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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탓 말고 이름값이나 하셔!”

등록 2010-11-11 11:04수정 2010-11-14 10:25

지난 8일 안국동에서 역술원을 운영하는 이철용 전 의원(오른쪽)이 <esc> 박현정 기자에게 성명학의 원리와 좋은 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8일 안국동에서 역술원을 운영하는 이철용 전 의원(오른쪽)이 박현정 기자에게 성명학의 원리와 좋은 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개명 고민하던 박현정 기자, 역술인 된 이철용 전 의원을 만나다
“그래, 자네 생년월일이랑 시가 언제라고?”

“19××년 11월20일 새벽 5시 반에 태어났습니다.”

“아이구, 올해 악삼재가 세게 들어왔네. 이름은?”

“헉, 정말요?! (이름 한자 알려주며) 괜찮나요?”

“이름이 상당히 고약해~. 어디 가면 100% 바꾸라고 할걸.”

이럴 줄 알았다. 일은 실타래처럼 엉켜만 가고, 황홀한 로맨스는 남의 이야기가 된 까닭이 분명 있었던 게다. 이번 참에 평범한데다 흔하기까지 한 이름을 바꿔야 하나. 지적인 느낌의 ‘지’나 ‘서’, 어딘가 아련해 보이는 ‘연’이나 ‘빈’ 자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런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에 앉은 역술인은 쿨하게 한마디 한다. “에이, 뭐 이름 안 바꿔도 돼. 사는 데 지장 없어.”


이름을 잘못 지었다면서도 바꾸지 말라는 역술인이라니! 그는 서울 안국동 역술원 ‘통’(通) 주인장 이철용(62)씨다. 결핵성 관절염으로 어린 시절부터 걸음걸이가 불편했던 그는 거리를 떠돌다 빈민운동에 뛰어들었고 <꼬방동네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88년 사상 첫 장애인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후 세번이나 낙선의 고배도 마셨다.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는 장애인 문화사업을 하면서 4년 전부터 안국동에 터를 잡고 사주풀이를 하고 있다. 30여년 전부터 역리를 공부해온 그에게 힘들다고 호소하는 이들을 일대일로 만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는 건 빈민운동의 일환이다.

그를 찾는 손님 중엔 ‘되는 일이 없다’며 새 이름을 지어달라는 이들도 더러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성명학은 종류도 다양하고 내용도 복잡하다. 그에게 성명학이란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철용 전 의원
이철용 전 의원
“사주는 태어난 연월일시고 여기에 기둥 주(柱)자를 붙여 4개 기둥 있다는 게 사주. 기둥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품은 두 글자씩을 넣어 팔자라고 해. 이게 사주팔자고 음양오행이야. 쉽게 말하면 음·양은 밤에 태어났느냐, 낮에 태어났느냐를 따지는 것이고 오행은 목·화·토·금·수성 다섯개 별 중 어떤 기운을 더 받고 덜 받았느냐를 따지는 것이지. 사주에서 필요한 기운을 뜻하는 용신(用神)이 뭔지 사주를 풀어서 알아낸 다음 필요한 기운에 맞춰 이름을 짓는 거야. 옛날 세종대왕이 음양오행을 다 고려해 한글을 만들었어. 예를 들어 ㄱ·ㅋ은 목(木), ㄴ·ㄷ·ㄹ은 화(火) 기운을 나타내. 이렇게 한글을 다섯가지로 분류하는 걸 발음오행이라고 해. 또 획수오행(한자 획수를 다섯가지로 분류)·자운오행(한자 뜻을 다섯가지로 분류), 성이 음이면 이름 중 하나는 양이어야 하는 등 전체적인 음양오행까지 4개 퍼즐이 맞아떨어지면 좋은 이름이야. 그런데 우리나라가 세계화되긴 세계화된 모양이야. 요샌 알파벳에도 음양오행을 따진다니까. (웃음) 아무튼 사주를 볼 줄 알아야 이름이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어. 그런데 성명학도 여러가지야. 발음 중시하는 사람·획수 중시하는 사람…. 네 이름은 발음오행에 안 맞고 자운오행은 더더욱이나 안 맞아.”

아니, 근데 왜 이름을 바꾸지 말라고 하시는 거죠? “기자 됐잖아. 그러면 이름 나쁘다고 할 수 없어. 부모님이 지어준 거야? 그렇다면 바꿀 필요 없어. 부모가 자식 망하라고 이름 지어줬겠어? 거기에 음양오행 따지는 건 의미가 없어. 이름 탓 말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 ‘값’ 하고 살면 잘 사는 거야. 우리 둘째 아들은 문익환 목사가 지어줬어. 음양오행에는 안 맞지만 개명 안 해줘. 왜? 훌륭하게 되라는 의미로 훌륭하신 분에게 지어달라고 한 거니까. 그래도 잘 살잖아. 장가만 아직 못 갔지. 이명박도 김대중도 발음오행에 안 맞지만 대통령 됐잖아. 성명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름 바꾸면 플라세보(가짜약) 효과나 기분전환 정도는 되긴 하지. 다만 노숙자, 여인숙같이 놀림감 되고 어감 안 좋은 이름은 바꾸는 게 좋아.”

그럼 개명은 안 봐주시나요? “뭐, 글쎄 굳이 이름 지어달라고 하면 지어주지만 개명하라는 주의가 아니야. 요새는 사람들이 돈 잘 벌고 성공하는 이름 지으려고 해. 그런데 돈만 아는 사람한테 ‘만석꾼’ 이름 지으면 되겠어? 베푸는 쪽으로 지어야지. 그래서 사람 보고 지어줘. 그런데 열에 아홉은 돌려보내. 이 시대에는 멘토가 없잖아. 누구한테 가서 의지하고 자기 이야기 할 데가 없어. 개명하려는 사람들이 여기 왜 오겠어? 일이 안 풀리고 절망중인 사람들이 많지. 이런 사람들이 어디서 ‘이름 나쁘다’고 한마디 들으면 그냥 개명을 고민하는 거야. 그 사람들한테 발음오행 안 맞아도 이름이 좋다고 이야기해주면 기분 좋아져서 가요.”

“이름 탓 말고 이름값이나 하셔!”
“이름 탓 말고 이름값이나 하셔!”

삼재도 들어왔다 하시고, 이름도 안 좋다는데 나쁜 일을 피할 방도가 없나요? “비 온다는 일기예보 들으면 우산 들고 나가는 것처럼 사주는 나쁜 것 피해 가자는 관리학이야. 절대로 운명학이 아니야. 사주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몸이라면 색깔·이름·가정환경·학력·사회환경 등 다섯가지는 입고 살아가는 옷이야. 이건희랑 사주가 같은 사람이 남·북 합쳐 60명 정도 있어. 그런데 이건희가 북한에서 태어났으면 부자가 안 됐겠지. 요새는 사주가 별로여도 부모가 부자면 부자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운명은 고정된 게 아니라 움직여. 이름도 숙명이 아니야. 어질 ‘현’ 자 쓴다고 만날 어질기만 하나. 그러다간 어지럽지.(웃음) 명예욕·탐욕 이런 걸 팍 놔야지 참 나를 찾을 수 있고,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 거야. 다 놓고 참 나를 찾으려면 아무 생각 없이 매일 1시간 걸으면 돼.”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부모만큼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부모가 고민해서 지어준 게 제일 좋아. 가장 큰 축복이지. 시원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시원’이라고 지으면 그게 좋은 거야. 이름도 유행이 있는데 드라마 주인공 같은 예쁜 이름들을 원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난해. 이름도 좀 강인하게 지어줘야 하는데…. 낳고 나면 애기 성격이 좀 보이잖아. 그걸 보고 한글 이름 지어도 좋고, 옥편 보고 좋은 한자 골라서 지어도 좋고. 정 꺼림칙하면 음양오행 원리대로 지어. 사주를 아는 사람, 용신(用神) 잡을 줄 아는 사람이 이름을 지어야 해. 용신은 10년 이상 공부하고 데이터도 5천건 이상 봐야 겨우 잡혀. 다른 데서 이름 받아서 검증하려고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마다 용신 잡는 법이 천차만별이야. 정답이 없어.”

귀가 습자지처럼 얇아서일까. 팔자 고민일랑 잊고 일단은 걷기 위해 역술원 문을 나섰다. 이름 고약하단 소리를 들은 것치곤 발걸음도 가볍다. 물론 안국동에서 멀어지고 해가 저물수록 “이름을 목 기운이 있는 한자로 바꿔주기만 하면 돼”라는 말이 더 또렷해졌지만. 역술원에서 만난 한 중년 손님은 ‘위로가 되는’ 경험담을 하나 들려주었다. “내가 아는 분은 아들내미 이름을 아주아주 유명한 작명가한테 지었어요. 아니 근데 집안이 쫄딱 망했네. 그래서 아들 이름을 지은 양반한테 다시 찾아갔대요. 그리고 아들 이름을 보여줬더니 그 작명가가 ‘어떤 놈이 이름 이렇게 잘못 지었느냐’고 되묻더라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데요.”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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