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
[매거진 esc]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셜록 홈스’ 외전의 세계
셜록 홈스는 죽지 않았다. ‘홈스의 아버지’ 아서 코넌 도일이 숨진 지 80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도일은 1939년 <마지막 사건>에서 홈스를 숙적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스위스 라이헨바흐 폭포 아래로 떨어뜨려 죽여버린다. 역사소설 집필에 집중하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10년 뒤 홈스를 되살린다. 어머니를 비롯한 팬들이 끊임없이 질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도일이 남긴 홈스 원전은 60편(장편 4편, 단편 56편). 그러나 또다른 홈스를 볼 수 있는 작품은 수없이 많다. 오 헨리(<샴록 존스의 모험>) 등 유명 작가를 비롯해 셜로키언(영국에선 홈지언)이라고 불리는 팬들이 패러디·패스티시(원작의 캐릭터·문체를 진지하게 따라하는 것) 같은 외전을 끊임없이 쓰고 있다.
홈스는 의자에 앉아서도 범인을 잡아낼 만한 신공을 지녔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동시에 여러모로 결함이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재해석의 여지가 많아 수많은 외전에서 활약을 펼치는 ‘불사조’ 캐릭터가 됐다. 원전을 다 읽고도 2% 부족하다면, 줄줄이 얽혀 있는 외전의 세계에 발을 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추리소설 마니아·작가 9인에게 광활한 홈스 외전 세계로의 안내를 청했다.
셜로키언들이 추천한 국내 출간 외전 5선
1993년까지 발표된 홈스 외전은 1800여종에 이른다. 국내에선 2000년대 초반 홈스 전집이 인기를 끈 뒤로 외전 출간이 늘고 있다. 코넌 도일과 실제로 친했던 19세기 말 저널리스트 로버트 바의 단편집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시공사·2010년)에는 세계 최초 홈스 패러디 단편 <셜로 콤즈의 모험>(1892년)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국내 출간 추천소설 5편이다.
<셜록 홈즈의 7퍼센트 용액>(2009년·시공사)
미국 극작가 니컬러스 메이어의 1974년 작품으로 가장 많은 추천표를 얻었다. 홈스가 코카인 ‘7% 희석액’을 투입했다는 원전의 설정을 가져온다.
홈스의 코카인 중독을 보다 못한 왓슨이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명세를 타던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의뢰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말 추격장면에서 손에 땀을 쥔다.”(박세진) “현대의 관점에서 당시 역사와 캐릭터를 새롭게 재해석했다.”(전영찬)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2008년·북스피어)
애거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과 더불어 1920~30년대 영미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거장 존 딕슨 카와 도일의 막내아들 에이드리언 도일이 1954년 함께 낸 단편집. 앞서 딕슨 카는 도일 평전을 집필하면서 에이드리언과 연이 닿았다. 원전에서 살짝 이름만 언급된 사건을 그리고 있어 원전 완독 뒤 읽으면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 “작가의 이름에 신뢰성이 있고 그만큼 홈스 캐릭터를 잘 살렸다.”(조동신)
<경성탐정록>(2009년·학산문화사)
작가 한동진·한상진 형제의 단편집.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탐정 설홍주와 중국인 조수인 왕도손이 허도순 부인의 집에서 하숙하며 사건을 해결해간다. 수록작 제목이 <운수 좋은 날> <소나기> <천변풍경> 등이고 김두한 등 실제 역사인물이 등장해 친근하다. 추리 방식 등은 비슷하지만 설홍주는 홈스와 달리 ‘모범생’으로 그려진다.
<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2007년·황금가지)
미국 소설가 미치 컬린이 2005년 발표한 작품. 긴박한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93살 홈스가 주인공. 허드슨 부인도, 왓슨도, 형도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다. 건망증을 앓고 지팡이를 짚는 할아버지 홈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린다. “문학적 도구로 홈스를 이용하는 작가의 재능이 돋보인다.”(윤영천)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2009년·태동출판사)
‘세상에서 가장 집요한 셜로키언’ 윌리엄 스튜어트 베어링 굴드가 1962년 발표한 작품. 발생 연대와 관계없이 발표된 원전 사건을 등장인물이나 상황을 단서 삼아 날짜를 추적했다.
홈스가 실제 인물인 양 그의 삶과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나열한 작품으로 왓슨의 결혼 횟수 등도 알려준다. 메이어도 <7퍼센트 용액>을 쓸 당시 이 책에서 중요한 설정을 빌려왔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외전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미국 여성 작가 로리 킹이 1994년부터 펴낸 메리 러셀 시리즈다. 은퇴 뒤 양봉을 하던 홈스가 메리 러셀이라는 소녀를 만나(시리즈 중간에 이 둘은 결혼한다) 사건을 해결한다는 줄거리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홈스 이야기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홈스가 실종됐다 되돌아온 사이의 ‘공백기’를 활용한 작품도 있다. 일본 작가 가노 이치로의 <호크씨 타향의 모험>(1983년)에는 의사인 에노키 겐신과 영국인 새뮤얼 호크가 사건을 풀어간다. 이 호크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어떤 폭포에서 떨어졌다고 말한다. 누가 보더라도 홈스다. 일본에선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홈스의 활동 시기 영국에서 유학했다는 사실을 활용한 외전들이 있다.
홈스의 형이나 레스트레이드 경감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도 있다. 존 가드너의 <모리어티의 귀환>(1974), <모리어티의 복수>(1975) 등은 홈스와 함께 폭포에서 떨어진 모리어티도 사실은 살아 있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외전 속에서 홈스는 드라큘라와 대결을 펼치기도 하며, 프랑켄슈타인이나 타잔도 만나고 우주전쟁에 뛰어든다.
청소년 홈스·왓슨, 영화속 맹활약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홈스는 여전히 ‘핫’한 캐릭터다. 미국에선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 <셜록 홈스> 속편, 영국에선 최근 국내에서 방영돼 인기를 모은 비비시(BBC) 드라마 <셜록> 시즌2가 제작되고 있다. 영상물에서 볼 수 있는 홈스는 소설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설정의 미국 영화 <피라미드의 공포>(1985년·배리 레빈슨 감독)가 기억에 남는다는 답이 많았다. 이 영화 속 홈스와 왓슨은 이미 10대 때 만난다.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홈스의 결혼관·이성관을 이야기하고, 모리어티와의 악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악령 캐릭터는 영화 사상 최초로 컴퓨터그래픽만으로 만들어졌다.
원전에 가까운 홈스를 사랑하는 이도 있다. 영국의 그라나다 티브이 <셜록 홈스> 시리즈(1984~1994년)는 큰 각색 없이 원전을 가장 충실히 구현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이 시리즈에서 배우 제러미 브렛은 홈스 역을 맡아 그의 괴짜스럽고 어두운 면을 처음 강조해 마니아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홈스’라는 찬사를 받았다. 비비시의 <셜록>은 원전의 설정을 살리면서도 현대에 맞는 추리기법과 연출 도입으로 새로운 홈스를 만들어냈다. 작가진이 골수 셜로키언으로, 1편의 제목 ‘분홍색 연구’는 홈스가 처음 등장한 단편 ‘주홍색 연구’에서 따왔으며, 왓슨은 원전처럼 아프간에서 부상을 당하고 전역했다.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도움말 장경현 전영찬 박세진(이상 싸이월드 화요추리클럽 회원), 윤영천 나혁진(이상 하우미스터리 운영진), 켈(예스24 블로거), 조동신(추리소설 작가), 키안(웹진 판타스틱 필진), 윤해환(추리소설 작가)
셜록 홈즈의 7퍼센트 용액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경성탐정록
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
영화 셜록 홈스. 워너브러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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