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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시상식 ‘대본’은 가라!

등록 2010-12-02 13:40수정 2010-12-08 15:48

박철민
박철민
[매거진 esc] ‘개념 소감’으로 올해 영화상 빛낸 박철민·서영희 인터뷰
영화상 시상식엔 이런 장면 꼭! 있다. 연기파 배우들도 상을 주러 나오면 꼭 어색한 연기를 한다. 간혹 모니터 화면을 무시하고 나 홀로 후보작을 읊는다. 유명 가수의 무대에도 배우들은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생방송 시간에 쫓겨 수상소감이 짧아지기도 한다. “제가 상 받을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고…”라는 말은 매번 재방송이다. 식후 공정성 논란도 해마다 반복.

올해 대종상·대한민국영화대상·청룡영화상 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기 발랄한 ‘시상소감’과 가슴 뭉클한 ‘수상소감’으로 지루할 뻔한 영화상을 빛낸 두 배우가 있다. 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조연상 시상자 박철민은 웃음을 남겼고, 여우주연상 수상자 서영희는 감동을 남겼다. 올해 마지막 영화상, 청룡영화상이 열렸던 지난 26일 이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박철민|상 주면서 상 받은 기분, 내년에 한 번 더?

스태프 모든 분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저는 숟가락만 들고 이렇게 나왔습니다. 아무튼 이 상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해서 앞으로 감독상, 작품상 시상하는 배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집에 계시는 연로하신 우리 어머님 아버님, 많이 헛갈리실 겁니다. 뭐 시상이나 수상이나 비슷합니다. 트로피 주고받는 것. 언제 탈지 모르는데 마음껏 기뻐하시길 바랍니다.(중략) 자, 남우조연상 후보를 만나보겠습니다.


영화 <시라노;연애조작단>에서 “애드리브 치는 사람이 제일 싫어”란 애드리브를 친 배우 박철민은 애드리브의 달인이다. 주옥같은 그의 애드리브는 역설적이게도 대사가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한 덕에 얻은 ‘별책부록’이다. 장안의 화제를 모은 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조연상 ‘시상소감’도 수없이 상상했을 수상소감이 준 ‘별책부록’이었다. 시상을 하다 실신할 뻔 했다는, 때로는 둘이 합쳐도 ‘마이너스’가 되는 공동수상도 있다는 그와의 쫄깃한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다. (박철민 특유의 억양을 상상하며 읽으면 재미 두 배!)

-시상소감이 화제가 됐더라

“이렇게 화제가 될지 몰랐고.(웃음) 좀 진지하고 무겁고 엄숙하고 그런 시상식 분위기가 우리 같은 동업자 입장에서는 왠지 닭살돋고 어색하더라고. 그래서 늘 나는 수상하더라도 즐겁게 신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어. 사실 <화려한 휴가>로 대종상·대한민국영화대상·청룡상 등 그랜드슬램 남우조연상 후보됐었어.”

-다 못타셨잖나?

“아 그러니까. (폭소) 그때 또 다양하게 준비해놓았던 수상소감들을 좀 짜깁기했지.”

-아 그때 수상 못해서 아쉬워했단 기사 봤다

“아쉽지 그럼. 억울하고 아쉽고. 아 세 군데 올라갔으면 한번은 줘도 되는데 말야.(웃음) 2008년 <스카우트>로 대한민국영화대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갔을 땐 탈 줄 알았어. 예선전에서 2등을 했대요. 1위가 모 배우였는데. 시상식장에 그분이 안왔어. 긴장해서 소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끄러지고.”

-그럼 영화와 관련된 상은 한번도 못받았나?

“영화로 딱 하나 받았지. 대중들이 주는 맥스무비영화상이라고. 2년전 <화려한 휴가>로 받았지. 거~의 완벽하게 압도적으로~후보가 한 사람인것 같은 느낌으로!(폭소)”

-시상경험은 이번이 처음인가.

“2008년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한번 했지. 그때도 ‘아빠 지금 시상하고 있다. 수상이 아니다. 흥분하지 마라’ 뭐 이런 식으로. 그때 못했던 거 한맺힌 이야기 집대성해가지고 이번에 했어.”

-얼마나 준비한 소감인가?

“시상식에 가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시상소감을 할 때가 역설적이고 내 한도 풀고 할 것 같더라고요. 언제 상 탈지도 모르고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마침 또 혼자 시상을 했어요. 누구랑 호흡 맞춰서 시상소감하기는 어~색하잖아. 시상식 전날 어떤 말을 할까 쭉 정리를 했어. 사실 시상식에 갈지 말지 고민했어요. 안가려고 했어. 영화를 안한것도 아닌데. <시라노>로 후보 올라가도 되거든.(웃음) 한창 영화<위험한 상견례> 찍고 있는데 피디랑 관계자들이 가서 영화 홍보도 좀 하라고 하더라고. 그게 실은 이번 시상소감의 가장 큰 목적이었지. 그런데 가장 추접스럽고 어색한 것이 배우들이 나와서 ‘요즘 뭐 찍고 있냐, 언제 개봉하냐’ 어색한 홍보들 하잖아. 그게 효과도 없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이 자리에 온 건 스태프 여러분의 공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작품 홍보도 되고. 그 다음엔 ‘이 시상에 만족하지 않고 감독상 시상하는 배우’ 이런 말도 넣고…. 가만 있어봐 어머니 아버지 언급도 한번 할까. 노인네니까 헷갈려하실것 같으니까 말씀을 드리고 딸내미들도 한번 찾자. 이렇게 큰 틀을 잡아놨지. 처음에 한두마디 하고 재미없으면 끝내고 상 주자 싶었어. 아 근데 ‘외모로 승부하는’ 거기서부터 빵~빵~터지길래 끝까지 갔어. 원래 내 콘티는 ‘감사합니다’ 하고 상받은 것처럼 무대 뒤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퍼포먼스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날 매니저가 너무나 작은 옷을 가져왔나봐. 옷이 터져버릴 것 같고 목도 꽉 쪼이고. 무대 뒤에서 20분 기다리는데 약간 답답하고 막 그러더라고. 그런데 시상소감을 하고 있는데 머리가 빙빙 도는거야. 너무 어지러워서 뒤로 가는 거 생략하고. 후보 소개할때 잠깐 앉아 있었어. 그러고 나서 친한 의사한테 전화해봤더니 경동맥 조이면 실신할 수도 있다구. 아~큰일날 뻔 했어. 수상소감하다 실신하면 아름답잖아. 행복하고 벅차고…. 그런데 시상소감 하면서 실신하면 정말 오버지 오버.”

-어쨌건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드라마 <뉴하트> 엽기적인 키스신 이후 처음으로 검색어 1위를 했어. 잘 했네, 내가. 한 역할을 했네 싶어. 영화상이 우리들의 축제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참여하는 축제잖아요. 가장 좋은 것은 지인들이나 시청자들이 대부분 내가 수상한 줄 알어. 특히 식당에서 시상식 본 사람들은 전화와서 ‘축하한다. 드디어 니가 받았구나’ 그래. 처음에는 ‘시상이여. 정신차리고 다시보기 해보라’고 했어. 그런데 너무 많이 축하해주니까 ‘그래 열심히 할게. 고맙다 니 덕이다’ 했지. 그냥 상 탄 걸로 가버렸어. 내년에 한번 더할까. 남한테 상 주면서 내가 상 받은 기쁨도 누리고 아주 그냥 1석2조구먼. 우후죽순으로 하면 안 되고 1년에 한 번 정도 시상하면서 상 탄 것처럼 행세해야 겠다 싶기도 하고.”

-진짜 수상소감은 뭐라고 하고 싶은가.

“드라마로 상 탈 때 한번 했지. 우리 아내한테 고맙다고. 이번 시상소감이 가짜지만 부모님한테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야.”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주로 큐시트 보고 읽더라.

“대본을 받았는데 천편일률적인 것으로 적어놨더라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내 걸로 해버렸어. ‘신인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뭐 이런 건데 왜 돌아가고 싶어? 한창 사랑받고 신나게 하고 있는데. 써준거 그대로 읽기도 하고 그런데 (생각한 대로 한 것이) 훨씬 더 영화상에 공헌할 수 있겠다 싶었어.”

-늘 영화상 수상 결과에 말들이 많더라. 신뢰를 받는 상도 없는 것 같고.

“큰 상 3개가 비슷하게 공존하고. 그런 비판이 이야기되긴 하는데. 절대적인 신뢰를 확보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어요. 대중 선호로만 가기도 그렇잖아. 영화적 문법 아주 잘 쓴 작품에 상 주자니 많이들 안봤던 영화면 대중들 비판이 생기기도 하고. 그거 다 아우르는 심사가 쉽지는 않죠. 오늘 (청룡영화상) 후보 대부분이 행사장에 나왔네. 2~3년 전에는 상 타는 사람들만 귀뜸받고 가는 식이었는데, 후배들이 나와있으니까 보기 좋더라고.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영화상도 대중들이 기다리는 축제가 되지 않을까.“

-어떤 배우는 영화상 뒤풀이가 재밌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심재명 대표랑 그런 이야기 했는데, 옛날엔 뒤풀이가 재밌었대요. 주머니가 얇으니까 다들 한 잔 하고 싶어하고. 상금 많이 탄 제작사가 큰 술판을 연대요. 그러면 다른 팀들이 어떻게든 그 술자리를 물어서들 온대. 신나게 술먹고 축하해주고 정보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그런데 요즘은 그런게 줄어들어 아쉽다고 하시더라고. 감독상·작품상 탄 팀들은 옛날처럼 쏘고 서로들 다 아니까 실컫 술 먹는 것으로 축하해줬으면 좋겠어요.”

-배우에게 상은 무슨 의미인가?

“‘너 참 잘했다. 너가 흘린 땀이 의미 있었다’ 그런 인증이지. 특히나 우리는 남의 시선·박수·사랑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화려한 휴가> 촬영 때 안성기 선배님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가셨어. 선배님한테 ‘몇번씩 받았으니까 이제 무덤덤하시죠?’ 그랬더니 ‘아니야, 철민아. 떨리고, 받으면 너무 신나고 처음으로 수상 후보 된 배우 있어도 내가 받고 싶고’ 그렇게 말씀 하더라고.”

-공동수상에 대해선 비판 많아도 상을 받는 배우들 입장에선 다르겠다.

“아~그렇지. 후보 5명 중 4명한테 주더라도 그 속에 내가 들어갔으면 하지. 1명 타는 것보다도 4명 공동수상이라도 바라지. 난 안 받아도 되니 1명한테만 주라고 하진 않지. 뭐 <라디오스타> 같은 건 누구든 둘 중에 하나는 줘야 하는데 누가 타도 박수받을 수 있을 때 공동수상은 플러스가 되지. 이렇게 2가 3이 되는 공동수상이 있는 반면, 둘이 받아서 0.8이 되는 수상도 있지. 연말 방송국 시상은 둘이 받아서 2나 3보다는 0.8이 되서 좀 아쉬워.”

아무리 시상소감이 화제였다지만, 영화상에 대한 이야기만 하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엔 무언가 빠진 듯했다. 20여년간 배우 내공을 쌓아온 그에게 연기철학을 묻고 싶었다.

-같은 대사를 달라지는 상황에 따라 계속 연습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기자들이 웃던데. 7살 땐가 삼륜자동차 뒤에 올라타고 놀다가 갑자기 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뇌를 다쳐가지고.(폭소) 그 이후로 좀 맹해진것 같아. 그전에는 아주 총명했는데. 뭘 잘 못 외워요. 아는 영단어 50개도 안 넘어요.(웃음) 그러다보니 반복을 많이 해서 입에 붙어야 현장가서 편해. 또 연습 많이 하다 보니 대사를 다양하게 해보게 되요. 수식어 바꿔보고 형용사 바꿔보고 은유해 보고 어순 바꾸기도 하고. (명창) 임진택 선생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 20~30년간 판소리의 똑같은 사설을 계속 하다보면 자기 목소리나, 생각, 살아온 환경이 다 녹아들어서 그 사람만의 노래 길이 생긴다 이거여. 음계는 같으나 자기에 맞는 길이 생긴다고. 저는 그 말이 공감가요. 작품·캐릭터 생각하면서 대사 반복하다 보면 캐릭터에 맞는 대사의 길이 보인다고 하나. 드라마 빨리 빨리 찍다보면 그런 길 못찾고 찍는 경우도 많아요. 그 길 찾은 작품에선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나오지. 캐릭터 색깔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신없이 찍게 되는 작품은 혼란스럽고. 비슷비슷한 연긴데 더 뻔하게 돼.”

-애드리브 많지만 연습량 많다는 게 재밌다.

“역설적이긴 한데. 어쩔수 없는 제 한계에요. 확실히 내가 느려. 암기력은 안 좋지만 순발력은 빨라. 준비된 애드리브와 순발력이 합쳐져 (내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박수쳐 주시지 않나.”

-애드리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번에 <시라노>에서 나온 ‘애드리브 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는 정말로 내 개인사와 작품의 캐릭터가 혼동될 수 있을 정도로 섞여 있잖아요. 그건 준비 못했던 애드리브에요. 뭐 내 애드리브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 사람들까지 빵 터지기도 하고. 저도 뭐 좋아하는 내 인생 최고의 애드리브지. 그러니까 나를 희화화함으로써 재밌어지는.”

-휴대전화 컬러링이 <스카우트> 때 나온 비광송이더라. ‘나는 비광. 섯다에는 끼지도 못하고 고스톱에서는 광대접 못받는 미운오리새끼’ 란 가사가 꼭 조연의 삶인것 같았다

“뭐 단역배우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는 거고. 영화가 100만명만 들었어도 최고의 히트곡이 됐을 거야. 이 저주받은 걸작이 되다보니. (참여하는 야구단 이름도 비광이더라) 응 그려. 미련의 끈을 놓지 못하고 컬러링 해놓고 인터뷰할 때나 예능에서 낭송하기도 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해보고 싶지 않은가.

“내가 주름이 없었으면 악해보이는 인상이라, 주름에 고맙다고 해. 내가 봐도 <혈의 누> 악역 때 눈빛은 내가 아닌것 같고. 악역 한 두번 제안 왔다가 감독님들이 부담스러워 하더라고. 편안한 이미지라. 선한 사람이 악한느낌 줄 때 임팩트가 세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마 기회가 좀 더 있지 않을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악역이었는데 이게 코미디처럼 재밌어. 말 한마디 못하지만 표정이나 가슴으로만 연기하는 그런 작품도 해보고 싶고. 애틋하고 아련한 사랑도 하고 싶고.”

-차기작 중 처음 도전하는 역할 있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죽음에 이르는 기러기 아빠인데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에요. 능력 없다고 자학하다가 자살하려고 하는 기러기 아빠인데 색다른 도전이야. <위험한 상견례>는 전라도 사투리 쓰면서 까불까불거리는 웃음 주는 역할이고.”

-배우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우진 않았지만 저 아래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커가는 거야. 그래서 오늘이 제일 멋진 날이야. 시상소감 했던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그러다 후보되면 그 때가 또 가장 행복할 것이고. 대학 연극반 들어갔을 때 가장 행복했고 그 다음엔 첫 워크샵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프로 극단에 들어갔을 때 좋아서 한없이 술을 마셨고. 드라마 처음 찍었을 땐 드디어 안방에 진출하는구나 싶어 좋았고. 내 연기 싫을때도 있고 작품 안 들어올 때도 있지만 ‘이것밖에 안 된다’ 싶을 때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도 있는 거고. 그게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지. 특강가면 애들한테 ‘너보다 연기 잘하는 사람없다. 이순재 연기 최고고 너가 최저 아니라 그냥 다른 연기다. 누구도 평가할 수 없다. 당당히 자신감 갖고 해라’ 그래. 그래서 내가 버텨왔던것 같어.”

-전태일 40주기 홍보대사 활동 하셨고, 사회참여파 배우란 소리도 듣는다.

“내가 자격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하고 싶었던 부분이고. 부채의식이랄까. 전태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 사건에 대해서. 다행스럽게 홍보대사 자격이 된다고 해서 하겠다 한 것이고. 그런 부분들은 거침없이 하는 편인데 누가 선거 나간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절제를 하죠. 그런데 ‘진보적인’ 배우, ‘사회참여적인’ 배우로 남고 싶지 않아. 그 수식어 붙는 게 싫어. 나는 그냥 배우. 연기 잘하는 배우, 따뜻한 배우, 웃음주는 배우, 전국노래자랑 같은 배우.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 같기도 한데 나를 위로해주고 웃음주는 그런 배우. 사진 한 장 찍자고 해도 거부 안 할 것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난 그걸 너무 바라거든.”

서영희|알고 받은 양 눈물도 안 나더라


서영희
서영희
“어후...음. 이제껏 왜 다른 사람들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게 쉽게도 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이 높고 험난할까 생각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자질이 없는 건가, 그만둬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요. 솔직히 꿈은 꿨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었어요.”

박철민이 공덕동 한겨레로 향하던 그 시각. 서영희는 청룡영화상이 열리는 국립극장에 있었다. 그는 올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주요 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모두 올랐다. 이날 여우주연상은 윤정희·수애에게 돌아갔다. 아침부터 영화촬영이 이어져 오후 3시께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올해로 데뷔 11년차인 그는 티브이와 영화를 넘나들며 크고 작은 역으로 대중들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의 ‘헤로인’이 되는 건 꿈처럼 먼 일이었다.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이어나가던 수상소감엔 그의 긴 기다림이 녹아 있다.

“소감을 미리 준비했다기보단, 제가 항상 수상자들을 향해 박수치며 되새김질했던 말들이 무대로 올라가는 길에 생각나더라구요. 사실 어리둥절해서 어리바리 소감을 말했는데, 바보스럽지 않게 생각하셨나 봐요. 다행이죠. (눈물도 안 흘리더란 말에) 실은 현장에선 벅참이 안 오더라구요. 마치 알고 받은 듯이. 민망했죠.”

서영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복남’은 남편과 마을사람들에게 짓밟히다 미치광이가 돼 복수를 펼치는 센 역이다. 이미 그는 <추격자> 등에서 박복한 역을 여러번 해왔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만난 건 행운이었단다. “여배우가 혼자 끌고 나가는 영화를 찾는 건 정말 힘들어요. 특히 요즘 같은 때엔 여자들을 믿어주지 않네요.” 여배우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지만 여배우가 입은 드레스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간다. “드레스 보는 안목이 없어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이번엔 연평도 사태도 있고 해서 다들 신경쓰는 듯해요. 화려하지 않은 것으로. (화장실 갈 때 불편하지 않나?) 그냥 보통때처럼 가는데…. 드레스가 의외로 편해요.(웃음)” 배우로서 영화상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아~ 멋진 뒤풀이가 있었으면 해요. 즐기는 문화가 좀더 생겼으면 좋겠어요.”

트로피를 거머쥐었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 되레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커졌다. 여우주연상을 탄 날, 두 시간 쪽잠을 자고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첫 촬영장으로 향했다. 이 영화의 주연은 아니다. 삶이 보인다면 배역 크기는 상관없다. “욕심을 버리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거 하려구요. 제가 <대물>의 고현정 언니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나한테도 마이너스고 보는 사람한테도 마이너스죠.” 꾸준히 기복 없는 연기생활을 하는 게 목표다. 아 하나 더, 이거 꼭 써달란다. “저도 이제 (저예산뿐 아니라) 큰 영화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하하.”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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