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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꼭꼭 숨겨라, 스포일러 보일라

등록 2011-03-31 10:41

나는 가수다. 문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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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호기심 자극하는 티브이 예고편의 속사정
티브이 예고편으로 혼자 놀기는 다섯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디시인사이드의 즐겨 보는 프로그램 갤러리나 시청자 게시판에 자리를 잡는다. 2단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예고 컷을 느리게 보거나 캡처해 집요하게 살핀다. 3단계, 인터넷에서 수집한 ‘스포일러’를 기반으로 예고 컷에 의미를 부여해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4단계, 상상한 이야기를 게시판에 올려 ‘집단지성’의 힘으로 구체화시킨다. 5단계, 추론 결과와 실제 방송 내용을 비교해본다. 얼마 전 막 내린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싸인>의 시청자들은 예고편에서 보인 부검대 위 주검의 생김새와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해 주인공 윤지훈의 죽음을 예상했다. 엠비시(MBC) <나는 가수다>의 일부 시청자는 예고편을 분석해 첫 탈락자를 추측했다. 요즘 방송가에선 ‘반전이 있는’ 수사·의학 드라마나 ‘탈락자 추측의 맛’을 선사하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세다. 궁금증을 못 이겨 ‘스포’를 찾아 헤매게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만큼 예고편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제 예고편은 다음회 윤곽을 드러내는 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티브이 앞에 앉게 한다.

헷갈리게 해 ‘스포’ 감추기는 절대 불문율

드라마 방영 몇 주 전 극의 분위기나 캐스팅을 설명해주는 티저 예고가 2~3차례 나가는 것은 기본이 됐다. 일부 드라마 작가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예고편 변경을 요구하기까지 한다고.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도 드라마처럼 엔딩 부분에서 갈등을 보여주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살짝 보여주는 예고를 만든다. 티브이 예고는 대부분 조연출들이 만들기 때문에, 신입 피디의 창의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예고편 불문율은 결말 숨기기다.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살짝살짝 다음회 내용을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것은 감춰야 한다. ‘스포’를 둘러싸고 제작진과 시청자가 숨바꼭질을 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온스타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시리즈다. 영국 프리맨틀 미디어사에서 판권을 사서 제작하기 때문에 미국판과 프로그램 구성에서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예고편은 다르다. 미션을 통과해 런웨이를 떠난 디자이너들도 예고에선 런웨이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탈락자를 쉽게 예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또 시청자들 사이에선 ‘예고 마지막 장면에 클로즈업이 되는 디자이너가 탈락자다 아니다’라는 논쟁도 많았다. 시즌 3의 정종선 프로듀서는 “마지막 클로즈업에 탈락자 얼굴을 안 내보내다가, 실제 탈락자 얼굴을 내보내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했다”고 말했다. 간혹 예고에 나온 장면이 본편에 안 나오는 경우는 예고할 당시 본편 편집이 끝나지 않았거나 편집을 수정하고 또 수정한 경우라고. 토크쇼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출연 연예인이 자신의 발언을 편집해달라고 요구하는 등의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예고편을 만드는 피디에 따라 대사·그림 등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 “엔딩 지점에 나오는 극적인 갈등과 관련된 장면을 예고엔 넣지 않아요. 임팩트 있는 대사 두세 개를 깔아 무슨 큰일이 분명 벌어지고 있다는 암시를 주되 그 일이 뭘까 궁금하게 만들도록 하죠.” 엠비시 <로열패밀리> 조연출 김성욱 피디

한 컷 1초도 안 돼…짧고 또 강렬하게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끌기 위해 예고편 템포는 갈수록 빨라진다. “예전엔 한 컷이 3초 이상인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엔 1초가 안 돼요. 어떤 음악을 선정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도 하죠. 시청자들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 등을 깔아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해요.” 에스비에스 <웃어요, 엄마> 신경수 피디

보통 예고편은 30초 안팎인데 요즘엔 짧고 강한 15초 예고가 나가기도 한다. 효과와 시간이 꼭 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예고를 15초, 10초 등 여러 버전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시간이 짧은 만큼 여러번 틀 수 있다.

강렬한 예고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피디들은 주로 아이디어가 들어간 예고를 만들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되면 내용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당장 다음회나 2부로 넘어가는 예고는 내용 위주로 구성합니다. 젊은층이 많이 시청하기 때문에 영화나 광고 패러디한 예고도 많은데 너무 과하면 본편 내용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억측하는 경우가 있어 예고 색깔 잡기가 까다롭죠.” 엠비시 <무한도전> 김태호 피디

드라마 방영 뒤 자막이 올라갈 동안 예고가 나오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생방송’의 시작이라고 예측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본편 방영 시간이 길어져 예고편을 내보내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예고편 보면 영화가 보인다

영화계에서도 예고편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예고편만 만드는 회사가 따로 있을 정도다. 국내에선 1990년대 후반 예고편 전문 제작사가 등장했는데, 지난 10여년간 예고편 트렌드도 달라졌다. 한국 영화가 붐을 이루던 2000년대 중반엔 예고편을 별도로 촬영해 광고처럼 제작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비용 대비 효과가 적어 요즘엔 영화 장면을 편집하는 게 대세다. 극장이 광고 상영을 늘리고 예고편 노출 시간을 줄이면서 2분 정도였던 본예고편이 1분30초로 짧아졌다. 대신 인터넷을 통해 하이라이트·제작기·캐릭터 영상 등을 선보인다. 음악이나 자막, 그래픽 효과에 신경을 쓰는 추세다. 예고용으로 만든 음악이 영화에 삽입되기도 하는데 <아저씨> <조선명탐정> 등이 그 예다. 또 대사나 자막 없이 사운드와 비주얼로만 구성되는 예고가 늘고 있다.

예고편 제작자들에게 가장 큰 골칫덩이는 ‘재미없는’ 영화다. 시놉시스만 보고 계약을 하기 때문에 완성작 수준을 미리 알기 어렵다. 그러나 개봉 첫주 관객 스코어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예고편 제작자들은 ‘낚시’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예고편만으로 ‘영화의 재미’를 파악할 방법은 없을까. <적정관람료> 필자 한동원씨와 웹진 <익스트림무비> 김종철 편집장에게 노하우를 물었다.

① 친절을 의심하라 | 잘 만든 재난영화일수록 스펙터클한 장면을 대사나 자막 없이 보여주다 점점 컷이 빨라진다. 그런데 대사나 자막으로 자꾸 설명하려는 영화일수록 결정타가 없다. 파괴되는 장면이나 액션을 살짝살짝 보여주지 않고 통째로 다 보여줄 땐 ‘이게 다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② 결정타로 판단하라 | 코미디는 대부분 예고편 마지막에 결정타를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예고가 끝날 무렵 에필로그처럼 한 컷이 더 붙는데 그 장면이 웃기느냐 아니냐에 따라 코미디의 질을 추측할 수 있다.

③ 안갯속을 경계하라 | 영화 속 사건의 전모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흐름과 상관없는 장면들이 나열된다. 알맹이가 없지만 있어 보이도록 묘~하게 만드는 것.

④ 스타를 믿지 말라 | 예고에선 스토리 라인을 알려줘야 하는데 배우 이름을 강조하거나 캐릭터를 먼저 짚는다면 평범한 영화일 가능성이 높다.

⑤ 예고에 정답 있다 | 예고에 가장 중요한 장면과 대사를 넣는 건 불변의 법칙. 예고 속 웃긴 대사에 헛웃음이 나고, 로맨틱한 상황 묘사에 코웃음이 난다면 관람 자제하시길.

박현정 기자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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