젖히니 머리 위로 하늘이 펼쳐진다. 여기서 그는 별을 본다. 오 교수는 초등학생 때부터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단다. 왜? 구할 수가 없었으니까. 렌즈를 가져다 종이로 둘둘 말아 달 분화구도 관찰하곤 했다. 호기심 많았던 ‘꼬마박사’에게 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신기한 것이었다.

‘달나라 여행’처럼 개기일식도 책에서만 보던 현상이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던 1980년대 후반, 그는 우연히 멕시코 라파스 지역에서 개기일식이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직접 볼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국외여행 자유화가 되기 전이라 절차도 복잡했고 비용도 어마어마해 포기하고 만다. 그러다 10여년 뒤인 1999년 터키에서 처음 개기일식을 봤다. “아~ 그렇게 극적일지 몰랐지. 45초간 이어졌는데 어~ 하니 끝나. 보긴 뭘 봤는데 기억이 안 나요. 이미지만 남아. 깜깜해지니까 당황해가지고 카메라 스위치 찾고 하다가 끝나버린 거야. 꿈인지 생시인지.”


2008년 오준호 교수가 중국 신장지역에서 직접 촬영한 개기일식 장면.
2008년 오준호 교수가 중국 신장지역에서 직접 촬영한 개기일식 장면.
오 교수는 특별한 개기일식 사진과 영상을 찍고 싶어한다. 휴보 기술을 활용해 망원경 등을 직접 만들고 업그레이드시켜 왔다. 무게가 50~60㎏에 이르는 장비들을 바리바리 지고 다니다 보니 매번 공항 세관검색에 걸린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관광은 제쳐두고 시야가 탁 트여 일식 전 과정을 관측할 수 있는 ‘목 좋은 자리’를 찾아 헤맨다. 일식 6시간 전부터 그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장비 설치에 돌입한다. 허기를 느낄 틈도 없다. 그게 그렇게 ‘무지하게’ 재밌단다. 비용은 일반 단체여행의 두 배 정도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개기일식 패키지 상품이 많지만, 국내엔 수요가 없어서 대부분 여행사가 일정을 마련해주면 돈을 더 내고 가는 식이다.


제2장 홀로 반성문 쓴 사연은

2001년에 천체사진작가 김상구씨와 아프리카 잠비아로 두번째 개기일식 여행을 떠났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36시간이 걸렸지만 체류기간은 단 3일이었다. 어리바리했던 첫 관측의 기억을 되새기면서 무척 ‘용의주도’한 준비를 했다. “일식 전 과정을 초 단위로 분할한 다음 예상 시나리오를 적어서 미리 제 목소리로 중계방송 녹음을 했어요. 일식 일어나면 할 일 많으니 중계방송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 하려고. 뭐 이런 대사도 있었어요.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쌍안경을 들고 하늘 한번 쳐다본다. 하나, 둘, 셋 주위를 둘러보고 별을 한번 관측하고….’” 아!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여러 장비를 활용해 전경부터 동영상 촬영까지 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절대 욕심내지 말자’며 반성문도 썼건만, 그게 마음처럼 안 된단다.

모든 개기일식을 다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특별히 2004년 오스트레일리아 일식을 놓친 건 두고두고 아쉽다. 작고한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가 함께 가자고 몇 번이나 연락을 해왔지만 갈 수가 없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영국 방문에 맞춰 영국에서 휴보 기술을 시연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조 박사가 경비행기를 빌려 타고 구름 위에서 일몰 때의 개기일식을 봤다는 거야. 그게 정말 장관이었다고 하더라고.”


제3장 2035년까지 힘닿는 대로

날씨운이 따르던 오 교수도 ‘허탕’을 친 적이 있다. 지난해 실험실 식구까지 데리고 중국 상하이로 갔지만 개기일식날 비가 쏟아졌다. “근데 뭐, 낚시 갔다 고기 못 잡을 수도 있는 거예요. 최후의 순간에 볼 수도 있는 거고, 준비하는 과정이 더 좋아요.” 그에게 이런 ‘재미’는 삶의 큰 활력이다. 실은 휴보도 재미로 만든 거다. “처음엔 발표할 생각도 없었다니깐. 취미 때가 좋았는데 돈 받으니까 부담스러워. 허허.”

그는 2007년 터키 안탈리아 여행 이후 올해 2월까지 6개월마다 개기일식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직도 개기일식을 ‘제대로’ 못 봤고 또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은 거란다. “이제 힘들어서 장비 지고는 못 가겠어요. 마음에 담아오는 게 좋은데. 앞으론 기계를 가볍게 해서 품위있게 다니려고.” 원래 별 볼 일 없는 ‘순수한’ 사람들이 별 보러 다닌다며, 별 보기를 권하는 오 교수는 2035년 평양 개기일식 때까지 힘닿는 대로 일식을 쫓을 생각이다. 2035년에도 어디에선가 관측 채비를 하고 있을까. “아~ 그땐 우리나라에 개기일식 일어난다고 언론에서 난리가 날 거야. 일식 한 20번 봤다며 인터뷰하고 있을 것 같은데.”

대전=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esc’는 지난해 100호 특집 기획으로 ‘덕후왕 선발대회’ 사연 공모전을 연 바 있습니다.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오타쿠’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였지요. 갖가지 좌충우돌 사연이 쏟아졌던 공모전을 확대해, ‘오타쿠들의 개성 넘치는 취미생활’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즐거움도 서로 나누다 보면 몇 배로 커지지 않을까요. 재야에 묻혀 있는 명랑 덕후들에 대한 제보(saram@hani.co.kr)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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