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방가?방가!>의 한 장면. (레몬트리·문화방송·엠넷 제공)
<방가?방가!> 육상효 감독·<놀러와> 신정수 피디·<유브이 신드롬> 박준수 피디 인터뷰
순제작비 8억원으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방가?방가!>, 1960년대 말~70년대 초 음악살롱 ‘세시봉’ 멤버들을 안방으로 초대한 엠비시 토크쇼 <놀러와>, 가요계의 핵폭풍(?) 유브이의 삶을 추적한 엠넷 페이크다큐 <유브이(UV) 신드롬>(9월 종영). 이 세 작품엔 평행이론(시차를 두고 같은 운명이 반복된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소름 끼치는’ 공통점이라 우기고 싶으나 무리인 것 같다. 요즘 티브이 토크쇼 흐름은 크게 두 갈래다. 주제를 선정한 뒤 적합한 게스트를 섭외하거나 일단 게스트를 모셔놓고 주제를 끼워맞추거나. 송년호를 맞아 토크쇼 트렌드를 따라해 봤다. ‘올 한해 깨알같은 웃음을 만든 프로그램·영화감독’이란 주제로 육상효 감독(방가?방가!), 신정수 피디(놀러와), 박준수 피디(유브이 신드롬)를 만났다. 서로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3인방의 개성은 천차만별. 유명 시나리오 작가답게 농담과 진담의 경계를 넘나들고(육상효), 15년간 예능피디로 일했지만 웃기는 재주는 딱히 없으며(신정수), 시청률 0.1%에 빛나는 연예풍자 뉴스쇼 <알부라리 채널 27>을 만든(박준수) 이들의 인터뷰도 따로국밥. 그럼에도 셋을 관통하는 면이 있었으니 주류보단 비주류, 강자보단 약자에 대한 관심이렷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 맨땅헤딩 섭외, 뻥을 활용한 현실풍자 신공으로 저질유머가 만개한 정계에 개그맞짱을 떴다.
본인이 만들고도 빵~빵~ 터졌던 최고의 웃긴 장면은?
육상효(이하 육)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래 ‘찬찬찬’을 가르치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생각했다. ‘찬찬찬’을 고른 건 의성어·의태어가 많아서였다. 그게 아시아 각국 말로 옮겨지는 게 이 영화 주제와 맞아떨어지더라. 그런데 영화 장면은 더 웃겼어. 김정태가 돈도 별로 안 받고 연기했는데. 하하.
신정수(이하 신) 정선희 편에서 유재석·김제동·김영철이 안경 벗고 누가누가 잘생겼나 했던 장면. 세 친구가 정선희 도우려는 배려심도 느껴져 짠하면서도 웃겼다. 화제를 모은 세시봉 특집도 기억에 남지만, 개인적으론 부산 사나이 특집이 재밌었다. 준비할 때 한 작가가 부산사람들은 야구장에서 공을 잡으면 “아 주라, 아 주라” 한다더라. 그게 ‘아이한테 주라는’ 의미라는데 서울 출신이라 그런 사투리나 지역 정서가 너무 재밌었다.
박준수(이하 박) 흉가에서 유브이가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장면이 제일 재밌었다. 제작진이 코너 틀과 대본을 마련하지만 유세윤이 재미를 뽑아내는 식이다. 기사식당 행사를 뛴다고 하면, 행사 내용은 제작진이 다 짜줄 수가 없다. 세윤이가 알아서 해야 한다. 흉가에서 세윤이가 신내림 받는 장면은 정말 ‘메소드 연기’(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였다. 눈동자 막 돌아가고.
‘앗, 이것은 너무 무리수였다’ 싶은 건 없나?
육 웃기려고 했는데 관객들이 안 웃으면 긴장해서 진이 다 빠진다. 주인공이 부탄 출신 노동자 행세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줘버렸다. 관객들이 웃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못 찾은 거야. 개그맨들도 관객들이 웃으면 딱 기다렸다가 다음 걸 하거든. 영화도 그런 호흡들을 만들어야 해. 많이 연구해야지.
신 자사 프로그램이나 영화 홍보를 위해 나온 게스트들을 묶어서 만든 기획은 어색하다. 화장을 떡칠해도 안 좋은 피부는 금방 드러나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토크쇼에 자주 안 나오는 사람을 궁금해하지만 그런 분들은 작품 홍보 명목 아니면 안 나오려 하고. 3년 전부터 <놀러와>를 맡았는데 처음 1년간은 홍보를 많이 요구하더라. 그런 관행이 서로에게 ‘윈윈’이 안 된다고 설득하다 보니 홍보성 토크가 줄어들었다.
박 고등학교에 찾아가 교내방송하는 에피소드는 현장에선 정말 웃겼다. 우리가 말릴 정도로 세윤이가 입에 쫙쫙 붙게 욕을 하고. 방송반 선생님도 신분 망각하고 배꼽 잡고. 근데 이게 아무 의미 없는 일탈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편집해 놓으니 그닥 재미가 없더라.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제작 비화는?
육 ‘방가’라는 이름 짓기가 힘들었다. 시나리오 한창 쓸 때 네팔 출신 노동자를 봤는데 그 사람 이름이 방가였다. 주인공 성을 방씨로 하면 친구들도 ‘방가야’라고 부를 수도 있고. 영화 제목도 처음에는 상당히 설명적인 ‘아세아 브라더스’ 뭐 이런 거였다.
신 섭외가 만만치 않다. 특히 송창식 선생님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섭외를 위해선 그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이해하기 힘든 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녁 6시에 아침, 밤 12시에 점심, 새벽 4~5시에 저녁 먹는 스케줄도 한번 같이 해보고. 정선희 편도 기억에 남는다. 방송은 7월에 했지만 녹화는 5월에 했고 섭외는 1월부터 들어갔다. 보통 누군가 섭외를 할 땐 당장 다음주에 나와달라가 아니라 언제 시간 되면 좋은 기회에 찾아뵙겠다면서 3~4개월 전부터 밑밥을 뿌리는데 정선희도 그런 경우다. 월드컵 끝나고 사람들 흥분 가시고 난 때에 방송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녹화 뒤에도 모니터링을 3번 정도 하면서 방송 내용을 고민했다.
박 마지막회에서 유브이가 외국에 갔다 컴백하는 장면은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이었다. 인천에서 촬영하긴 했는데, 이왕이면 엑스트라도 동원하고 해서 다시 찍고 싶었다. 엑스트라들은 유브이를 사랑하는 동아방송대(유세윤 모교) 학생들.
‘나만의 유머론’ 있나? 어떤 웃음을 만들고 싶은가?
육 중학교 1학년 때 7살 많은 큰형이 군대에서 사고사로 돌아가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였는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두어달을 앓았다. 죽음이 인정 안 되고. 그러다 웃긴 애가 됐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유머란 게 남들을 비하하는 쪽으로 가기 마련인데, 그걸 제일 조심해야 한다. 외모 비하가 재밌지만 한번 하고는 수습해야지. 웃음은 약자들의 것이다. 위엄과 침묵은 강자들 것이고. 내 영화 주인공은 사회적 약자고 사회적 이슈도 조금 있고. 이슈화를 노리는 건 아니지만 코미디를 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코미디를 만들어야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운동권 선배들 중에는 꼭 어려운 말 쓰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생각해보면 그걸 나만 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을 것 같은. 그 말을 하는 그 선배조차 잘 몰랐던 게 아닐까. 그런 상황들이 재밌을 것 같아.
신 이제 가요계 섭외 대상은 조용필·서태지·김창완 세 명 남았다. 조용필 선생님 정말 모시고 싶다. 만나서 ‘세시봉 특집 보시지 않았느냐, 위대한 탄생도 같이 나오게 하겠다’고 했다. 연예인뿐 아니라 이름이 알려진 공인들도 섭외하고 싶다. 여러 사람이 토크쇼에 나오는 건 기록의 가치가 있다. 이적과 친구들의 젊은 시절처럼. 유시민·노회찬 이런 분들 특집 해보고 싶다. 나라 걱정만 하는 건 아니지 않겠나.(웃음) 만화가 특집도 기획하고 있고. 영화감독 특집도 한번 더 하고 싶은데, 육상효 감독님께 섭외하면 거절하지 말라고 좀 전해달라.
박 연예인 섭외해 리얼다큐 프로그램 만들어봤지만 카메라 들이대고 있으면 그때부턴 리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페이크 프로그램을 하게 된 것 같다. 난 기본적으로 ‘루저’ 성향이다. 주성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루저 코드가 있기 때문이다. 루저가 성공해서 기고만장하다 다시 루저 되고 그러지 않나. 유브이도 사실 메인스트림이 아니고. 나중엔 성(性)이야기를 가지고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너를 만들고 싶다. <유브이 신드롬> 시즌 2도 하고 싶고.
올 한해 봤던 장면 중 가장 웃겼던 건?
육 영화 <이층의 악당>을 되게 재밌게 봤다. 손재곤 감독은 스릴러와 코미디를 묶어내는 놀라운 재능이 있더라. 그 영화에서 김혜수 딸이 왕따 당해서 집으로 온다. 이 아이를 쫓아내려고 한석규가 “학교는 가야지” 하는 장면이 그렇게 웃기더라.
신 연평도에서 안상수가 보온병 들고 포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제일 웃겼다. 현역으로 군대 다녀왔기 때문에 그 옆에 군인들이 어떤 생각 할지도 알겠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그런 걸 하고 온 거잖나.
박 물난리 보도하는 생방송 뉴스에서 엠비(MB)가 수해민한테 “기왕에 된 거니까 편안하게”라고 했던 장면이 가장 웃겼다. 인터넷에선 “기왕 이렇게 된 거” 패러디 막 나오고.
정리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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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정수 피디, 육상효 감독, 박준수 피디.
유재석과 김원희가 진행하는 토크쇼 <놀러와>. (레몬트리·문화방송·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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